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통풍으로 고생하던 남편이 병원에 다녀온다고 합니다. 그렇게 가라고 해도 버티더니 제 발로 가겠다는 것이 통증이 심한가 보다, 싶어 아내가 태워다 주겠다고 합니다.
운전대를 잡은 아내는 모처럼 둘만의 데이트(?)에 솜사탕 같은 마음이 되어 이야기를 건넵니다.
"나 요즘 인공지능에 대한 책 읽고 있..."
"어, 어! 빨간불!"
신호는 아내도 봤습니다. 운전자 정지선을 조금 넘어 멈춥니다.
"이거 일본 작가 책이야. 소설 아니..."
라고 하려는 찰나,
"횡단보도!"
남편은 보행자 신호로 바뀐 횡단보도를 일러줍니다. 아내도 바뀐 신호를 보지 못했을 리 없습니다. 신호는 이내 바뀌었고 그사이 아내의 마음속 솜사탕은 녹아 버렸습니다.
"삐졌어?"
이제 무표정으로 운전만 하는 아내를 보며 남편은 묻습니다. 아내는 대답이 없습니다.
"운전 중인데 자꾸 얘기하면서 딴 데 신경 쓰니까 그렇지."
이번엔 묻지도 않은 말을 합니다.
병원 앞에서 남편을 내려 주고 아내는 그냥 갈까? 싶습니다. 환자가 적으면 기다리겠다고 했던 터입니다. 잠시 후 전화가 옵니다.
"15분 정도 걸린대."
알았다, 고 짧게 응답한 아내는 기다리기로 합니다.
15분쯤 뒤 다시 올라탄 남편은,
"우리 둘이 밥 먹고 갈까?"
합니다. 아내는 싫다고 짧게 응답합니다.
"그럼, 우리, 장 봐 갈까?"
남편은 좀 더 나긋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어제 장 다 봐 뒀어."
아내의 답변은 푸석푸석 건조하고 메말랐습니다. 말없이 정면만 보며 운전하는 아내의 운전 솜씨는 그새 운전학원 강사 저리 가랍니다. 갈 때보다 훨씬 짧게 걸려 집에 도착합니다.
집에 돌아온 아내는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습니다. 남편은 시키지도 않은 점심 요리를 합니다. 잠시 뒤, 아들이 들어와 아빠의 밥 먹으라는 말을 전합니다. 식탁엔 전날 주문해 둔 연어회로 차린 회덮밥이 탐스럽게 차려져 있습니다. 회덮밥은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입니다.
아내는 말없이 먹습니다. 한 입, 두 입.
이내 그릇이 깨끗이 비워집니다. 회덮밥을 먹었는데 아내 마음속에는 다시 솜사탕이 몽글몽글 피어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