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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영 Jul 14. 2023

브런치명이 바뀔 예정입니다

'그루잠'이 아닌 '정혜영'으로 더 열심히 쓰겠습니다


학창 시절에 내겐 딱히 별명이랄 게 없었다. 초등학교 때야 남자아이들이 여자아이들 놀려먹는 재미로 입에 붙는 대로 상대방의 성질머리를 돋울 만한 것으로 골라 불렀으니 그것을 별명이랄 수도 없겠다(난 그때 '안경잡이'란 소리가 그렇게 싫었다).

 '별명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개성이 없다'는 말 같아서 내게 별명을 붙일만한 매력이 없었나, 돌아보면 좀 서운하긴 하다. 중학생 때, 한 친구가 내가 웃을 때 눈이 새우처럼 가늘게 굽어진다 해서 붙여 준 '새비'('새우'의 경상, 전북 지방 방언)와 대학 때 과 선배가 같은 이유로 '칼집'이라는 몰상식한 별명을 붙여준 것이 다다. 이유는 같았지만 두 번째 별명은 듣기 싫었다. 그래서 난 그 선배에게 그의 거대한 몸집을 빗대어 '덩어리'에서 '덩'만 뺀 '어리'라는 별명을 지어 주고 '칼집' 눈웃음을 마구 흘려주는 것으로 회심의 복수를 날렸었다.

- <지금 당신이 글을 써야 하는 이유>(9인 공저, 봄름 출판)에 실린 글 중 내 글 일부 발췌



살아오는 내내 내세울만한 별명 하나 없었다. 작명가에게 돈을 주고 지었다는 이름은 모나지 않게 살만한 이름값이었던지 평범하기 이를 데 없고 타고난 외모는 이름보다 더 심상하다. 일생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어디선가 본 듯하다, 는 말을 자주 듣는다. 어릴 적 국어 교과서에 자주 등장하던 이름인 '철수'와 '영희' 중 영희와 같은 존재라고나 할까. 교과서에 등장할 정도까진 아니니 다행이라고 여겼던 것도 잠시. 5학년 때였던가, 교과서에서 내 이름을 발견하고는 아, 이제 진짜 '영희'류가 되었구나, 싶었다. '평범함'을 내 이름값의 시그니처라 여기며 살아왔다.


이렇게 지극히 평범한 내게 부모님이 (사서) 지어주신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을 갖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40대 내내 사십춘기를 겪으며 스스로를 들볶았던 이유가 '관망'과 '소비'로 점철된 내 삶에 대한 불만이었음을 깨달았고, 나도 '뭐라도 '생산'이란 것을 할 수 있을까'하는 기대감으로 시작한 것이 블로그 글쓰기였다. 아무도 지어주지 않았지만 제2의 삶을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블로그 이름을 새로 지었다. 그때 '깼다가 다시 드는 잠'이라는 뜻을 가진 달콤한 이름, '그루잠'이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새 이름을 얻은 나는 엄마, 아내, 초등교사라는 가까운 이들이 다 아는 내 본캐 옆에 '쓰는 사람'이라는 나만이 아는 부캐의 씨앗을 조용히 심고 물을 뿌리며 키워 나갔다. 블로그에서 시작한 글쓰기가 브런치로 연결되며 그루잠이라는 이름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마치 다른 생을 사는 듯, 묘하게 가슴 뛰는 경험이었. <복면가왕>이라는 TV 음악 방송에서 '음악대장'이라는 마스크와 복장으로 마음껏 자신의 성량을 최대치로 뿜어내던 가수 하현우가 이런 마음이었을까. '그루잠'이라는 이름은 내게 '쓰는 사람'이라는 다른 페르소나를 씌워주며 마음껏 쓰도록 독려했다.


브런치스토리팀에서 제10회 브런치출판프로젝트 10인의 작가전을 준비하며 책의 저자명과 브런치명이 다른 브런치 작가들에게 둘 중 하나로 선택해 달라는 요청을 해 왔을 때,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었다. 결론은, 내 이름으로 책을 내고 있으면서 언제까지 다른 이름을 갑옷처럼 입고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제 3년이란 시간 동안 이곳에서 내 글쓰기와 함께 해 온 이름, '그루잠'과 이별하려고 한다. 이제 작가명 자리에는 내 이름 석 자, '정혜영'이 들어설 것이다. 50년 동안 불려 온 내 이름이 어떤 곳에서는 이렇게 낯설 수가 있다니.


이제부내 이름 석 자를 걸고 글을 쓴다고 생각하니 정말 숨을 구멍도, 비빌 언덕도 없어질 듯하다. 훤히 드러난 길에서 많이 헤맬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곧 괜찮아질 것이다. 그루잠의 독자가 이름을 보고 찾아와 준 것이 아니듯, 나는 또 '정혜영'의 글을 쓰게 될 테니까.


<어린이의 문장>이 출간되고 그 뒤를 이어 9인 공저, <지금 당신이 글을 써야 하는 이유>도 출간이 되어 예약 판매에 들어갔다(<지금 당신이 글을 써야 하는 이유> 출간 소식은 다음 글에서 전하겠습니다). 모두 '정혜영'이라는 내 본명으로 출간된 책이다. 내 이름으로 출간된 책이 늘어난다는 것은 기쁨은 잠시, 책임감은 무한대가 되는 일이다. 글이 내 본질보다 앞서 가지 않도록  자신을 챙겨야다.


여담이지만, 우리 가족은 내 책을 읽지 않는다. 남편에게 왜 읽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30년 동안 알아 온 여자가 아닌 딴 사람을 만날까 봐,라는 이상한 핑계를 댄다. 새 여자를 만날 수도 있는 기회를 글이라면 사양하겠다니 종이책을 멀리하는 그의 초지일관에 무릎을 꿇었다. 고2 딸은 10대를 위한 소설을 써주면 읽겠단다. 중3 아들은 원래 아무 책도 안 읽는다. 이래저래 한 집안 식구들은 내가 무슨 글을 쓰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니 우리 가족을 보면 브런치명이 뭐가 대수랴, 다.

작은 소망은 우리 가족도 읽고 싶어 하는 책을 쓰는 것이다. 그러려면 소설을 써야 할 것 같은데... 이래저래 내 글쓰기 앞날은 새로운 도전과 응전의 가시밭길이겠다.


현재 내 브런치 프로필 화면. 다음주부터는 '그루잠' 이 '정혜영'으로 바뀔 예정이에요. 당황하지 마시고 잘 찾아오시길 .^^ by 현재는 그루잠인 정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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