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나는 소심한 편은 아니었어서 친구들 간에 꼭 할 말 못 하고 속만 끓이던 아이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강력한 무대뽀 정신으로 불가능이란 없음을 온몸으로 보여주던 활동가형도 아니었지만. 지켜보고 바라보는 것보다는 무엇이건 내가 직접 해보는 걸 선호했다. 선생님께서 "이거 해 볼 사람?" 하면 제일 먼저 "저요!" 손드는 아이들 중 하나. 가끔은 생각보다 몸이 먼저 반응해서 나중에 후회하기도 했지만, 우선은 손을 들고 봐야 했다.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기 싫었다.
그렇게 무엇이든 적극적이던 나는 사춘기를 통과하며 서서히 내 안에 '수줍음'이란 아이를 들여놓았다. 이 새로운 아이는 수많은 기회의 문 앞에서 전보다 주춤했다. 이전의 나와는 달리 생각이 더 많아졌고 몸의 반응 속도는 현저히 더뎠다.자랄수록 더 배우고 성장했는데도 이 아이가함께 들여놓은 두려움은 도통 작아지지 않고 커져만 갔다.
이전의 나처럼 왜 좀 더 단순하게 생각하고 뛰어들지 않을까. 어린 나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인맥도, 활동 범위도 넓어진 어른이 되고서도 커지고 깊어져야 할 어른이라는 세계에왜 여전히 정착하지 못하고 부유하는가.왜 넓은 세계로 열린문 앞에서 문고리를 붙들고 활짝 열어제끼기를 주저하는가.이 새롭게 들인아이로 커버린 내가 무시로 미워졌다.
불현듯 내가 남 탓을 하고 싶어 한다는 걸 깨달았다. 두려움은 몰라서, 어려서 생기는 문제가 아닌데 그런 내 모습이 생경해서 그만 난 다른 데서 원인을 찾고 있었다.
실상, 경험치가 쌓일수록, 비교치가 늘수록, 그렇게 세상을 더 많이 알아갈수록 두려움은 몸짓을 부풀렸다. 생각이 많아짐에 따라 잘 해내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 남들의 시선에 대한 걱정도 그 몸체를 키워갔다.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은 잘 해내지 못했을 때의 나를 먼저 떠올리게 했다.
주저와 머뭇거림은 가능성의 문을 작아지게 한다. 처음엔 내 몸보다 훨씬 컸던 그 문이 어느새 쥐구멍처럼 작아져 아무리 궁리해도 그 문을 통과할 수 없을 것만 같다. 문의 크기는 변한 게 없으며 그 문을 그토록 작아지게 만든 건 순전히 내 생각이었다는 걸 알아챈다면 우린 좀 더 용기를 낼 수 있을까?
그래도 희망이 있는 건 삶의 2/3 지점을 요동치며통과했더니 이제 가끔은 이전의 어린 내가 소환된다는 점이다. 무엇이든 새로운 배움의 기회에 번쩍 손을 들던 어린 내가 고개를 들 때,너무 좋아 죽겠다. 다시 그 시절 어린아이가 되어 해바라기처럼 활짝 웃고 가슴이 콩콩 뛴다.
정들었던 화실 선생님이 건강 문제로 그만두신 후, 다른 화실을 알아볼까... 고민하다 예전부터 내 맘 속에 있던 것이 떠올랐다. 아름다운 문장을 더 빛나게 만들어 주는 것, '캘리그래피'였다.
사회생활에선 외향성을 쓰며 살지만, 혼자 있을 땐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고요하게 집중하는 것을 선호하는 내 본성과 잘 맞을 것 같았는데, 웬걸. 이런 찰떡이 없다.
보고 쓰는 연습용 문장들만 읽어도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니 그것을 써내는 손길에 자연스레 온갖 정성이 깃들 수밖에. 몇십 년을 고수해 온 내 글자체를 버려야 조금씩 살아나는 형체들. 집중이 흐트러지는 순간, 본래의 글자체가 나와버리니 초고도 몰입의 시간이다. 2시간이 순삭이다.
하나같이 보석같은 캘리그래피 문장들 by 정혜영
캘리 선생님은 내가 몇 회 하고 지루해할까 걱정이 되는지 배운 지 3회 만에 책갈피를, 5회 만에 작은 액자 작품을 만들게 하셨다. '이런 거 안 만들어도 저 계속할 테니 염려 마셔요.' 했던 마음이었는데 만들어 놓으니 또 한껏 뿌듯해진다. 우리 반 1학년 아이들이 공들여 만든 만들기 작품을 그토록 집에 가져가고 싶어 했던 마음이 이런 거였구나. "일주일만 전시하고 보내줄게." 했던 담임이 얼마나 미웠을까.
첫 시작은 항상 미약하고 서투르나 찍는 발자국 수가 많을수록 더 멀리 나아간다는 데 희망이 있다. 새 희망을 발견했다. 배시시 웃음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