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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영 Jan 21. 2024

어린이가 가진 상상력의 힘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것은 '상상력을 잃는다'는 말과 유사어가 아닌가, 싶다. 대통령도 되고 과학자도 되고 우주비행사가 되기도 했던 맹랑했던 어린 시절 꿈을 생각하면. 어릴 적 누구나 가졌었던 무한한 상상력의 힘은 언제부터 사그라드는 것인지 아쉽기만 하다. 요즘 아이들은 내게는 낯선 캐릭터들을 좋아해 슈퍼마리오, 아이언맨, 진격의 거인도 되고 싶어 한다.

누구라도 될 수 있고,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상상의 세계. 그곳은 아이들의 꿈의 세계이자, 도피처다. 언제나 주인공이고 싶은 아이들에게 영향력이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현실 세계로부터 훌쩍 떠날 수 있는 자기들만의 은신처가 필요한 건 당연한 게 아닐까.


나도 어렸을 때 소공녀, 소공자 이야기를 읽고 내 친엄마가 따로 있을 거라고 상상했던 때가 있었다. 엄마께 호되게 야단을 맞은 날, 마음의 땅속으로 굴을 파고 들어가던 때 더 그랬다. 아이들의 상상의 세계는 부정하고 싶은 현실의 크기에 비례해 커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세계를 잃어버린 어른이 된 지금은 그림책을 통하지 않으면 그 세계와 만나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그림책 속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아이들의 무궁무진한 상상력을 들여다보며 어릴 적 나를 떠올리는 시간은 그래서 더 소중하다.


모리스 샌닥의 <괴물들이 사는 나라>는 늑대 옷을 입은 장난꾸러기 맥스가 집 안에서 장난을 치다가 엄마한테 혼이 나고 방 안에 근신하는 벌을 받게 되면서 상상의 나래를 펴는 이야기이다.

맥스의 상상은 작은 방을 나무와 풀이 우거진 밀림으로 만들고, 바다로 나가 항해를 하며 나아가 괴물 나라에까지 이른다. 보기만 해도 무섭게 생긴 괴물들이 달려들지만, 맥스는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 오히려 괴물들의 왕이 된다. 괴물의 왕이 된 맥스는 괴물들과 신나는 괴물 소동을 벌인다. 맥스는 상상 속에서 뛰고, 매달리고, 올라타는 등 현실 세계에서 제약받았던 모든 행동마음껏 누린다. 신나는 놀이 시간이 지나고 괴물들이 잠자리로 돌아가는 시간이 되자, 쓸쓸해진 맥스는 붙잡는 괴물들을 뒤로하고 다시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곳으로 돌아온다. 엄마의 손길이 담긴, 따뜻한 저녁 식사가 차려진 방 안으로.


모리스 샌닥, <괴물들이 사는 나라>


어른의 시간과 어린이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어릴 적 시간은 굼벵이처럼 느리기만 했던 것 같았는데, 어른이 되면 시간은 활시위를 벗어난 화살처럼 쏜살같이 흘러간다. 어느 책에서 봤던가. 어린아이들은 세세한 것까지 기억하는 용량이 커서 매 순간의 작은 일들 하나하나를 모두 기억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이것이 작아지면서 꼭 기억하고 싶은 것들만 기억한다고. 그렇게 어른이 되면 몇 가지 기억들만 연결하며 시간을 흘려보내서 시간이 짧게 느껴지는 거라고.


맥스의 상상의 세계인 괴물 나라와 현실의 방 사이의 시간의 간극은 1년이었다. 어린이가 짧은 시간 동안 얼마나 엄청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근신의 벌을 받은 작은 방에서조차 거대한 다른 세상을 만나고 굉장한 모험까지 할 수 있는 게 어린이의 상상력이다.  


이수지 작가의 <그림자놀이>는 여자 아이가 집 안의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한 창고방에 들어가 "딸칵!"하고 불을 켜면서 펼쳐지는 상상의 세계를 다룬 그림책이다. 전등불은 물건들의 그림자를 만들어내고 아이가 그림자놀이에 심취하며 펼쳐지는 그림자 세상 이야기. <파도야 놀자>와 <거울 속으로>에 이은 이수지 작가의 그림책 삼부작 중 완결 편에 해당되는 이야기로, 전편들과 마찬가지고 그림책 속에는 "딸칵!"과 "저녁 먹자!" 두 마디 외에는 글자가 없다.


이수지, <그림자 놀이>


그림자놀이를 좋아하는 아이는 창고 안의 물건들이 한 줄기 전등 빛에 만들어내는 그림자들 속에서 끝없는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그림자의 세계에서 그림자들과 친구가 되고 물아일체의 경지에까지 이르는 아이들의 무궁무진한 상상력에 또 한 번 감탄하게 된다. 이야기 하나 없이도 현실과 상상의 세계가 점점 섞여 마침내 현실인지, 상상인지 구분이 어려운 지경에 이르는 과정은 상상력 빈약한 어른의 눈에도 대단히 흥미진진하다.


아이에게 물리적으로 더 나은 교육 환경을 만들어 주지 못해 부모로서 미안한 마음이 들 때, 이 이야기들떠올리면 좋겠다. 그리고 상기하기를 바란다. 아이들에겐 물리적인 공간을 가뿐히 뛰어넘는 '상상력'이라는 거대한 힘이 있다는 걸. 아이언맨이 되어 우주를 누비는 꿈을 꾸는 아이들에게 이 세상은 너무 좁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완벽하게 짜인 넓고 멋진 공간이 아니라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숨구멍이며, 서로의 몸이 닿았을 때 전해지는 사랑의 온기다. 고명재 시인도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에서  말하지 않았나. 사랑과 사랑이 포개지면 그게 보온이라고. 좋은 부모, 좋은 사랑은 그런 걸 해낸다고. 캄캄한 환경을 넘어설 무릎과 용기를 주는 것이라고.    


가로등불 그네를 탈 수 있는 존재, 어린이의 상상력은 무한합니다. (그림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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