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스쳐가듯 본 온라인 심리학 강의에서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가 경계해야 할 3가지 종류의 인간형으로 이 세 가지를 언급했다. 이 중에서 나르시시스트가 가장 무섭다는 말과 함께.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는 그런 성향이 심하게 발현될 경우, 범죄를 저지르게 되어 결국 사회에서 격리될 가능성이 높지만, 나르시시스트는 늘 범죄 직전에서 멈춰 있는 사람들이라 일반인들이 이들의 덫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게 그 이유였다.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의 감정만 극도로 중요할 뿐, 타인의 감정에 무감하기 때문에 누군가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호소해도 영향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기애를 가진다는 건 좋은 게 아닌가? 물론 자기애에 기반한 자존감을 가진 사람들은 일의 성공을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 주변의 좋은 이들과의 협업을 통해 효율을 극대화했다고 여길 것이다. 반면, 나르시시스트는 실력이 부족한 동료들과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자신이 잘해서 일을 성취했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자기애를 넘어 자기밖에 모르는 나르시시스트(그림 출처: pixabay)
나르시시스트는 특히 부정적인 감정에 절대적으로 취약하다고 한다. 부끄러움이나 수치심, 슬픔 등의 감정을 패자의 변명이나 자백이라 여겨 절대 인정할 수 없는 감정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자신이 잘하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남들이 못해야만 비로소 자신의 성취에 만족하는 인간형. 자기애를 넘어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라니, 김 교수의 말대로 경계 대상 1호가 맞다.
불행히도, 어린 학생들 중에도 이런 나르시시즘 경향을 보이는 아이들이 있다. 언제나 자신의 즐거움이 우선시 되는 아이, 친구의 슬픔이나 괴로움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자신의 감정만이 중요한 아이 말이다.
이런 아이들은 대체로 성과를 내는 수업 활동에 잘 참여하기 때문에 잠시 스쳐가는 사람은 별문제를 느끼지 못한다. 문제는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놀이하는 시간과 공간에서 생긴다.
다른 친구들은 엄연히 일정한 규칙과 규범을 지키며 참여하는 놀이인데도 이런 아이는 자기가 불리한 상황이 되면 쉽게 이런 것들을 무시해 버린다. 공동의 놀잇감을 자기 앞에 끌어다 놓고 혼자만 사용한다든지, 심폐소생술을 한답시고 친구가 불편을 호소해도 목과 가슴 부위를 심하게 압박한다든지, 점심시간에 줄넘기를 함부로 다뤄 다른 친구들의 활동을 방해한다든지, 친구가 잘하는 것을 절대 인정하려 들지 않고 어떤 식으로든 부족한 점을 찾아내고 기어코 꼬집어 폄하하려 든다던지…. 어린 나르시시스트들은 자신의 즐거움과 돋보임을 위해 친구들의 불편한 마음을 고려하지 않는 행동들을 서슴지 않고 해낸다.
나르시시스트 학생은 호기심이 많은 학생들과 언뜻 구분이 쉽지 않지만, 이들의 호기심 어린 행동은 친구들의 불편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단순 호기심과 구별된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한 행동이 다른 친구에게 피해를 주었을 때, 좀처럼 자발적으로 사과하지 않는다는 점도 차이점이다.
이런 유형의 아이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다른 친구에 대한 배려 없이 아무렇게 행하는 이유는 대체로 '그냥' 하고 싶어서이다. 사람을 좋아하는 데에 별 이유가 없듯, 나르시시스트 학생이 이런 행동을 하는 데에도 별 이유가 없다.
이런 학생의 '어긋난' 행동을 만날 때마다 내 안에는 여러 생각들이 다툼을 벌인다.
‘단순한 호기심에서 한 행동이었을 거야. 아니, 그래도 하지 말라고 한 일을 굳이 했어야 해? 아이들이니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욕구가 생길 수도 있잖아. 아니지, 그래도 다른 친구들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는 걸 몰랐을 리가 없어. 섣불리 판단하지 마. 그런 생각까지는 미처 못 했을 수도 있잖아. 그럼, 왜 피해를 당한 친구에게 먼저 사과를 안 한 건데? 실수했다면 우선 사과부터 하기로 얼마나 누누이 이야기했었는데….’
이렇게 수많은 내 안의 생각들과 다투다 보면 아이와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기 전부터 벌써 피로가 몰려온다.
강한 호기심 때문에 매번 '그냥' 하고 싶은 욕구를 자제하지 못할 때, 사고는 생기기 마련이다. 사고의 피해는 대부분 무고한 다른 아이들이 겪는 일이라 다른 친구들의 불편에 둔감한 아이들은 또다시 그런 행동을 반복하여 주변인들을 힘겹게 한다. 또한, 결과적으로는 자신에게도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다. 주변인들을 계속 불편하게 만듦으로써 친구들이 거리를 두게 되고, 그러다 보면 친구들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가 되기 때문에 결국 그 아이가 외로워지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계속되는 불편한 행동들을 보면, 이 아이에겐 행동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기본적인 개념이 있긴 한 걸까 궁금해진다. 자신의 행동으로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었다면 책임을 질 줄도 알아야 한다. 친구에게 불편을 주는 행동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학급긍정훈육법>, 제인 넬슨 외
『학급긍정훈육법』(제인 넬슨 외 지음)에서는 다양한 긍정 훈육법들을 제시하고 있다. 친구들과 반복적으로 문제 상황을 일으키는 학생들에게는 '긍정적 타임아웃'과 '제한적 선택' 방법을 활용해 보면 어떨까?
'긍정적 타임아웃'은 '친절한' 문제해결기술 중 하나로, 문제 상황을 일으킨 아이들이 마음을 안정시키고 기분을 전환할 수 있도록 돕는 공간을 미리 마련해 두는 것이다. 물론 이 공간은 학기 초에 아이들과 함께 공들여 만들고 아이들로 하여금 '쉼의 공간'이라는 의미를 담을 수 있도록 이름을 붙이게 하여 반 전체 아이들이 이 공간에 대해 ‘내가 주인’이라는 생각을 먼저갖도록 한다.
상대의 마음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만을 내세우며 씩씩대는 아이에게 “네 마음이 좀 더 안정되면 더 대화를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우리 반 전체가 함께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니, 00(아이들과 함께 만든 공간)에서 조금 쉬었다 오는 게 좋겠니?”하고 부드럽게 제안해 본다. 스스로 생각해도 썩 잘한 행동은 아니기 때문에 아이도 다른 친구 모두에게 자신의 문제 행동이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 함께 만든 공간에서 책을 읽거나 인형을 안거나, 팝잇 놀잇감(실리콘 재질의 손장난 놀잇감) 등을 만지며 마음의 안정을 얻는 것이다.
행동을 먼저 비난하거나 수치심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좀 더 마음이 진정될 수 있다면 아이도 마음의 문을 닫지 않고 다음 대화를 차분히 이어갈 수 있는 마음 상태가 될 것이다.
긍정적 타임아웃을 통해 아이가 마음이 진정되고 이성을 되찾으면 스스로 더 바람직하게 행동할 것이라 믿는 것. 이를 통해 감정과 행동은 같은 것이 아니며, 모든 감정은 수용될 수 있지만 모든 행동이 수용되는 건 아니라는 것을 배우게 된다.
'제한적 선택'은 '단호한' 문제해결기술 중 하나로, 문제가 생겼을 때 학생으로 하여금 2가지 이상의 해결책을 제시하고 선택하도록 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다.
가령, 친구와 놀잇감을 차지하기 위해 다툼이 생겼을 경우, "친구에게 사과하고 이 놀이를 계속하거나, 아니면 이 놀이 말고 다른 놀이로 옮겨 갈 수 있어."와 같이 학생으로 하여금 두 가지 이상의 선택지에서 고르도록 하는 것이다. 문제가 된 행동을 멈추도록 하되, 학생의 의사를 존중하며 행동을 수정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학급긍정훈육법』은 상호 존중과 배려와 격려로 행복하고 민주적인 교실을 만드는 교육법이다. 이를 통해 가치 있는 사회적 기술과 삶의 기술을 학급 내에서 배우는 것이다.
교사는 한인간으로서의 인격과 감정에 대해서는 친절해야 하지만, 한 인간이 공동체 구성원으로 살아가기 위한 약속과 책임에 대해서는 단호해질 필요가 있다. '친절하되 단호한' 교사가 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끊임없이 고민하며 실천해 가야 할 일이다. 모든 아이들이 교사와 맺은 유대감을 통해 격려받고 우리 학급 구성원이라는 소속감을 느낄 수 있어야 모두가 안전하고 평화롭게 학교생활을 영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반도 놀이를 함께 하는 친구들을 불편하게 하면 두 가지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친구에게 사과하고 놀이를 계속할지, 하던 놀이를 떠나 다른 놀이로 옮겨 갈지. 아이들이 선택하는 순간,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행동에 대해서 스스로 책임을 지고 자신의 감정만큼 타인의 감정도 소중함을 알아가길 바란다.
덧붙이자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대학의 심리학자 에디 브루멜만 교수의 연구 결과, 부모의 과한 칭찬이 아이를 나르시시즘에 빠뜨릴 경향이 높다고 한다. 내 아이가 자기애를 넘어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으로 자라지 않도록 다른 아이와 비교하지 않으면서 적절하게 칭찬하는 방법에 대한 부모의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다. 부끄러움과 수치심, 슬픔과 같은 부정적 감정도 틀린 것이 아님을 알고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격려하고 지지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모든 아이들은 소속감을 통해 자존감을 느끼고 싶어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어디에도 마음 둘 데 없어 자신의 존재감을 왜곡된 방식으로 표현하는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모든 아이들이 학급의 일원임을 느끼고 책임을 다하도록 방법을 모색하는 일. 건강한 학급 운영을 위해 우선시 되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