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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영 Feb 03. 2024

너무너무 슬펐던 학급임원선거

다치지 않고는 성장도 없다

* 이 연재 글에 쓰인 학생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임을 밝혀둡니다.



초등학생 때 학급 임원이 된다는 건 대단한 뭔가가 되는 것이었다. 나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친구들의 수를 투표로 확인하는 과정은 긴장되면서도 짜릿했다. 누가 얼마나 많은 표를 얻을 것인지 공개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은 손에 땀을 쥐게 했다. 내 이름이 불렸을 때의 희열과 상대 이름이 불렸을 때의 불안으로 선거가 진행되는 시간 내내 쿵쾅대는 심장을 붙들어야 했다. 후보의 이름이 불릴 때마다, "와~!", "아~!" 하는 반 친구들의 환성과 탄성의 엇갈린 반응은 임원 선거의 분위기를 한껏 고양시켰다.    

 

내가 국민학교(초등학교의 옛 명칭. 1995년까지 사용되었지요.) 때까지만 해도 학급 임원이 되면 학급에 부모가 물심양면으로 신경 써야 했다. 그런 줄도 모르고 학급 회장이 못 되고 부회장으로만 뽑히는 걸 못내 아쉬워했었다. 그때는 성적 순서대로 임원 후보가 될 수 있었는데, 지금은 다행히 그런 불합리한 임원 후보 선정은 사라진 지 오래. 반 아이들 누구나 원하면 후보로 나설 수 있다. 친구들 앞에 나설 수 있는 배짱과 용기. 자격 조건은 그거면 충분하다.      


학교에 따라 다르지만, 우리 학교는 2학년도 학급임원선거를 치른다. 2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학급임원선거가 예정되어 있었다. 2학기 임원 선거는 1학기와 분위기가 좀 다르다. 친구들 간 탐색전이 미처 다 끝나기도 전이어서 보통 똘똘해 보이는 친구들이 몰표를 받는 1학기 임원 선거에 비해, 2학기는 춘추전국시대라 할 만하다.


1학기 임원이었던 아이들은 더 이상 후보 자격이 없는 데다, 이미 반 친구들의 면면을 알고 있고 친한 친구들 무리도 형성된 시기라 임원 후보 신청 학생 수가 확 늘어난다. 1학기에도 마음은 있었지만 차마 나서지 못했던 아이들 중 용기를 내보는 아이들과 '어? 쟤도 나간다고? 그렇다면 나도….' 하는 따라쟁이 친구들까지, 우리 반 30명 정원에 15명이 회장 후보로 나섰다.     


후보로 나선 아이들은 자기 자신에게 투표를 할 테니 후보자 간 표 차가 얼마 나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었다. 1학기 때처럼 과반의 지지를 얻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동수표가 나와 투표를 또 해야 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7표를 받은 친구가 회장으로 당선이 되었다. 한 표는 자신이었을 테고, 다른 후보 14명을 제외한 남은 친구들에게 6표나 받은 건 몰표나 다름없었다.     


문제는 부회장 선거였다. 남은 친구들의 과반에 가까운 지지를 받은 친구가 회장이 되고 나니, 부회장 후보 표는 더 중구난방이었다. 부회장 선거에만 나서는 아이들이 몇 더 추가되어 후보가 17명이 되었으니, 이건 뭐 투표자보다 후보가 더 많은 상황. 그러니 후보자 간 표 차가 더 줄어들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다행히, 남자 부회장 후보는 상대적으로 수가 적어서 첫 번째와 두 번째 후보자 간 표 차가 꽤 되었는데, 여자 부회장은 마지막까지 누가 될지 단정 지을 수 없을 정도로 박빙이었다.

이미 회장 후보로도 나섰다가 고배를 마셨던 민진이와 수화의 표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다. 두 아이의 이름이 번갈아 불릴 때마다 반 아이들의 반응이 엇갈렸다. 두 아이들 표정엔 긴장한 빛이 역력했다. 두 손을 꽉 모아 쥐고 있는 수화의 흰 낯빛이 더 창백해졌다.


제발 몇 표라도 차이가 나기를 바랐는데…. 결국 1표 차로 민진이가 부회장이 되었다. 민진이가 1표 차로 당선이 확정된 순간, 민진이에게 표를 주었던 친구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그와 동시였을 게다.

수화가 엉엉 울기 시작한 것은.

얼마나 낙심했던지 목놓아 펑펑 우는데 어르고 달래도 좀처럼 진정하지 못했다.     


수화를 불러 교실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달래며 토닥거리니 수화는 더 깊은 슬픔에 젖어들었다.

"너무 아쉬워요. 엉엉엉! 회장 안 되어서 부회장은 될 줄 알았단 말이에요. 한 표 차이로 안 되다니 너무 슬퍼요. 어헝엉…"

실컷 울고 나서 좀 진정됐을 때 교실로 돌아간 수화는 쉬는 시간 내내 엎드린 채 서러워했다. 몇 친구들이 수화에게 몰려가 위로했지만 수화에게 잘 닿지는 않는 것 같았다.     


남은 수업 시간 내내 한껏 풀이 죽어지내다 힘없이 돌아간 수화가 걱정되어 아이들이 모두 돌아간 뒤 수화 어머니께 연락을 드렸다. 교실에서 나가면서 수화는 엄마와 통화하며 또 한바탕 울었다고 했다. 수화 어머니는 평소에 마음이 여린 수화가 임원 선거에 나간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며, 박빙의 표까지 얻었다는 사실에 대견해하셨다. 수화 어머니가 좀 더 의연히 수화를 대해줄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수화는 그날의 생각을 글쓰기 공책에 고스란히 담아내었다. 제목은 '너무너무 슬펐던 학급임원선거'.     


오늘 임원 선거가 있었다. 회장 선거에 나갔는데 떨어지고 부회장 선거에 나갔는데 1표 차이로 떨어졌다. 회장에서 떨어졌을 때 부회장은 꼭 될 줄 알았는데… 너무 슬펐다. 너무 슬퍼서 계속 눈물이 나왔다. 선생님과 친구들이 달래줬지만 그래도 슬펐다. 글을 쓰는 지금도 슬프다. 그래도 내게 표를 준 친구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엄마는 임원 선거에 나간 것만도 용기 있는 일이라고 칭찬해 주셨다. 내년에는 회장이나 부회장이 되었으면 좋겠다.     



마음먹고 용기 낸 일이 좌절되었을 때 얼른 털고 이겨내기란 어린아이에게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될 줄 알았던 일이 실패로 끝났을 때 낙심한 마음을 추스르는 데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까. 그래도 다시 힘을 얻고 기운을 낼 수 있는 건 도전을 격려하고 지지해 주는 이들 덕분일 것이다. 수화가 좌절하고 슬퍼했지만 다음에 희망을 거는 것도 이 때문일 테다. 실망하고 좌절했던 시간을 곱씹으며 그 마음을 고스란히 글로 옮겨내면서 수화 내면의 마음 근육도 조금은 딴딴 해졌겠지.  

   

번데기에서 힘겹게 우화(번데기 유충이 성충 잠자리가 되는 과정)하는 잠자리를 돕고자 일찍 꺼내 주면 잠자리는 일찍 죽고 만다. 잠자리는 고군분투하며 번데기에서 몸을 빼내는 시간(보통 2~4시간) 동안 잠자리 날개를 스스로 펴서 말릴 수 있는 힘도 함께 키워가는 것이다. 그 과정이 너무 힘겨워 보여 외부의 힘으로 번데기를 밖으로 미리 꺼내 주면 나오는 과정에서 길러지는 힘을 제대로 발달시키지 못하고, 결국 날개를 펴지도 못한 채 그대로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잠자리는 2~4시간에 걸쳐 우화하는 동안 스스로 날개를 펼칠 힘도 함께 키웁니다. (사진 출처: pixabay)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 어찌 부침 없이 성장하기를 기대할 것인가. 그러니 아이들이 도전하고 실패했다면 크게 손뼉 쳐 주어야 할 일이다. 좌절하지 않고 실패를 교훈 삼아 다시 기운낼 수 있도록 기다리고 한껏 격려해 주어야 할 것이다.   


여담이지만, 또 다른 여자 부회장 후보였던 소담이의 다음 글을 보며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금요일에 학급임원선거를 했다. 회장이 되고 싶었지만 떨어졌다. 부회장도…. 역시나! 떨어졌다. 하지만 더욱 아쉬운 건! 반장 뽑을 때 내 표가 1표였다. 그런데 내가 나를 투표했는데… 내가 만약에 다른 애를 투표했다면 나는 0표였을 거다.
3학년엔 꼭!! 회장이 되고 말 것이다.     


자기 자신 빼고는 아무도 표를 주지 않았다는 것을 알면서도 3학년 때 꼭 회장이 되겠다고 다짐하는 소담이의 호기가 무척 반가웠다. 소담이의 글 끝에 이렇게 답글을 달아주었다.     


나를 응원하는 '내'가 있으니 언제나 네 편은 하나 있는 거야. 파이팅!     


도전하고 좌절하고 응전하고 또 쓰라림을 맛보며 계속 일어나기를. 이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단단하게 성장할 모든 아이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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