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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영 Jan 14. 2024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사람들

* 이 연재 글에 쓰인 학생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임을 밝혀둡니다.


정확히 무엇이 문제였는지 모르겠다.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저녁 식사 요리를 피해 볼 요량으로 사다 먹은 우거지 해장국이 원인이었는지, 시어머니께서 보내주신 한약이 내 몸에 안 맞았던 건지, 갱년기를 조금이라도 늦춰보겠다고 하루 한 번 먹는 젤리형 콜라겐이 한약과 궁합이 맞지 않았던 건지…. 그 모든 것들은 별문제가 없었는데 그것들을 받아들인 내 몸 상태가 그저 부실했던 이유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직접 요리하는 시간을 절약한 덕분에 조금은 여유로운 저녁 시간을 보내며 읽다 만 책 몇 장을 넘기고 있을 즈음부터 뱃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밤 10시부터 시작된 구토는 새벽 2시까지 이어졌고 이러다 날이 새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토사와 함께 스멀스멀 올라왔다. 아침까지 계속 이런 상태면 어쩌나. 출근은 어찌할 것이며, 우리 반 아이들은, 수업은 어찌할 것인지가 제일 걱정이었다.    

 

급작스런 사정으로 출근을 못하게 된다면 정해진 절차에 따라 보결 교사가 들어와 어찌어찌 내 반을 챙겨줄 것이다. 학교에 협력교사도 계시니 하루 정도 빠진다 해서 큰일 날 일까진 없을 일이었다. 그렇다 해도 편하게 마음먹어지지 않았다. 담임을 맡고 있는 입장에서는 내 반 아이들을 보결 교사에게 맡기는 일이 자식을 옆집에 맡기는 엄마 마음처럼 편할 수가 없다.     


조금만 새로운 활동이 나오면 눈물부터 짓는 민지, 자주 안드로메다에 멀리 보내는 정신머리를 붙들어 매어 주어야 할 병철,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 책상 위가 온통 아이 머릿속처럼 부산스러운 도환, 계단에서 자주 뛰어다녀서 다칠까 봐 걱정되는 환이… 마음에 걸리는 아이들이 한, 둘이 아니다. 담임과 있을 때는 그럭저럭 잘 지내던 아이들도 담임의 빈자리에는 내비게이션 없는 초행길처럼 종종 갈피를 못 잡곤 하니까.     


그래서 몸이 안 좋아도 좀처럼 쉴 수가 없다. 나와 아이들이라는 퍼즐이 맞춘 나름의 모양이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다르게 재단되는 게 싫다는 오만도 한몫한다. 내 눈에 그 정도면 괜찮은 아이들이 다른 누군가의 편견과 선입견의 시선을 받는 것도 불편하다. 그래서 담임교사들은 마음대로 아플 수가 없다. 불편한 몸으로 출근해도 아이들을 만나면 아픈 몸을 잠시 잊고 수업을 해내는 이유다.   

  

언젠가 담임교사로부터 전파되어 초등학생들이 코로나에 확진되자 해당 담임교사가 여론의 뭇매를 단단히 맞고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교사가 확진된 경위까지 옹호하고 나설 마음은 추호도 없지만, 이 상황이 나였다면 어땠을까. 사람마다 상황이 다르긴 하겠지만, 담임을 맡고 있는 교사들은 웬만해서는 참을만한 감기 증상으로 병가를 잘 내지 않는다. 실제로 출근해서 수업을 하다 보면 증상이 완화되기도 한다. 첫 아이를 가졌을 때 그렇게 심하게 입덧을 하던 기간에도 수업할 때는 괜찮다가 쉬는 시간만 되면 화장실로 달려가곤 했었다. 강한 책임감은 몸에 대한 강력한 통제력을 발휘하곤 하니까. 그러다 보니, 교사들은 가벼운 감기 증상쯤은 피곤이 원인이겠거니, 하고 참는 게 일상이 된 사람들이다. 그래서 명징한 감염 질환의 증세가 드러나기 전 단계에서 약간의 두통 증상으로 병가를 낼 생각이 쉽게 들었겠나, 싶다.     


과거처럼 '교사는 천직'이라는 말이 많이 퇴색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는 담임교사들은 아이들의 하루를 안전하게 품어야 할 책임감이 클 수밖에 없다. 한 교실에 30명씩 모여있는 이 아이들이 가정으로 돌아가면 모든 부모들의 귀한 외동이거나, 첫째, 둘째 아이들일 테니 말이다. 학교에 있는 동안 안전하게 지내다 올 것이라는 믿음이 없다면 부모들이 어떻게 안심하고 공교육에 아이를 맡길 수 있겠는가. 학부모들의 그 마음을 잘 알기에 교사들은 최선의 선택을 위해 고민한다. 내 몸에 이상 신호가 왔을 때, 어떻게 하는 것이 내 반 아이들을 위해 최선일까?  


교사의 선택과 결정에서 가장 우선순위는 아이들입니다. (그림 출처: pixabay)

   

아플 때 마음껏 아플 수 없는 게 교사다. 아플 때 자신의 건강 상태만 걱정할 수 없는 게 교사의 몸인 것이다. 건강 문제로 내 반 아이들을 다른 이들의 손에 맡기는 것도 담임으로서는 무책임하게 느껴지고, 아픔을 견디며 꾸역꾸역 출근하여 아이들을 돌보다 본의 아니게 방역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면 이 또한 무책임한 일이다. 어느 쪽이든 교사는 책임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럼에도, 교사는 언제나 아이들에게 미칠 영향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며 최선의 선택을 위해 고민한다. 이를 믿고 이해해 주는 학부모님들의 지지와 마음이 견고할수록 교사는 더 힘을 얻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방역 수칙 내에서 최대한 아이들의 '안전'과 '즐거운 배움'이라는 밸런스를 위한 교사들의 노력이 평가절하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행히 그날 나는 모든 속을 게우고는 훨씬 속이 편해져서 우려했던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아침에 위에 무리를 주지 않을 것으로 조금 요기하고 출근길에 나서면서 감사했다. 다른 선생님들 눈에 내 아픈 손가락들이 천덕꾸러기처럼 보일 일이 생기지 않아서 다행이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오늘따라 더 반가웠던 것은 기분 탓만은 아니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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