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잠'이 아닌 '정혜영'으로 더 열심히 쓰겠습니다
학창 시절에 내겐 딱히 별명이랄 게 없었다. 초등학교 때야 남자아이들이 여자아이들 놀려먹는 재미로 입에 붙는 대로 상대방의 성질머리를 돋울 만한 것으로 골라 불렀으니 그것을 별명이랄 수도 없겠다(난 그때 '안경잡이'란 소리가 그렇게 싫었다).
'별명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개성이 없다'는 말 같아서 내게 별명을 붙일만한 매력이 없었나, 돌아보면 좀 서운하긴 하다. 중학생 때, 한 친구가 내가 웃을 때 눈이 새우처럼 가늘게 굽어진다 해서 붙여 준 '새비'('새우'의 경상, 전북 지방 방언)와 대학 때 과 선배가 같은 이유로 '칼집'이라는 몰상식한 별명을 붙여준 것이 다다. 이유는 같았지만 두 번째 별명은 듣기 싫었다. 그래서 난 그 선배에게 그의 거대한 몸집을 빗대어 '덩어리'에서 '덩'만 뺀 '어리'라는 별명을 지어 주고 '칼집' 눈웃음을 마구 흘려주는 것으로 회심의 복수를 날렸었다.
- <지금 당신이 글을 써야 하는 이유>(9인 공저, 봄름 출판)에 실린 글 중 내 글 일부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