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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영 Nov 03. 2023

탕후루 먹으면 안 되겠어


'블루마불 게임'에 더 이상 흥미가 없어진 때가 언제였더라? 6학년 때도 단짝 친구랑 블루마블 게임하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중고등학생 땐 아찔한 수위가 간질간질 속을 태우던 로맨스 소설 읽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몰랐고, 한창 인터넷 랜선이 전국망으로 보급되던 90년 대엔 온라인 채팅 재미에 빠졌었지. 그러고 보면 흥미를 끄는 대상은 연령과 처한 상황에 따라 변화했고 한 시대를 풍미한 오락거리는 다른 놀이에 자리를 내어주며 기억 속에서 아스라이 멀어져 갔다.


초등학생 때 기억을 되살려 내 아이들이 어렸을 때 블루마블 게임 세트를 사주고 같이 놀이를 해 주던 날. 공부만 때가 있는 게 아니라 놀이도 때가 있음을 절감했다. 블루마블이 그렇게 지루한 놀이였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어렸을 때 얼마나 이 놀이를 좋아했었는데. 세월이 흘렀다고 어린 시절 내 최애 놀이가 이렇게 시시하고 따분하게 느껴지는 건 왠지 내 어린 시절에 대한 배반 같았다.



'응? 재미가 없네?'


지민이도 가족 나들이로 찾은 놀이공원에서 오랜만에 회전목마를 타며 비슷한 생각이 들었나 보다. 지민이에게도 엄마와 같이 타지 않으면 무서워서 회전목마를 탈 수 없었던 때가 있었을 게다. 무섭긴 해도 올라갔다 내려가며 빙글빙글 도는 역동성이 회전목마의 재미였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이제 엄마 없이도 잘 탈 수 있을 만큼 훌쩍 자랐는데 회전목마가 이렇게 재미없는 놀이 기구였다니, 이상하다, 이상해. 자신의 몸이 자람에 따라 균형감과 평형감이 함께 발달한 줄은 모르고 그렇게 재밌던 회전목마가 시시해진 게 지민이는 신기하기만 하다.


현재 내 관심과 흥미를 끄는 대상에 대한 애정이 영원할 것 같은가? 안타깝지만 내 관심과 흥미는 모닥불처럼 식기 마련이고 사위어가는 불씨를 되살리는 것은 애정을 쏟을 다른 대상의 출현일 때다. 그러니 이제 재밌는 게 없다고 생각이 든다면 전에 해 보지 않은 들에 관심을 가져 보는 것이 불씨를 살릴 또 다른 기회다.  



'탕후루 먹으면 안 되겠어.'


지우는 원래 탕후루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썼다. 그런 지우에게 급식 메뉴 중 하나로 나온 탕후루가 썩 반갑진 않았던 모양이다. 탕후루를 받을까, 말까 망설이다 결국 받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던 지우. 그래도 왠지 자기 식판에만 없는 탕후루가 자꾸 마음에 걸린다. "와! 탕후루 진짜 맛없다. 그냥 물 맛이다!" 하는 다른 친구의 말에 '휴~ 안 받길 잘했다'는 생각을 굳힌다. 그러다 딱딱하게 굳은 시럽에 약한 혀가 살짝 베어 피가 난 친구를 보고 급기야 탕후루는 '무서운' 음식이 되고 만다.

그런데 지우가 다시는 탕후루를 먹지 않겠다고 꼭꼭 다짐하고 있을 때, 새로운 전환점이 나타난다. 옆 줄에 앉아 있는 다정이가 탕후루가 맛있다며 두 개째 받아가는 것이다! 자신은 맛없다 못해 무섭기까지 한 탕후루가 다정이는 세상 맛있다니! 뭐가 맞나 모르겠다. 헷갈린다.


지우가 그날 탕후루를 한 번만 맛봤다면 자기의 생각과 언어로 그 맛을 표현했을 것이다. 실은 도 그날 탕후루를 처음 맛본 날이었다. 돈을 주고 일부러 저런 시럽 범벅을 사 먹다니. 나 역시 탕후루 반대파였지만 그날 한 알 맛본 탕후루는 아이들이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 이해할만한 맛이었다. 딱딱한 시럽의 겉면을 씹을 때 바사삭한 식감과 부드러운 과일의 단맛이 꽤 조화로웠다. 맛이 어떤지 궁금해 한 알만 먹으려다 한 알 더 먹은 것은 안 비밀. 지우가 맛보았다면 어떤 맛이라고 했을까.


생각보다 맛있던 탕후루 (그림 출처 : 네이버 이미지)



나는 어제 가을 운동회를 했다. 첫 번째로 달리기를 했다. 4명이서 달렸다. 내가 4등이었다ㅠㅠㅠㅠ 왜냐하면 선생님이 나보다 더 빠른 친구만 상대로 해줬다.ㅠㅠ


초등학교에 들어와 처음으로 경험하는 체육대회에 아이들은 그야말로 신남 그 자체였다. 모든 움직임 활동이 멈추었던 코로나 3년 동안 아이들에게 교과서에 예시로 제시된 '운동회' 그림은 정말 그림일 뿐이었다. 그런 운동회를 한다니, 설렘과 기대, 긴장감으로 개인 달리기 출발선에 섰을 것이다. 반 친구들과 달리기 실력을 겨뤄본 적 없는 아이들은 희망 쪽에 더 큰 기대를 품었을 테지. 4명이 달렸으니 1등은 못해도 2등은 할 거라고, 아무리 못해도 3등은 하겠지... 걸었던 기대가 깨지고 믿기 힘든 결과를 받았을 때, 스스로를 납득시킬 이유가 필요했을 것이다. 이 모든 건 담임 선생님이 나보다 빠른 친구들로만 한 조로 만들었기 때문이야!


그런데 지용아, 선생님도 너희들 중 누가 빠르고 느린지 정보가 없었거든. 그리고 개인 달리기 할 때 신체적인 불공정을 최소화하기 위해 키 순대로 서서 달린 거, 그새 잊은 건 아니겠지?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지용인 성량이 크고 워낙 발음이 또박또박해서 항상 선생님이 '아나운서감'이라고 했잖아. 그러니까 네게는 목소리 달란트가 있는 대신 달리기 달란트가 약할 뿐이라고. 사람마다 주어진 달란트가 다른 것뿐이라 네가 매일 교실 안에서 빛났듯, 교실 밖에서 단 하루 다른 달란트를 가진 친구도 빛날 수 있는 거라고.  



오늘 아침은 기절할 만큼 매운 아침이었다.


아이들의 옹골찬 표현을 만나면 기쁨을 감출 수 없다. 좋아서 웃음이 절로 난다.

일요일 아침, 은재는 오리지널에 도전하려다 엄마가 말려 매움을 한 단계 낮춰 까르보 불닭볶음면과 맞짱 떴다. 첫맛은 괜찮았는데 뒤따라오는 뜨거운 매운맛은 물 한 잔, 주스 한 컵, 우유까지 들이켜고도 잦아들지 않았다. 바나나와 치즈까지 먹어도 가시지 않는 매운맛에 단단히 데어 다음엔 절대로 불닭볶음면을 먹지 않겠단다. '기절할 만큼 매운 아침'이라니. 나른한 일요일 아침에 정신이 번쩍 들었겠다.


탕후루와 불닭볶음면, 마라탕.

요즘 아이들이 선호하는 입맛이다. 극적으로 달고 맵고 짠맛들이 아이들의 입맛을 지나치게 자극적으로 길들이고 있는 건 아닌지. 어릴 때 입맛은 추억의 맛으로 오래 남을 텐데, 아이들이 30년 후에 추억하는 맛은 어떤 맛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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