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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영 Nov 19. 2020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여성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여성들의 전쟁의 기록



독일 전체주의, 히틀러, 나치, 600만에 이르는 유대인 학살, 일본의 진주만 공격, 미국의 히로시마, 나가사키 핵폭탄 투하, 전쟁 주축국들의 패배, 대한민국 광복과 분단….

2차 세계대전에 대해 내가 이제껏 알고 있던 개별의 사실 조각들 중, 소련이 차지하는 비율은 크지 않았던 이유가 뭘까. 전쟁을 일으킨 독일을 상대로 민간인 포함 2000만 명에 이르는 사망자를 낼 만큼 격한 전쟁을 치른 나라이자 독일을 상대로 첫 승리를 이끈 주국인데.


냉전체제 확산 이후, 우리나라가 자본주의 체제에 들어서며 학교 교육에서 '사회주의'라는 말이 들어간 내용은 원척적으로 배제된 것은 아닐까. 역사적인 앎이 적은 내가 짐작하는 바다. 더군다나 전쟁에 참가한 구소련의 여인들에 대해서는 더욱 아는 게 없었다.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여자와 아이들'이라는 상투적인 말과 일본의 강제 동원으로 인한 위안부 여인들의 지난했을 삶. 이 정도가 '전쟁'과 '여성'을 연결 지었을 때 내가 생각할 수 있는 한계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을 상대로 참전했던 100만 명 이상의 구소련 여성들의 이야기이다. '남성들의 전쟁'의 역사를 배워온 우리가 알지 못했던, '여성'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여성'들의 전쟁의 기록이다.

처참하고 끔찍하면서도 사랑과 모성이 공존하는, 여성의 감성으로 기억되는 전쟁의 이야기이다. 전쟁 영웅들의 전쟁 직후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 역사와 교집합을 이룬다. 과거 식민지 해방 이후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우리 광복군과 전쟁터에서 돌아온 여성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처우가 어땠는지와 겹친다.


나치가 사회주의자를 공격했을 때 조금 불안했지만, 나는 사회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나치가 학교, 신문사, 유대 인 등을 잇따라 공격했을 때, 나는 더 불안했지만 행동에 나서지는 않았다.
마침내 나치는 교회를 공격하였다. 나는 목사였고, 그때서야 행동에 나섰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 독일 고백 교회의 니묄러 목사의 증언 -


내가 속하지 않은 일이라 외면하던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파키스탄에 살지 않으니 탈레반의 여성 교육 탄압은 남의 나라 일이다. 마실 물과 식량 걱정 없이 사는 나라에서, 20세기 최고의 가뭄 이후 아프리카 인구 5억 명 중 2억 명이 기아에 허덕이고 있으며 지금도 매일 수백 명씩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어쩌다 인터넷 한 귀퉁이에서나 만나 보는 일이다. 터키 해변가에서 세 살 배기 아기의 시신이 발견되기 전까지 시리아 내전이나 난민 문제에 얼마나 관심이나 가져봤던가. 알게 되었다고 내 삶에 일말의 변화라도 있기는 했던가.

나비 한 마리의 날갯짓으로도 지구 반대편에서는 토네이도가 인다는데, 이런 세상에서 우리가 이렇게 무사 태평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더 놀라운 일인 듯하다. 내 일이 아닌 일이라 생각했던 일이 바로 턱밑에 올 때까지 기다리는 어리석음경계할 일이다.


책을 통해 '평화'가 주는 일상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를 다시 한번 상기한다. 더불어 그 평화가 누군가에게는 일생의 염원일 수 있다는 것도. 극한의 상황에서 보여주었던 생물학적, 젠더로서의 구소련 여성들의 숭고한 역할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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