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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영 Oct 14. 2023

로컬푸드 매장은 추억을 판다


불현듯 바람떡이 먹고 싶었다. 몰랑몰랑 쫀득쫀득한 찹쌀 반죽으로 매끈한 초승달 모양을 빚어 고소한 팥앙금으로 속을 꽉 채운 바람떡이 왜 렇게 생각났을까. 평소에 떡을 그리 즐겨 먹는 편도 아닌데. 10년 전이었다면 늦둥이라도 들어섰나, 흠칫했겠다.


지난 공휴일, 오전 내내 의자에 앉아 있었더니 온몸이 굳는 듯하여 의자를 박차고 나서던 길이었다. 그렇게 집 뒤편에 위치한 나지막한 뒷동산 몇 바퀴에 돌라는 체력은 아니 돌고 허기가 먼저 돈 것이다. 약간의 움직임에도 식욕이 먼저 도니 아직은 내 젊은 신진대사에 감사할 일인가.


그나저나 바람떡을 어디서 팔려나? 별거 다 파는 집 근처 슈퍼마켓과 없는 거 빼곤 다 파는 편의점이 떠올랐다. 일단 떡을 팔 지도 의문이었지만, 그곳에서 파는 떡에 썩 신뢰가 가지 않았다. 왠지 떡이 아닌 온갖 향신료와 첨가물 범벅일 것 같아 내키지 않았다. 그렇다고 떡집까지는 꽤 거리가 있어서 이미 을 달라고 보채는 내 위를 진정시키려면 다른 방도를 찾아야 했다.


가끔 내 뇌가 반짝 활성화될 때가 있는데 이렇게 상황이 급할 때일수록 총기가 폭발한다. 가까운 위치에 있는 로컬푸드 매장이 떠오른 것이다! 로컬푸드 매장이 어떤 곳인가. '환경과 농촌을 보전하고 농업인과 지역사회를 사랑하는 아름다운 선택'이라는 매장이 내세우는 슬로건을 차치하고라도 지역에서 자란 신선한 농산물을 하루 동안만 유통한다는 점에서 농산물의 품질을 믿을만한 곳이지 않은가 말이다. 유통 단계를 줄여 농업인이 자신이 직접 가꾼 생산물에 가격을 매기는 정직하고 소박한 가격도 맘에 쏙 들지만 유통상의 이동거리를 줄여 에너지 소비와 탄소배출량을 낮추고 지구환경 보전에도 일조한다니, 로컬푸드 구매는 단순한 '선택'의 문제가 아닌 것이.


그래, 거기라면 믿을만하다. 이렇게 생각하니 로컬푸드 매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에도 신이 났다. 우리 지역 농산물뿐 아니라 지역에서 수확한 밀과 쌀로 떡과 빵까지 판매한다는 것쯤이야 로컬푸드 애용자인 내겐 두 말하면 입 아픈 정보다. 그래도 공휴일이라 혹시 문을 닫았으면 어쩌지? 하는 일말의 걱정조차 큰 도로 건너편에서 환하게 밝힌 매장 내의 불빛에 무색해졌다.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떡 코너에서 바람떡부터 찾았다. 내 머릿속에 그렸던 초승달 모양의 바람떡이 없어 어찌나 아쉽던지. 달콤한 팥앙금을 품은 쑥절편이 아쉬움의 자리를 매우자 요동치던 위도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다. 식욕은 음식이 위를 채우는 포만감으로만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시각적인 만족감으로도 어느 정도 달래지는 감각임을 실감했다. 너튜브 먹방이 그칠 줄 모르고 유행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팥 절편에 꿀떡까지 덤으로 챙긴 장바구니에 든든해진 나는 로컬푸드의 진정한 가치인 현지 농산물을 둘러보았다. 견물생심이라고 다양하고 신선한 채소류를 보니 이번나물 반찬이 당겼다. 소담스레 한 봉지씩 담긴 푸릇푸릇한 고춧잎과 여린 깻잎은 나를 어린 시절 추억 열차에 태우는 티켓이었다.  


초등학생 시절, 엄마를 따라 시장에 가는 날은 암묵적으로 뭔가 맛있는 것을 얻어먹는 날이었다. 시장의 먹거리란 으레 가격이 소박해서 빈곤한 엄마의 지갑을 축낸다는 죄책감의 압박이 크지 않았다. 떡볶이나 막대 아이스크림을 얻어먹는 날도 좋았지만, 식사시간에 맞춰 찾은 시장 내 식당은 포만감에서 앞의 것들과는 비교할 바가 못 되었다. 여름에는 콩국수가 그랬고 겨울에는 뜨끈한 칼국수나 팥죽이 그랬다. 더욱이 겨울철만 제외하면 거의 모든 시기에 우리 모녀를 만족시킨 식사 메뉴가 있었으니, 그것은 '비빔밥'이었다.


엄마와 자주 가던 양동 시장 한 편엔 비빔밥을 파는 곳이 있었다. 드나드는 문조차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천막 식당이었다. 지금의 비빔밥은 다양한 색조화를 이룬 나물에 계란 프라이 하나 정도는 얹어줘야 제대로 된 메뉴겠지만, 당시 그곳에서 팔던 비빔밥은 오로지 보리밥에 나물만 비벼 먹는 '나물밥'이었다. 계란 프라이는 없었지만 입구 천막을 들추는 순간, 코끝으로 달려드는 고소한 참기름 냄새와 온갖 나물에서 뿜어 나오는 다채로운 향에 후각이 아찔해지곤 했다.


간이 탁자 위에 두 줄로 가지런히 놓인 10여 가지 종류의 싱싱한 나물 반찬을 보고 있노라면, 부자가 따로 있나 싶었다. 밥을 비비기 전부터 든든해진 마음에 아랫배에 빡 힘이 들어갔다.

식당 아주머니가 건네신 것은 보리밥이 담긴 사발 하나와 된장국뿐이었다. 손님이 원하는 나물을 원하는 양만큼 보리밥에 넣어 비빈 후 고추장과 참기름을 둘러 비벼먹으면 되었으니 지금으로 따지면 '셀프 나물 뷔페'쯤 되려나.


그렇게 먹는 1인당 식사 값이 500원이었다. 물론 몇 년을 지나면서 몇 백 원씩 오르기도 했겠지만, 내 기억 속의 비빔밥은 언제나 500원이다. 그 돈으로도 눈치 보지 않고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식사 한 끼 덕분에 엄마도 부러 점심시간에 맞춰 나를 시장에 데려가신 거겠지.

비빔밥을 먹는 날엔 엄마는 동생들을 놔두고 꼭 나만 데려가셨다. 나물 음식을 좋아하시는 엄마와 비슷한 식성을 지닌 어린 딸의 가성비 최고의 만찬은 언제나 그렇게 비밀스러웠다.


이제는 그 백 배를 주고도 그 시절 젊은 엄마와 함께 했던 나물 비빔밥 만찬을 살 수 없다. 엄마는 더 이상 젊지 않고 나물 비빔밥에 만족하기엔 내 입맛도 까칠해졌다. 값을 매길 수 없는 과거를 우린 '추억'이라 부르는 것일까.


맛보다는 시간이 더 중요한 내게 두 번 이상의 단계를 거치는 음식은 식사 메뉴에서 제외되기 일쑤인데 그 대표적인 요리가 나물이다. 다듬고 씻고 데치고 무치는 여러 단계를 거쳐 겨우 하나 완성해 낸 요리가 초록색 채소 요리라면 질겁하며 우리 집 아이들은 외면하니 그럴 수밖에.

그래서 나물은 결국 나를 위한 음식이다. 나물을 무치는 날은 내가 나를 음식으로 위로하는 날. 오롯이 내 입으로만 들어갈 음식을 시간과 공을 들여 요리하는 행위는 가족의 입맛에 맞춰 살다 입맛조차 희미해진 '엄마'란 존재에게 꼭 필요한 일이다.


나만 먹을 요량으로 나물을 두어 개 무쳤는데 생각보다 맛깔스럽게 무쳐진 날, 난 여지없이 엄마 생각이 났다. 우리가 함께 먹던 나물 비빔밥과 함께.

"엄마, 오늘 비름 나물이랑 취나물 무쳤는데 엄청 맛나는구만. 같이 밥 비벼 먹게 어여 건너 오소."

"어이구, 맛나것다. 좀만 있어봐라 내 금방 건너갈게."  

엄마와 나는 전화로 이렇게 얼척없는(이 말이 전라도 사투리라니!)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는 차로 편도 4시간이 넘는 서로의 거리가 무색해질 만큼 우린 한참 깔깔 웃는다.


위를 채우려고 들른 매장에서 뜻밖에 추억 한아름을 안고 돌아오며 마음이 더 든든해졌던가. 그나저나 욕심껏 챙긴 저 여린 고춧잎, 깻잎순, 방풍나물은 언제 다 해 먹으려나. 오늘은 저 나물들 다 무쳐서 커다란 양푼에 고슬고슬한 흰밥 담아 엄마랑 쓱쓱 비벼 먹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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