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 선생님께서 이번엔 자신만의 스타일로 글을 써보라고 하신다. 캘리로 옮길 문장을 보고 어울리는 구성과 글 모양을 스스로 생각해 보고 써보라고 하셨다. 서툴러도 스스로 자꾸 해보아야 자신만의 스타일이 생긴다는 말씀엔 백번 공감한다. 그런데이제 겨우 7회 차에 나만의 스타일이라니, 그런 게 있을 리가 있을까? 막막해졌다.
여태까지는 선생님께서 문장을 써 주시면 그것을 보고 열심히 베껴 내는 것이었는데 문장만 주시고 알아서 써 보라니, 첫 자음자조차 손 대기 어려웠다. 보행기에 의지하여 활보하던 아기를 쑥 빼내어 기댈 데 없는 넓은 공간에 홀로 세워 놓은 것처럼 어찌할 바를 몰랐다.
"잘 쓰시니까 잘할 수 있으실 거예요."
선생님의 이 말씀은 더 부담스러웠다. 잘하긴... 선생님께서 후루룩 써주신 문장 하나를 따라 쓰느라 처음 글자를 배우는 아이처럼 자음, 모음의 조합에 열중하는 내 모습이 여전히이리 생경한데.
한 번씩 특별한 글을 써야 할 때 더 잘 쓰고 싶은 마음에 캘리를 배우기 시작했지만, 실력이 높으신 분이 쓴 글자를 보며 따라 쓰고 있으면 내 글자는 너무 미숙해보인다. 초보 딱지를 떼고 싶은 마음에 열심히 써 보지만, 주 1회 캘리 화실에서만 연습해서 실력이 확 늘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일 텐데 그래도 선생님 글씨를 보면 잘 쓰고 싶은 마음만 앞선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는 A4 백지에 견본 문장을 써 나갔다. 구성도 알아서 하라고 하시니 전체 문장을 몇 줄에 써낼지, 어느 부분을 끊어 내려 쓸지, 자음과 모음을 어떻게 변화를 주며 균형을 유지할지... 모든 게 신경 쓰였다. 문장 하나를 써내는 일에 이렇게 여러 가지 사항을 고려한 적이 있었던가.
브런치에 글을 쓰던 초창기의 내가 떠올랐다. 다른 작가님들이 쓴 너무 좋은 글을 읽으면 독자로서는 무한 감동했지만, 쓰는 사람으로서는 심하게 위축되었다. 난 언제나 이렇게 읽는 이의 마음을 끄는 글을 쓸 수 있을까, 내게 그런 재능이 있기는 한 걸까, 쓰다 보면 실력이 늘기는 하는 걸까... 그런 자신할 수 없는 것들로 쓰는 나를 자꾸 괴롭혔다. 멋진 글로 옮길 수 없다면, 유명인도 아닌 내 일상과 생각에 누가 관심이나 있다고 그걸 굳이 글로 남기는가, 싶어 쓰기 자체가 싫어지는 날도 적지 않았다.
브런치 초창기의 내 모습을 떠올리면 너무 부끄럽다. 의욕은 넘치나 실력은 턱없이 부족한 초보 주제에 이미 책을 몇 권씩이나 낸 기성 작가나 브런치출판프로젝트 대상 작가들의 글만 읽었던 내가. 노련하고 출중한 글쓰기 실력을 가진 이들의 글과 비교하니 내 글이 어찌 찌그러진 양푼 냄비 같아 보이지 않았을까.
넘사벽 글들 외에도 브런치에서 우연히 접한 수많은 글에는 쓴 사람만의 색이 담겨 있었다. 쓴 사람의 삶과 마음은 다른 사람이 흉내 낼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러니 어휘력이나 문장 실력이 탁월하지 않아도 충분히 내 마음을 건드리는 글들은 많았다. 그 글들 덕분에 글을 보는 내 눈이 달라졌다고 해야 하나, 글을 받아들이는 마음이 좀 더 영글었다고 해야 하나.
재미와 감동이 있는 글, 삶의 태도가 진하게 배어나는 글, 자기표현이 살아 있는 글... 글마다 담겨 있는 글쓴이를 만나며 얼굴 모르는 이들과 내적 친밀감이 쌓였다. 쓰는 이 각각의 유일한 삶이 담겨 있으니 모든 글들은 개별로 고유했다.
내가 구성해서 쓴 캘리 문장은 참 서툴렀지만 혼자 해냈다는 것만으로도 묘하게 뿌듯해졌다. 할 수 없을 것만 같던 막막함을 밀어내고 그저 어떻게라도 해 보아야 수정할 곳과 더 나아갈 곳이 보인다. 선생님께서 내가 쓴 글 아래 똑같은 구성으로 정갈하게 다시 글을 써 주셨다. 그 글을 보니 어느 부분을 수정할지가 보였다. 내가 먼저 구성한 문장이라 더 애착이 갔을까. 선생님께서 써 주신 글을 다시 써 내려가며 내 문장은 더 충만해졌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 것
캘리 8회 차에 족자 쓰기로 골랐던 문장이다. 온라인에서 수많은 캘리 문장들을 떠돌다 내가 골랐던 문장은, '잊지 말자 / 가장 익숙한 것들이 / 가장 소중하다는 걸'이었는데, 선생님께서 동일한 메시지지만 캘리로 쓰기 좋은 문구로 추천해 주셨다. 한 글자, 한 글자를 정성 들여 연습하며여러 가지 상념들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갔다. 내 마음에 먼저 새겼지만누군가에게도 들려주고 싶은 말. 오늘의 내가 하는 작은 일들, 너무 사소하고 익숙해서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지는 것들. 그렇지만 없으면 안 될 소중한 것들.
8회 차에 쓴 족자 문구를 친구가 보내준 사진에 얹어 봤어요. by 정혜영
친구들이 매일 예쁜 꽃 사진을 찍어 보내준다. 이번엔 지나치지 않고 그 사진들에 내가 쓴 캘리 문구를 얹어 보냈다. 한 친구가 자신이 보낸 꽃 사진인지 몰라 봐서 웃음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