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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를 쓰며 마음을 쓰다(2)

by 정혜영


牛步千里(소의 걸음으로 천리를 간다)


우보천리(牛步千里). '소의 걸음으로 천리를 간다'는 뜻이다. 소띠인 내게 이 문장이 각별한 건 꼭 문장에 들어있는 내 띠동물이 반가워서가 아니다. 우직하게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이가 끝내 이루게 될 거대한 여정이 뭉클해서다.

나만 빼고 다른 이들 모두 축지법을 쓰는 건 아닐까... 착각이 들 때, 오늘 내가 하는 일이 한없이 미미해 보일 때, 겪고 있는 고통의 끝이 보이지 않을 때... 그저 오늘 내가 묵묵히 해내는 일이 천리에 이르게 한다는 것. 그것이 위로요, 희망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 _ <걷는 독서>, 박노해


함께 밥상머리에 앉아 밖에서 화나고 억울했던 일에 대해 호소할 수 있는 가족이 있다면 행복하다. 일확천금과는 연이 없지만 부족한 벌이라도 어려운 이들과 나눌 수 있다면 행복하다. 열정과 시간을 들여 몰입할 대상이 있다면 행복하다. 무엇보다, 내 일상을 염려하고 관심 갖는 이가 단 하나라도 있다면 행복한 삶이다.(필자 책, <어린이의 문장> 중 발췌)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 그것이 행복의 척도다. 머릿속에 쓸데없는 것들이 가득 찬 방을 깨끗이 치우고 이 말 한마디만 남겨두자.

"나는 지금 행복하다."



긴 시간을 버틴 것에는 부드러운 힘이 있다. _ <걷는 독서>, 박노해


- 예언이나 기적을 나타낼 수 있는 초능력이나 절대적인 권위.

- 대중을 심복 시켜 따르게 하는 능력이나 자질.


'카리스마'의 국어사전적 정의다. 예언이나 기적을 나타낼 수 있는 초능력이나 절대적인 권위는 신의 영역이니 인간이 지닐 수 있는 카리스마란 후자의 뜻일 테다. 대중 앞에 서려는 자, 대중을 심복 시켜 큰 일을 해내려는 자가 마땅히 가져야 할 덕목, 카리스마. 그것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을 테니 갈고닦고 버틴 오랜 시간 속에 숙성되는 자질이리라. 그런 카리스마엔 강함을 이기는 부드러움이 절로 깃들며 그러한 부드러움에서 더 강한 힘이 뿜어 나오는 법이다.

"어차피 5년 하나, 3년 하나..." 마인드에 어찌 그것이 서릴 수 있을까.



힘내지 않아야 오히려 힘이 난다. _<내가 원하는 것을 나도 모를 때>, 전승환


필라테스 강사님들은 각자가 전공한 운동 분야에 따라 가르치는 운동 방식이 약간씩 다르다. 사격을 전공하셨다는 L 선생님은 근육 강화 위주로 운동을 시키셔서 내 온순한 근육을 자주 놀라게 하신다. 코어와 몸 전체의 우아한 밸런스를 강조하시는 걸 보면 K 선생님은 무용 전공자가 틀림없다. 수영을 전공하셨다던 또 다른 L 선생님은 어찌나 다리 근육 강화 운동에 지극정성이시던지, 그 분과 운동한 주엔 북한산을 건너뛰었다.


그런데, 자기만의 스타일로 가르치시는 이 분들이 한입인 듯 강조하시는 이 있다. "어깨에서 힘을 빼라"는 것이다. 잔뜩 힘을 주던 어깨에서 스르르 힘을 풀고 머리를 천장으로 길게 뽑아 올리면 중심을 잡기 위해 날갯죽지와 등, 둔부 쪽에 절로 끙, 힘이 들어간다. 힘을 써야 할 자리를 바로 알아 분산될 수 있도록 불필요한 부분에서 힘을 빼는 것. 이것이 어디 필라테스에만 해당되는 일일까.

기를 쓰고 힘내지 말고 절로 힘이 나도록 지금, 불필요하게 기운 쓰는 부분이 어딘지 체크해 보자.



등에 진 짐이 무거울수록 깊은 발자국이 새겨진다. _ <걷는 독서>, 박노해


친정 엄마가 꽃처럼 예뻤던 시절, 그 환희의 시간을 누리기엔 너무 버거운 현실에, 엄마는 우리 두 자매를 데리고 홀트아동복지회를 찾았었노라고 했다. 혼자 세 아이를 키우려면 일을 해야 하는데 어린아이들을 맡길 데가 없어서.

막내는 너무 어려서 집주인집에 맡기고 나선 길. 몇 달만... 얼른 돈을 벌어 찾아오겠다며 나섰는데, 복지회 담당자가 일단 아이들을 그곳에 맡기면 다음을 기약할 수 없다는 서류에 서명해야 한다고 했단다. 바로 그 길로 양손에 두 아이 손을 꼭 붙들고 돌아 나오셨다는 엄마. 그때 무슨 짓을 저지를 뻔했는지 돌아보면 간담이 서늘하다는 말씀은 그로부터 먼 훗날 들었다.

등에 진 짐이 무거워 잠시 내려놓으려다 더 큰 멍을 가슴에 새기고 살아야 했던 엄마. 엄마, 그 일화가 오늘 저를 더 힘내서 살게 하는 이유 중 하나예요.



하루 중 마음을 다해 웃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가. _ <마흔 고비에 꼭 만나야 할 장자>, 이길환


다양한 표정을 짓는 귀여운 동물들 영상을 너튜브 쇼츠로 너무 많이 본 탓일까. 얼굴 근육을 움직여 기쁨과 사랑, 즐거움을 표현하는 생물은 인간이 유일하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이 인간만이 가진 유일한 재능을 우린 얼마나 사용하고 있는가. 오죽하면 환하게 웃는 얼굴 사진을 보면 난 그리고 싶어지는 것일까.

나이 들어 줄어드는 건 수명 이전에 웃음이다. 오늘, 지금, 얼굴 주름 걱정 말고 환하게 웃으며 마음 주름부터 펴 보자.



무슨 급한 일이 있어 천사들은 꽃잎 신발을 벗어둔 채 하늘나라로 돌아간 것일까. _ 나태주(시 제공자: 여행하는 낭만고양이님)


화무십일홍이라 했거늘, 예상했던 시간보다 짧았다. 꽃을 피운 지 일주일도 안 됐는데 만개한 베란다 앞 벚꽃을 어제부터 내린 비, 밤이 되니 온도가 떨어져 변한 눈, 오전에 날아든 강풍 안전 문자와 함께 퍼붓던 우박... 요망스러운 날씨가 가만두질 않는다. 나눠 가질 수 없는 사랑의 속성을 증명하듯, 사랑받는 순한 아름다움을 시샘하는 것들이 칼춤을 추며 위협한다. 휘몰아치는 위력으로 잠깐 꽃잎을 떨어뜨릴 순 있어도 단단한 뿌리에서 내년, 후년, 더 풍성하게 피워낼 매년의 꽃잎까지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이제 보니 한 글자가 빠졌네요. 숨은 그림 찾기입니다. :))




멋물에 찍어 화선지에 붓으로 쓰다 (캘리 by 정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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