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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영 Nov 21. 2020

나의 쓸모를 발견할지 모를, <기록의 쓸모>

마케터의 영감 노트

긴 글(이런 글도 긴 글이라 칭할 수 있는가는 모르겠지만)을 매일 쓰기 하다 보면 금방 바닥나는 자신의 밑천을 볼 수 있을 거라더니, 내가 그 짝이다.


브런치 작가가 된 기쁨도 잠시, 나만이 쓸 수 있는 것이 뭘까?라는 고민과 함께 한 2주는 매일 글을  설레기도 했다. 진지하게 뭔가를 써 본 지 너무 오래돼서 다시 글을 쓴다는 자체만으로도 학생 때로 돌아간 것처럼 마냥 신나는 일이었는데, 2주가 지나니 생각의 회로가 꼬이기 시작했다.


쓸 만한 소재를 발견한 날은 저녁 식단을 얼른 치우고 생각의 자락이 날아갈세라 컴퓨터 자판 앞에 앉아 열심히 자판을 두드렸는데, 이제 소재가 있어도 몇 줄 쓰고 나면 다음 맥락을 이어가는 게 쉽지 않다. 계속되는 버퍼링에 모니터만 20~30분 하염없이 쳐다보며 의자에 삐딱하게 앉아 계속 생각을 굴리다가 그냥 일어나는 날도 생겨난다.


하, 날마다 글쓰기가 쉬운 일은 아니구나. 학생 때 일기 쓸 때는 매일 써도 쓸 게 새로 생겼던 것 같은데… 그런 날은 브런치의 다른 작가분들의 글을 읽으며 이 분들은 무엇에 대해 쓰고 계시나, 글 관찰에 들어간다. 다른 작가들의 글을 보면서 세상에 대한 섬세한 관심과 뾰족한 생각을 기르는 게 우선이라는 각성이 든다.

 



이승희 작가의 <기록의 쓸모>는 브런치 시작한 지 채 한 달도 안되어 스스로의 부족한 글쓰기 역량 낙담한 내 눈에 반짝! 들어온 책이다.

'기록의 쓸모'라고? 완성된 작품으로서의 글이 아니라 '기록'이라는 형태라면 더 써볼 수 있겠다, 는 용기를 주는 제목에 끌려 읽기 시작한 책이다.


일부러 찾아본 것도 아닌데, 어쩜 나의 고민에 대한 응답이라도 내려주는 양 지금 내게 꼭 필요한 책을 눈에 띄게 하셨을까(하느님, 부처님, 알라신 이시어, 감사합니다!).

저자가 오래전부터 브런치 작가로도 글을 쓰신 분이라니, 읽는 내내 브런치 선배 작가에게 기록의 쓸모에 대 1:1 과외 수업 받는 기분이었다.


저자가 <기록의 시작> 편에서 소개한 4가지 카피의 유형은, '카피'를 '글'로만 바꾸면 내가 쓸 글에 대한 고민의 답이라 할 수 있겠다.

- 마음을 움직이는 감동적인 카피(글)
- 쉽고 명확하게 이해되는 카피(글)
- 읽긴 했는데 아무 변화도 일으키지 못하는 카피(글)
-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는 카피(글)


마음을 움직이는 감동적인 카피(글)는 어느 정도 천부적인 능력이 있어야 하지만, 쉽고 명확하게 이해되는 카피(글)는 연습을 통해 누구나 도달 가능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적어도 읽긴 했는데 아무 감흥이 없는 글이거나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 글이 되지 않도록, 부단한 글쓰기 연습만이 내 글을 살릴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마케터로서의 저자가 '더 나은 결과'를 위해 제안한 피드백 방식은, 일을 매개로 모든 인간관계에서 유용한 방식일 뿐 아니라, 어린 학생들에게 끊임없이 피드백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다음과 같이 바꾸어 되새겨야 할 점이다. 

- 좋은 환경과 좋음의 기준 만들기 → 허용적인 교실 환경과 올바른 모범 예시 보이기
- 사람에 대해 이해하기 → 학생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려고 노력하기
- 나의 감정 객관화하기 → '나 대화법'으로 대화하기
- 의도를 설명하고 설득하기 → 내 생각을 주입하지 말고 의도를 분명히 전달하기
- 생각할 빈틈 주기 → 아이에게도 생각할 '빈틈'과 '여백' 주기


기록의 수집가답게 생각과 영감을 모아 놓은 저자의 문장들은 쉬운 말로 쓰인 '기록에 대한 교본'과 같다.

2장, <기록의 수집> 편에서 소개한 저자 친구의 자목련 일화는 가만히 앉아 뭔가 쓸 만한 영감이 떠오르기를 기대하는 나의 게으름에 찰싹! 볼기짝을 때려주는 회초리이다.

이른 봄날 흐드러지게 핀 하얀 목련들 사이에서 도드라지는 자목련 하나도 제대로 볼 줄 모르는 눈으로 무슨 글을 쓸 수 있겠는가 말이다.


앞으로 걸아갈 모든 여정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들이 나라는 사람에게 다 녹아들 테니, 조급해하지 말자.(p.163)
 

는 문장도 이제 겨우 브런치 입성 한 달째인 병아리 작가의 조급함을 에둘러 꾸짖는다.

저자의 영감 노트에서 발췌한 어느 배우의 인터뷰 글에서 지금 내가 집중해야 할 것은 바로 '지금'에 있음을 다시 한번 되새긴다.

우리의 힘이 닿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과거도 미래도.
오직 '지금'만이 우리 힘이 닿을 수 있는 시간이다.
지금 딱히 불행하지 않으면 행복한 것이다.


저자의 권유대로 어떤 것이라도 기록해야겠다. 촘촘할 필요도 없고, 대단한 내용이 아니어도 좋을 사소한 것들에 대해. 기록을 통해 나의 쓸모를 발견하는 그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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