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과 손편지를 주고 받은 게 언제가 마지막이었던가.
기억나지도 않을 만큼 오래된 것만은 분명하다. 쓴 것은 기억나지 않는데 받은 것은 기억나는 걸 보면, 주는 것보다는 받은 것을 더 의미 있게 장기기억 처리하는 것 같아 내 뇌에 모처럼 믿음이 생긴다.
30대 때의 남편이 회사에서 2박 3일간 떠난 연수 프로그램에서 가족에게 썼던 손편지가 그것이었다. 손편지라고 하기엔 짧은 메모에 가까웠지만, 가족은 뒷전이고 회사 일밖에 모른다는 배신감에 마음속에 미움을 차곡차곡 쌓아가던 내게 남편의 손글씨 효과는 적지 않았다.
앞으로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할 거야. 그 옆에 사랑하는 당신이 옆에서 함께 행복을 나눴으면 해. 우리 이쁜 아이들이 커나가는 모습에 같이 설레고 기뻐하자.
강사가 시켜서 반 강제로 쓴 메모였겠지만, 손글씨는 자꾸 덧나는 상처에 임시로 도포하는 후시딘 같은 효력을 발휘했다. 그러니 출장에서 돌아와 남편이 건네준 메모를 읽던 날, 난 몇 시간은 상냥해졌을 것이다. 어쩌면 며칠간 다정했을지도.
남편이 남편이기 이전, 남친이었을 때, 장거리 연애를 했던 우리는 온라인 네트워킹을 구가하던 첫 세대였던 만큼, 손편지보다는 전자 메일로 알콩달콩한 마음을 키워갔었다. 그럼에도 어쩌다 보내온 그의 손편지는 같은 배율의 컴퓨터 글자체와는 확연히 다르게 내 마음을 훅 끌어당겼다.
그는 메일 박스에 담기에 부족한 그리움의 온도를 손편지에 고스란히 담고 싶었을 게다. 나도 그 마음을 모를 리 없었겠지만, 편지를 읽은 후 달콤한 언어로 써 내려간 답장이 후속 장면이었어야 좀 더 로맨틱했겠지만...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펜을 들고 편지에서 어긋난 맞춤법을 고치는 것이었다. 빨간펜으로 고친 흔적이 가득한 그의 손편지를 보며 냉정과 열정 사이를 오갔더랬다.
우리 반 아이들의 받아쓰기를 채점하면서도 난 냉정과 열정 사이를 오간다. 초등학생 아이를 가까이에서 만나볼 일이 없는 사람들에겐 '받아쓰기'라는 유물이 아직도 학교에서 보존되고 있는가, 싶을지도 모르겠다. 받아쓰기에 대한 효능에 의견이 분분하여 매년 학년 초에 동학년 교사들의 협의하에 실시 여부를 결정하곤 한다. 그런데 아이들의 받아쓰기를 채점할 때마다 유물은 받아쓰기가 아니라 다른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받아쓰기 후 아이들이 쓴 글을 보면 더욱.
오늘 학교에서 1교시에 받아쓰기를 했다. 받아쓰기를 처음 하는 것도 아닌데 긴장됐다. 그래도 하다 보니 익숙해졌다.
학교에서 받아쓰기를 봤다. 다 맞았는데 아쉽게 한 개를 틀렸다. <알 수 있나요?>인데 <알수 있나요?>라고 썼다. 정말 아쉬웠다.
오늘 받아쓰기를 했다. 받아쓰기 1문제를 틀릴 것 같아서 살짝 무섭다. 너무 띄어쓰기를 많이 했나?
오늘 학교에서 받아쓰기를 했다. 어제 공부한 보람이 있었다. 그런데 시험이 100점인지 아직 결과를 몰라서 떨린다. 시험이 100점이면 좋겠다. 왜냐하면 선물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엄마가 선물이 뭔지 안 가르쳐줬다. 선물이 뭔지 궁금하다.
1교시에 받아쓰기를 했다. 어제 연습하고 오늘도 연습했다. 시험을 보는데 <전화를 걸 때>가 헷갈렸다. (학습용) 받아쓰기 종이를 (몰래) 봤다. 그리고 지우고 다시 썼다. 그런데 좀 찜찜했다. 그래서 엄마께 말했고 엄마는 보고 쓴 것은 잘못한 거라고 하셨다. 앞으로는 그러면 안 되겠다. 선생님, 다시는 안 그럴게요. 죄송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보는 받아쓰기가 익숙해질 법도 하련만 도통 익숙해지기 어렵다. 아무리 많이 연습해도 실전은 변수가 많으니까. 연습할 때는 하나도 거리낄 게 없었는데 실전에서는 꼭 이상한 지점에서 찜찜해진다. 결과에 대한 달콤한 보상은 실전에 대비해야 하는 고됨을 다독여주기도 하지만, 틀리고 싶지 않은 마음은 걱정을 넘어 양심을 건드리는 행동까지 불사토록 한다.
마지막 글 속, 순간의 욕심이 부른 잘못된 행동에 내내 불편했을 아이의 마음에 가만히 들어가 본다. 어떤 이는 성선설을, 다른 이는 성악설을 믿겠지만 난 이런 아이의 글을 보며 한 번 더 성선설 쪽에 무게를 싣는다. 이 아이가 다음날 다 맞게 채점된 받아쓰기 공책을 들고 와서 다시 제대로 고쳐 달라며 머쓱한 눈빛으로 말했을 때 더욱.
"당신에게로 향한 내 마음을 <알 수 있나요?>"를 "<알수 있나요?>"라고 썼다고 해서 그 속에 담긴 연인의 마음 빛이 바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오늘도 아이들의 받아쓰기를 채점하며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