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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영 Sep 03. 2022

그 시절 '문방구'는 어디로 갔을까?


2학년 2학기 교육과정에는 <가을> 교과가 있다.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등의 교과 과정명에만 익숙한 사람들에겐 초등학교 1, 2학년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통합교과명이 퍽 낯설겠다.

2학기 가을 교과의 첫 단원이 '동네 한 바퀴'다. 아이들이 살고 있는 동네에 어떤 것들이 있고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하는 일 등을 알아보며 아이들이 살고 있는 주변의 세계에 대해 알아보는 교육과정이다.


어떤 대상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서는 먼저 만나야 한다. 보고, 듣고, 직접 체험한 경험이 있어야 대상에 대한 관심도, 질문도 생겨난다. 아예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궁금증도 생기지 않으니까. 그래서 이 첫 단원의 첫 활동은 '동네 탐험'이다. 학교에서 출발하여 동네 주변을 돌아보며 동네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먼저 살펴보는 것이다.

코로나 기간 동안 학교에서의 외부 체험 활동이 거의 실시되지 못했기 때문에 이번 2학년 아이들에게는 첫 현장체험학습이라 할만했다. 교실 책상머리 수업이 아닌 친구들과 함께하는 학교 밖 수업만큼 아이들에게 신나는 일이 있을까?


모자를 쓴 간편한 옷차림에 물을 담은 작은 크로스백을 메고 교실로 들어오는 아이들을 보니, 어릴 적 소풍날이 떠올라 괜히 내가 다 설렜다. 빨리 활동을 시작하고 싶은 아이들에게 출발 전 또 이어지는 담임 선생님의 안전지도는 얼마나 따분한 잔소리였을지...


그렇게 아이들은 학교를 출발해 동네 한 바퀴를 쭉 돌며 동네 구석구석을 탐험하는 흥미진진한 활동을 기대했겠지만... 현실이 어디 그리 녹록한가. 지난주까지 한풀 꺾인 더위에 이제 좀 선선해진 날씨가 반갑더니, 어제, 오늘 갑자기 다시 더워진 날씨에 어른인 나도 금세 땀 한 바가지다. 그러니 아이들은 오죽했을까. 눈빛으로, 몸짓으로 아우성이다. '더워요!, 힘들어요!, 이제 얼마나 남았어요?'


사전 교육활동으로 함께 돌아볼 동선을 온라인 지도로 살펴보면서 "이 부근쯤 오면 이 중에서 꼭 한, 둘은 힘들어 죽겠다고 할 거다." 했더니, 자기는 절대로 아닐 거라던 아이들이었다. 동선의 2/3 지점에서 "여기만큼 오면 너무 지쳐서 집에 가겠다는 애들 나올걸?" 하는 말에도 격렬히 저항했던 아이들. 한 말이 있어서 차마 힘듦을 다 표현하지는 못하고, "다리는 하나도 안 아픈데, 너무 더워요." 라던 아이들. 그래도 뒤처지지 않고 집에 가겠다고 떼쓰는 아이 하나 없이 무사히 학교로 돌아와 주어 대견하다. 학교 주변을 돌며 동네에 다양한 상점과 기관들이 많지만, 아이들만의 공간이 없는 점은 좀 아쉬웠다.



과거에는 있었으나 현재는 사라진 학교 앞 정경들이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문방구'다. 내가 어릴 적 다니던 국민학교 앞에는 문방구가 세 개나 있었다. 그중 아이들이 더 선호하는 곳이 있기 마련이었고, 각 문방구들은 어린이 한 명이라도 더 고객으로 모시기 위해 활발한 마케팅을 벌였던 것 같다.


문방구란 어떤 곳이던가. 아이들에게는 학습 준비물을 구입하던 공간이자, 개인의 욕망을 실현하는 꿈의 공간이었다. 문방구에서 어린이는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며 상품에 대한 선택권을 행사하던 당당한 소비자였고, 가지고 있는 현금 내에서 지출의 범위를 따져야 했던 경제의 주체였다.

각종 뽑기들의 유혹을 물리치다 가끔은 남은 잔돈으로 욕망을 실현하고는 '꽝'이라는 결과에 허탈해하며 다시는 사행심에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공간이기도 했다. 어쩌다 다시 잔돈이 생기면 허물어지곤 하는 허망한 결심이었지만.


문방구 안에 들어서면 제일 앞쪽에 진열되어 알록달록 색깔로 먼저 눈을 사로잡던 추억의 먹거리들은 또 어떠했던가. 쫀디기, 아폴로, 눈깔사탕은 내 최애 먹거리였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열풍으로 달고나가 다시 한번 누린 과거의 영광은 그 맛을 아는 사람에겐 개인의 영광이었다.


어느 시대엔 그 모든 것들이 '불량 식품' 척결 대상들로 전락하고 말았으나 그 정책을 추진하셨던 분은 어릴 적 그런  먹거리들에 대한 추억이 많지 않았음에 틀림없다. 몸을 해할 정도로 먹을 수 있을 만큼 우린 풍족하지 못했다. 요즘엔 집안 어느 상자에 들어가 천덕꾸러기가 된 10원, 50원짜리 동전으로 오감을 충족시켰으니 추억이 행복한 이유겠다.



요즘 아이들에게 과거 문방구에서처럼 자신이 온전한 주체가 될 수 있는 공간이 있을까. 어른의 손을 빌리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취향과 선택으로 의사가 결정되는 공간 말이다. 요즘 어린이들은 소비의 범위를 가늠하기 어려운 '엄카(엄마 카드)'로 온라인 소비를 하는 시대에 산다.


 아이들에게도 어른이 되었을 때 떠올릴 수 있는 '주체적인' 추억의 공간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공간을 통해 자신을 충분히 알아야 주변 세계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지지 않을까. 



그 시절 문방구는 어디로 갔을까요? © 영화 <미나 문방구>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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