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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영 Mar 09. 2024

초등학교 교실, 모두의 꿈이 시작되는 곳


친정집 앨범에서 귀한 사진 두 장을 발견했다.


번째는 내 국민학교 입학식날, 동생과 나란히 서서 찍은 사진이다. 연년생인 동생과 동시에 초등학교에 입학한 날이었으니 당시 우리 집의 큰 행사였겠다. 사진을 보니, 이름표 아래 하얀 가제 손수건이 달려 있었다. 입학식이 열리는 3월 2일은 춘삼월을 시샘하며 물러가지 않은 겨울 끝추위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 시기다. 그런 날, 추위에 오들오들 떨며 운동장에서 입학식을 치르는 동안 눈물, 콧물을 흘려야 했던 아이들을 위한 작은 배려였을까.


평소 웃음 많은 우리 자매였는사진 속에선 양미간을 찌푸린 채 표정이 좋지 않은 걸 보면 입학식 행사가 녹록지 않았던 모양이다. 요즘엔 초등학교 입학식을 추위에 떨며 운동장에서 치르지도 않거니와, 내가 어릴 때처럼 콧물을 많이 흘리는 아이도 없어서 초등 1학년 입학식 가제 수건은 추억의 장면으로만 남았다.


1978년 서울 종로구 매동국민학교 입학식 모습이래요. 국민학교는 초등학교의 옛 명칭으로 1995년까지 사용됐습니다. (사진 출처: 서울 신문)


두 번째 사진은 초등 6년의 기간 동안 몸도, 마음도 훌쩍 자란  국민학교 졸업 사진이다. 사진을 바라보는 눈길에 제법 짱짱한 총기가 어려 있는 걸 보니, 초등 6년 동안 조그맣던 코흘리개가 제법 사회적인 인간의 모습으로 탈바꿈모양새다.


입학과 졸업 사이의 초등 6년의 기간 동안 나는 어떤 꿈들을 키워갔던가.

매일 만나는 선생님은 제일 크고 멋진 어른 같아서 선생님이 되는 게 내 첫 번째 꿈이다. 그러다 글을 잘 쓴다는 칭찬을 들으면 작가, 그림을 잘 그린다는 칭찬을 들은 날엔 화가라는 꿈도 마음에 품었다. 선생님의 칭찬 한마디에 내 꿈의 스펙트럼은 한없이 넓어졌다. 국민학교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내게 '팔방미인'이라는 별명까지 붙여 주셨다. 13살이 되도록 그렇게 고급진(?) 어휘를 접해 보지 못했던 나는, '미인'이라는 말이 가져다주는 미묘한 어감에 가슴이 콩콩 뛰었다. 세월의 굴곡을 지나 그때 첫 꿈이었던 교사가 되어 20년이 넘게 아이들과 함께 있으니 꿈은 초등학생 시절에 이미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어릴 적 선생님들께서 보여주셨던 지지와 격려는 살아가는 데 가장 큰 힘이었다. 그래서 나도 우리 반 아이들과 3월 첫 주, 서로를 알아가는 활동에서부터 그런 노력울인다.

아이들은 친구들과 각자의 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후, 작은 메모지에 간단한 그림과 짧은 글로 남겨 각자의 사물함에 붙인다. 사물함은 매일 여닫는 공간이니 아이들은 3월에 써붙인 자신의 꿈을 일 년 내내 만나게 될 테다. 많으면 하루에도 서너 번씩 마주하게 될 자신의 꿈. 간호사, 발레리나, 가수, 축구 선수, 수의사, 외교관, 선생님, 사서, 생태학자, 경찰관... 이렇게나 다양한 아이들의 꿈이 끝까지 격려받는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다채로워질까. 초등학교 시절에 마음에 품은 꿈 하나가 아이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줄지 사뭇 궁금해진다.


언젠가 강남 학원가에 '초등 의대 준비반'이 생겼다는 뉴스를 접하고 깜짝 놀랐다. 다채로운 아이들의 꿈을 격려해 주지는 못할망정, 앞으로 아이가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을지 혹은 흥미를 보일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아이들의 꿈을 미리 정해 놓는 어른들 기준의 욕심이 안타까웠다. 천문학자, 물리학도가 될 수도, 우주인, 배우, 작가가 될 수도 있는 아이들을 어른이 바라는 한 가지 꿈을 향해 몰아가다니. 누군가에게 선택권을 빼앗기고 꿈을 강요당한 어린이가 다 자라서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아이들은 자신에게 무수히 일어나는 일들을 겪으며 세상을 이해한다. 학교라는 공동체 안에서 인간적 성품과 사회적 기술을 배우고 공동체 의식을 바탕으로 문제를 평가하며 자기 판단력을 키워간다. 그렇게 어린이 스스로 세운 자아 미래상에 대해 격려받으며 선택권을 가질 때, 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서의 소속감과 자존감이 자라나는 것이다.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초등학교에 들어섰던 초등학교 입학  첫날을 기억해 보자.

아직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순백 도화지의 모습으로 입학하여 어떤 무한한 가능성을 그려낼지 아무도 상상 못 할 초등 6년의 시작을. 아무것도 정립되지 않은 채 들어와 무언가 자신의 꿈이 어렴풋이 잡힐 즈음 졸업하게 되는 곳, 초등학교. 모두의 꿈이 시작되는 그곳에 우리의 미래가 있다.

그렇기에 학교는 그 어느 곳보다 안전하고 무해하며 단단하게 뿌리내릴 수 있는 터가 되어야 한다. 그러니 이 터를 보호하고 살피는 역할이란 얼마나 막중하며 어찌 힘들고 고되지 않겠는가. 하지만 교육 공동체가 한 마음이 되어 함께 고민하고 그 중요성을 인지한다면 결국 태산같이 큰 보람이 고됨이기리라 믿는다. 이에 대한 결과가 고스란히 우리 아이들에게 돌아간다는 것을 교사와 학부모 모두 항상 상기했으면 좋겠다.


김소영 작가는 <어린이라는 세계>에서 '선생님은 어린이들이 가장 일상적으로 만나는 전문가이고 때로는 유일하게 만나는 지식인이며, 어떤 어린이에게는 자기가 아는 가장 친절한 사람'이라고 했다. 바꾸어 생각해 보니, '어린이는 교사가 일상적으로 만나는 가장 순수한 존재이고 교사의 말에 가장 귀를 기울이는 경청자이며, 아무 대가 없이도 교사를 가장 좋아하고 따르는 사람'이다. 이처럼 완벽한 상대의 퍼즐 조각인 교사와 어린이가 나머지 퍼즐도 잘 완성해 갈 수 있도록 어느 누구도 상처받지 않는 곳, 모두의 꿈을 응원하는 곳. 초등학교 교실이 그런 곳이 되기를 바란다.



초등학교 교실, 모두의 꿈이 시작되는 곳 (사진 출처: pixabay)




덧)

안녕하세요. 두서 없이 시작한 <모두가 건강한 교실, 어쩌면 쉬울지 몰라>의 연재를 글을 끝으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작년 한해, 모든 교사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서이초 사건 이후, 학생, 교사, 학부모가 함께 행복할 있는 학교에 대해 고민하며 이 연재글들을 썼습니다. 이 글들이 제 작은 고민으로 그치지 않고 비슷한 고민을 해주신 마음 좋은 출판사를 만나 4월 중순이후 책으로 출간될 예정입니다. 아직 제목을 고민 중이니 제목이 확정되면 소식 전하겠습니다. 그동안 읽어주시고 격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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