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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영 Jan 27. 2024

'배려'와 '존중'을 배우는 꼬리잡기 놀이

* 이 연재 글에 쓰인 학생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임을 밝혀둡니다.



2학년 통합 교과인 <봄> 시간. 그 첫 단원은 1학년과 달라진 내 몸과 마음을 살펴보며 자기 자신에 대해 더 알아가는 수업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내용 중 한 차시 수업이 '꼬리잡기' 놀이다.


술래가 나머지 친구들의 꼬리를 많이 잡을수록 이기는 놀이 활동으로, 보통 손수건 등을 뒷주머니나 바지춤에 끼워 임시로 꼬리를 만든다. 술래는 친구들의 꼬리를 하나라도 더 잡으려고 뛰어다니고, 술래 아닌 아이들은 안 잡히려고 안간힘을 쓰며 달아나는 놀이. 그러다 보니, 이 놀이가 끝나면 양쪽 모두 온몸이 흠뻑 땀에 젖는 역동적인 수업이다.


그림 출처: 블로그 <행복나무연구소>


학교와 학원을 오가느라 친구들과 신나게 어울려 뛰어놀 시간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얼마나 귀한 시간이겠는가. 놀이 장면이 그려진 교과서를 미리 본 아이들은 이 수업이 든 날 1교시부터  들떠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른 해와 다른 고민이 있었다. 우리 반에 뛰고 달리는 활동을 하기 힘든 아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건이는 유아기 때 발병한 소아마비로 인한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였다. 몸의 운동 신경이 발달하지 못해 손가락으로 연필을 쥐고 쓰는 것조차 어려웠, 혼자 걸을 수 없어 휠체어에 앉아 학교생활을 해야 하는 중증 장애를 가진 아이였다. 학교에는 대건이 같이 도움이 필요한 학생을 전담해 줄 사회복무요원이 있어 매 수업 시간, 대건이 옆에서 학습과 화장실 문제 등을 도와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수업 시간에 내가 대건이를 별도로 더 챙길 필요는 없었다.


대건이는 처음 만났을 때 우려했던 것과 달리 애정 표현도, 웃음도 많은 아이여서 별 걱정 없이 지내고 있었는데, 몸을 움직이는 놀이 활동 수업과 처음으로 맞닥뜨린 것이었다.


3월이 다 지나가도록 대건이는 친구들과 렇다 할 대화조차 자유롭게 나누지 못하고 있었다. 놀이 활동은 대건이가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친분을 쌓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 수업을 어떻게 진행하면 좋을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몇 가지 대안을 생각해 보긴 했지만, 담임교사가 일방적으로 놀이의 방법을 바꾸는 건 다른 아이들의 입장에서 그다지 유쾌한 방법은 아니었다. 아이들과 함께 고민해 보기로 했다.


"얘들아, 오늘은 꼬리 잡기 놀이를 할 거야."

1교시부터 이 시간을 기다려왔던 아이들은 와!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질렀.

"그런데, 우리가 함께 고민할 게 있어."

당장 교실을 뛰쳐나갈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던 아이들은 담임 선생님의 이 '불길한' 말에 일순 긴장했다. 놀이를 그냥 하면 되지, 고민거리라니... 설마 선생님이 놀이를 미루려는 건 아닌가, 아이들 눈에 의심과 불안의 눈빛이 어렸다.  

"원래 꼬리 잡기 놀이는 밖에서 뛰어다니면서 하는 놀이잖아."

이렇게만 말했는데 한 아이가 "그럼, 대건이는 놀이하기 어렵겠"다대신 보태 주었다.

"그렇겠지? 놀이인데 우리 모두가 즐겁게 참여해야지, 누군가 놀이를 함께하지 못한다면 아쉬운 일이겠지?"


그렇게 아이들과 대건이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놀이 방법에 대해 의논하기 시작했다. 한 아이가 밖에서 하면 뛰어다녀야 하니 교실에서 걸어서 하면 어떠냐는 의견을 냈다. 그렇더라도 좁은 공간을 이동할 때 휠체어라는 물리적인 구조물이 있는 한, 대건이가 자유롭게 놀이에 참여하기는 어려웠다. 다른 아이가 그렇다면 걷지 말고 모두 앉아서 놀이하면 어떠냐고 했다. 몇몇 아이들이 "그럼 되겠다!"며 동의를 표했다. 아이들은 뛰고 달리는 흥미로운 요소가 줄어드는 것을 개의치 않고 어떻게 하면 대건이도 즐겁게 놀이에 참여할 수 있을지 방법을 찾는 열중하고 있었다.


결국, 아이들의 의견에 내 의견을 더해 놀이 방식은 이렇게 바뀌었다. 아이들이 빙 둘러앉은 원으로 경기장을 만들고 그 원 안에서 두 명씩 앉아서 1:1로 놀이를 진행하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놀이 전 받은 손수건을 바지 주머니나 웃옷 목덜미에 살짝 끼운다. 바깥으로 더 길게 드러나도록. 일정한 시간 동안(2~3분) 둘 중 상대방의 손수건을 먼저 가로채는 친구가 이기는 방식이었다.


앉아서 진행하는 방식이라 역동성은 떨어졌지만, 상대 친구의 꼬리인 손수건을 먼저 낚아채기 위해 두 친구 사이에는 꽤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다른 친구들의 경기가 진행될 때 아이들은 친구들을 응원하느라 목청을 돋웠다. 대건이가 다른 아이와 놀이를 진행할 때, 아이들이 교실이 떠나가게 대건이를 응원했음은 물론이다. 앉아서 놀이에 임하는 대건이의 움직임은 다른 친구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적극적으로 놀이에 참여한 대건이는 결국 친구에게 꼬리가 먼저 잡혔지만, 어떤 날보다 크게 웃었다.


놀이가 끝난 후, 아이들과 수업에 대한 짧은 소감을 나누었다.

"대건이도 함께 놀이에 참여해서 좋았어요."

"친구들이 저를 응원해 줘서 힘이 났어요."

"친구에게 꼬리를 뺏겨서 아쉬웠어요."

아이들은 저마다 놀이에 대한 다양한 소회를 나누었다. 물론, "다음엔 밖에서 놀이하고 싶"다는 의견도 있었다. 왜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으랴. 교실이라는 좁은 공간을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이 얼마나 신나 하는지 모르는 바 아닌데. 그럼에도 자신의 즐거움을 조금 줄여 모두 함께 할 수 있는 놀이 방법을 모색해 준 아이들이 대견했다.


아이들은 이번 수업을 계기로 조금 양보하면 모두가 즐거운 수업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배웠으리라. 아이들의 움직임 욕구가 다 채워지지 않은 자리는 친구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가득 메웠다. 그렇게 수업을 만들어 낸 주체가 자신들이라는 사실에 뿌듯해하며.


아이들이 이날 자신들이 설계한 놀이 수업의 만족감을 오래 기억했으면 좋겠다.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은 주위에 응당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은 없는지 살피고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얻어진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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