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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영 Jan 20. 2024

특별한 아이, 양쪽 부모와 소통하세요

* 이 연재 글에 쓰인 학생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임을 밝혀둡니다.


교사는 학생이 다양한 배움의 과정을 경험하도록 돕는 조력자이지, 치료하는 의사가 아니다. 병명을 진단받은 아픈 학생들을 교사의 적절한 대처와 관심만으로 지속적으로 변화시키기엔 한계가 있다. 다른 아이들에게도 고루 가야 할 담임교사의 에너지를 한 아이에게 다 쏟으면서도 아픈 아이의 행동이 개선되지 않고 계속 맴돌면 지칠 수밖에 없다.


나 역시 ADHD 진단을 받은 민국이와 지내던 때,  힘겹게 보낼 하루를 생각하면 출근하기 전부터 맥이 풀렸다. 오늘 하루는 또 어떻게 민국이를 감당해 낼지, 다른 친구들이 민국이로 인해 다치거나 수업에 방해를 받을 때 어떻게 현명하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을 거듭해도 좀처럼 답을 찾기 어려웠다. 어르고 달래도 보고, 진지하게 다짐 계획도 세워보고 험상궂은 얼굴로 야단도 쳐 보았지만, 민국이에게는 별 효과가 없었다.


민국이와 있는 시간 내내 민국이를 단속하느라 에너지가 바닥났다. 민국이에게 신경을 쓰느라 다른 아이들을 제대로 보지 못하면서도 정작 온 힘을 기울이는 민국이에게선 이렇다 할 행동의 변화를 못 느끼고 매일 벽에 부딪히니 교사로서 자괴감에 빠졌다. 내가 아닌 다른 선생님을 만났더라면 민국이가 더 나아졌을까. 그런 생각이 들면 교사로서의 내 자질을 의심하며 더 버거워했다. 그러다 민국이 증상이 조금 더 나은 날이면 그래, 민국이도 아이인데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걸 거야, 하며 잠시 기쁘고 행복해하다 다시 심해지면 괴롭기를 반복했다. 민국이에 대한 애증으로 당시 10년이 넘었던 내 교직 경력은 뿌리째 통째로 휘청였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나 혼자 답을 찾을 일이 아니다, 뭐라도 더 할 게 있을 거다, 민국이도 자신의 거친 말과 행동으로 친구들과 관계를 맺지 못하는 학교 생활이 즐거울 리가 있는가. 하루가 멀다 하고 민국이 어머님과 전화로 상담하고, 학교에서 대면 상담도 여러 번 진행했다. 그때마다 민국이 어머님은,

"아, 네, 아이가 제 말을 잘 안 들어서…."

하시며 말끝을 흐리는 대답과 아이 아빠에게 말해 본다는 말씀으로 얼버무리셨다.


느낌이 이상했다. 엄마의 눈빛과 심리 상태가 왠지 불안하게 느껴졌다. 민국이의 문제가 민국이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직감이 들었다. 보통의 다른 어머님들과의 상담에서는 교사가 먼저 묻기 전에는 "아빠가…."로 시작하는 말은 좀처럼 듣기 어렵다. 어머니와 이야기해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민국이 아버님과의 상담을 요청드렸다.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민국이 가족 내의 힘의 역학관계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아버님과의 상담을 요청하자, 민국이 어머님이 대답을 주저하셨다. 호기롭게 "제가 직접 아버님께 요청드리겠다"고는 했지만, 민국이네 집의 힘의 역학 관계가 이미 느껴졌는데 그 정점에 있을 아버님과 대면하는 게 솔직히 망설여긴 했다. 폭력적인 사람이면 어쩌지? 다짜고짜 욕만 해대는 사람이면? 덩치가 너무 커서 만나자마자 내쪽이 주눅 들면 어쩌나. 교사이기 전에 여자 사람이라 이런 마음이 안들  없었다. 내가 민국이를 맡은 담임교사가 아니었다면 어떻게든 이런 상황은 마주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난 교사다. 우리 반 전체 아이의 안전과 학습권을 책임져야 하는. 그래서 용기를 다.

며칠 후 교실 뒷문을 조용히 열고 들어오신 민국이의 아버님은, 그 모든 나의 상상을 깨고 무척 조신하신 분이셨다. 조금  키였지만 그렇다고 영화에서 본 깍두기 같은 거대한 덩치도 아니었고 민국이가 첫날에 내게 보여준 눈웃음이 아빠를 닮았구나, 싶은 선한 표정지닌 분이셨다.


아버님과의 상담은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러웠다. 아버님은 민국이에 대해서 어머님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를 주셨다. 민국이가 1학년 때 ADHD 진단을 받은 후 약을 복용했지만 예민한 아이라 약 복용을 계속할 수 없었다고 하셨다. 사촌 중에 민국이랑 비슷한 행동을 보이는 아이가 있었는데 크니까 점점 개선되더라는, 묻지도 않은 말씀까지 해주셨다.

 

민국이 아버님의 호의적인 태도에 희망이 보였다. 그래서 "자기의 의사와는 다른 행동과 말을 하게 되는 민국이도 학교 생활이 즐겁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어른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을 다해야 하지 않겠느냐, 필요하시면 교육청에서 지원하는 무료 상담센터를 연계해 드릴 수도 있다" 식으로 계속 아버님을 설득했다. 조금 고민하시던 아버님은 "가족 모두 상담센터를 찾아가 보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주시고 돌아가셨다.


그 후, 민국이 가족이 함께 상담 센터를 찾아 진단 검사를 받았고 어머님의 우울 진단과 아이의 ADHD 진단을 받아 한동안 치료를 진행했다. 민국이는 치료와 더불어 한동안 눈에 띄게 전보다 안정적인 학교생활을 하게 되었다. 물론 그 후로도 기복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아버지가 아이의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참여하셨다는데 의의가 컸다.


특별한 아이일수록 부모 모두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사진 출처: pixabay)


다른 아이들보다 좀 더 관심이 필요한 '특별한 아이들'의 경우, 아이의 엄마와만 소통하면 온전히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이것은 자칫 특별한 아이를 낳고 양육하면서 아이 엄마가 지속적으로 경험했을 육아에 대한 부담과 감정적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다. 반복된 힘겨운 일상에 어쩌면 체념의 단계에 이를 수도 있는 일이다. 한쪽 부모와의 소통으로 개선되지 않는 경우, 양쪽 부모 모두와 소통하고 함께 아이를 향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양쪽 부모와의 소통은 교사가 아이를 더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또 교사가 보는 아이의 모습을 부모가 함께 전달받음으로써 가정에서도 좀 더 긍정적인 부모 공동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독려할 수 있다.


양쪽 부모와의 소통 과정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내게 온 아이가 나와 함께 지내는 동안 한 뼘이라도 성장하기를 바라는 게 교사의 마음이지 않은가. 그러니 힘들더라도 용기 내어 해낼 일이다. 특별한 아이에겐 특별한 관심과 교육 방식이 필요한 법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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