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혜영 Feb 24. 2024

선생님의 방학, 다음 교실을 생각하며


학년말 업무가 휘몰아칠 때는 정말 입에서 단내가 나곤 한다. 동학년 선생님들과 눈이 마주칠 때면 "오늘은 뭐 제출이죠?"가 안부 인사였다. 그렇게 오래 해 온 일인데 왜 학년말 업무는 익숙해지지 않는 걸까. 서로 챙겨주던 동료 교사들이 없었다면 매일 나의 부족한 일머리에 좌절했을 터였다.


그래도 올 것은 기어이 온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학년말 업무를 마무리 짓던 날, 동료 교사들과 함께한 올해 마지막 학년 회의에서는 뜨거운 전우애(?)가 피어났다. 빗발치는 업무 포화 속에서도 살아남은 전사들이여, 고생했다! 그렇게 우린 겨울 방학을 맞이했다.


오래전, 은행 취업과 교사 임용고시에 동시에 합격했던 선배가 있었다. 남들은 하나도 힘든 취업문을 두 개나 거머쥐고도 고민되겠다, 싶었는데 정작 본인은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선배는 일만 하다 죽고 싶지는 않다며 연봉은 적어도 자신만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여유를 택하겠노라 교사가 되었다. 그 선배가 생각한 '삶의 여유'란 교사라는 직종만이 누릴 수 있는, '방학'을 말함이었다. 선배는 진짜 교사가 되기 전엔 방학을 그저 '긴' 휴가쯤으로 여겼을 것이다.


20년 이상 교직에 몸담으며 그 많던 방학 동안 내게 '긴' 휴가가 있었나 생각해 본다. 돌아보니, 오로지 쉬면서 방학을 보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각종 연수를 듣고 학원을 다니고(한때 영어회화 학원에 엄청나게 쏟아부었던 본전은 언제 돌려받으려나), 대학원을 다녔다. 누가 떠미는 것도 아닌데 왜 좀 푹 내려놓고 쉴 줄을 모르는 것인가. 때로는 이것도 병이구나 생각했다.


들끓기만 하다간 냄비를 태우기 마련이다. 모든 일엔 완급 조절이 필요할 텐데 그걸 할 줄 몰랐다. 그런데 이것은 내가 유독 훌륭한(?) 교사여서 그런 게 아니다. 연수를 가면 학교도, 근무지도 다른 교사들로 꽉 차 있었고 대학원에 가도 방학을 반납하고 뭔가 더 배우고 싶어 안달 난 교사들로 넘쳐났다. 천생 교사들은 '평생 배우는 자'들이다. 먼저 배워서 남 주고 싶어 '선생(先生)'이 된 사람들 아닌가.

코로나 이후 면대면 연수가 사라졌던 시기에도 교사들은 각종 원격 연수를 받으며 배움을 이어갔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21세기 어린이들을 고객으로 모셔야 하는 직종 종사자로서 배워야 할 것은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방학 전, 교실을 정리하다 보니 2년 전에 구입했던 학생용 '독도리나(한국식 오카리나 중 소프라노 악기)'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2학년 아이들에게 오카리나를 가르쳐 주려고 산 것이었는데, 코로나 기간 동안 비말의 위험이 있는 '부는' 악기들은 일제히 퇴출당했었다. 그 자리를 대체했던 실로폰과 리듬 악기는 리코더와 오카리나를 함께 불며 학생들과 나누었던 음악적 교감까지 대체해 주진 못했다.

피아노, 바이올린, 플루트와 같은 거창한 악기를 배우는 요즘 학생들에게 오카리나란 악기는 어쩐지 작고 보잘것없어 보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오카리나나 리코더의 최대 장점은, 곡을 연주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다른 악기들에 비해 비교적 빠른 시간 내에 곡 하나를 연주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악기에 들어가는 비용의 차이는 두말할 것도 없다.


예전에 내게 오카리나를 배웠던 우리 반 한 학생의 어머니는 아이가 피아노 학원 다니는 것을 너무 싫어해서 음악을 싫어하는 줄 알았다고 하셨다. 그런데 웬일인지 오카리나 부는 것은 너무 좋아한다며 신기해하셨다. 간단한 운지법으로 노래 한 곡을 연주하는 데에서 오는 성취감, 바로 그것이 이 작은 악기에 어린 학생들이 매료되는 이유다.


아무튼 나는 새 학기에 만날 학생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을 배우고 싶었다. 방학 전에 오카리나 연수를 신청했고, 그렇게 방학 첫 주는 교사 대상 한국식 오카리나 연수로 꽉 채웠다. 노래 가사와 선율에 담긴 정서를 교감한다는 것은 함께한 이들 사이에 특별한 감정을 만들어준다. 좋아하는 가수의 팬클럽 멤버들이 끈끈해지는 이유와 비슷할까. 연수 마지막 날, 연수에 참석한 교사들끼리 미니 연주회도 가졌다. 부족한 연습량에 만족스럽진 못했지만, 그런 아쉬움이 계속 연습하게 할 것이다.


남은 방학 기간에는 아이들 글쓰기 관련 책을 읽으며 좀 더 체계적인 글쓰기 교육 계획을 세워 보았다. 관련 원격 연수도 병행하면서.

올해 새로 만날 아이들과 어떤 곡들을 오카리나로 불고 어떤 이야기를 쓰고 나누며 교감할지 벌써 설렜다.


다음 교실을 생각하는 교사들의 겨울 방학은 배움과 새 학년 준비로 후끈합니다. (사진 출처: pixabay)


2월, 아이들이 없는 학교에 출근을 시작한 첫날, 다음 학년도에 맡게 될 학년과 학급 배정이 완료되었다. 겨울 방학 전에 동학년 교사들끼리 고심하며 우리 학년 학생들의 분반을 하고 다음 학년으로 올려 보냈었다. 새 학년 역시 그렇게 진급한 학생들의 명단으로 반을 정했다. 1, 2, 3반으로 분반된 학생들 명단이 든 봉투를 제비 뽑기 하여 새 학년, 내 반이 될 아이들을 뽑는 것이다. 여러 개의 봉투 중 하나를 뽑으면서 모든 교사들의 마음은 한 가지였을 것이다.


‘1년 동안 무탈하게 보낼 수 있는 반을 뽑게 해 주소서.’


우리 학년이었던 아이들을 반배정하면서 얼마나 고르게 섞으려고 노력했는지를 생각하면, 이런 소망(所望)은 한낱 소망(小望)에 불과하다는 것을 누구나 안다. 여러 반 모두 비슷하게 다양한 성향의 아이들로 이루어져 있으리라는 것을 모르는 교사들은 없다. 그럼에도 그 순간, 나와 합이 맞는 아이들을 만나길 바라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인 것이다.

"아우, 떨린다!" 하면서 봉투를 하나씩 뽑고 설레는 마음으로 명단을 열어 대부분 알 리 없는 명단 속 학생들의 이름을 쭉 훑어본다. 이름만 보면 아이들의 면면을 다 알기라도 할 것처럼.


몇 명의 강○○, 김○○, 박○○, 정○○…. 그렇게 새로운 30여 명의 아이들과 미리 만난다. 종이 위에 쓰인 이름으로 미리 만난 아이들은 아무리 '관심법'으로 꿰뚫어 본들 지금은 큰 의미가 없다. 이 아이들과 3월부터 어떤 그림을 그려 가느냐에 따라서 한 명, 한 명의 이름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새로 배정된 학급으로 교실의 물건을 옮기고 새 학년, 새 학기 교육과정을 짜며 교실 환경 정리까지 마무리될 즈음이면, 의미 없던 종이 위의 이름들이 각자의 다른 표정을 가지고 학교를, 나를 찾아올 것이다. 그렇게 2월의 학교는 3월의 아이들과의 만남을 위해 '외부로는 티가 나지 않는' 부산함으로 채워진다. 그렇게 새로운 만남을 특별한 인연으로 만들어가며 아이들과 교사들은 또 다른 이야기를 써나갈 것이다.


연일 추운 날씨지만 다음 교실을 생각하는 교사들의 겨울 방학은 배움과 새 학년 준비로 후끈하다.








이전 07화 우리 반 나르시시스트와 함께 사는 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