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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를 쓰며 마음을 쓰다(3)

by 정혜영



"사름 혼자 못 산다이, 고찌글라 고찌가. 고찌글면 백리 길도 십리 된다."(사람 혼자 못 산다, 같이 가자, 같이 가. 같이 가면 백리 길도 십리 된다)


넷플릭스 인기 드라마인 '폭싹 속았수다'에서 어려운 형편인 젊은 부부, 애순이와 관식이를 도와주는 노부부의 대사다. 가진 것 하나 없이 이 넓은 세상에 홀로 나온 몸. 삶이라는 망망대해를 헤쳐가다 보면 온갖 풍랑을 피할 수 없다. 건너갈 수 있을까, 의심스러워도 대부분은 그 험난한 바다를 기어이 건넌다. 아득했던 길을 마침내 건넌 사람들 곁엔 늘 행불행을 함께 해 준 이들이 있었으니, 부모, 형제요, 선생님, 친구, 이웃이다. 어느 것 하나 혼자 이룬 것은 없다.


지인이 하는 온라인 필사를 기웃거리다가 어느 날 한 문장에 꽂혀 함께 하기 시작한 온라인 필사 모임, [꿈필]. 지난 4월 22일, 365일 차 필사 문장을 썼다. 함께 하는 온라인 필친(필사 친구)들의 서로를 북돋우는 응원이 없었다면 매일 따라 쓰기의 지난함을 이겨낼 수 있었을까?


365일 차 문장이라 그런지 더 의미있게 다가오는 글이었어요.(글 공유 by 지혜로운 숲 혜림)


함께 가야 오래간다. 함께 가야 멀리 간다. 함께 가야 혼자라면 해내지 못할 일도 해낸다. 그것이 '같이'와 '함께'의 힘이다.



'가시에 찔리지 않고서는 장미꽃을 모을 수 없다', 프랑스 속담이래요.


소설가 이승우 님은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에서 말한다. 자기가 가야 할 길을 미리 알고 출발한 사람은 길을 잃어버릴 수가 없다고. 밑그림을 통해 소설이 갈 길을 먼저 가보라는 조언의 말씀이지만, 가야 할 길의 방향성이 얼마나 중한지를 일깨우는 말이기도 하다.


"내가 하고 싶은 목표가 생겨서 힘들지만 공부에 더 집중할 수 있는 것 같아."

등록한 대학에 다니며 반수를 하기로 했다가 학교는 안 다니고 타지에서 홀로 재수를 택한 딸이 타지 생활 두 달 만에 한 말이다. 딸은 남들이 가는 길을 무작정 따라갈 때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을 홀로 되어 하나, 둘, 알아가는 중이다. 누구에게나 필요한 적절히 고독한 시간. 아름다운 장미꽃을 모으려면 날카로운 가시를 감수해야 함을 알아가는 배움의 시간. 딸은 지금 소중한 시간을 거쳐가는 중이다. 그러니 엄마인 나, 제대로 넘어지며 매일 한 겹씩 강해지고 있는 딸 앞에서 약해지지 말자.




우리 부부의 황금연휴가 시작되던 5월 첫날. 양가 어머님들을 찾아뵙기로 했다. 홀로 계신 두 분이 늘 마음에 쓰이면서도 삶은 늘 현재 내 몸이 속한 곳을 돌보기도 급급하다고 핑계 대던 마음을 나무라며.


각자의 삶으로 바쁜 아이들이 함께 할 수 없어 남편과 둘만 나서게 되었을 때 사실, 걱정이 없지 않았다. 얼마 전, 퇴근길 라디오에서 들은 일화가 자꾸 떠올랐다. 항상 아이들과 함께 다니던 부부가 어느 날, 아이들 없이 둘만의 오붓한 여행을 계획했는데, 차를 출발한 지 몇 시간 만에 할 말이 없어져 어색해지고 말았다는, 결국 합의하에 중도에 돌아오고 말았다는 서글픈 이야기였다. 우리나라 부부들이 얼마나 자식 위주로 가정을 유지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일화에 입맛이 썼다. 나와 남편은 다를 거라고 장담할 수 있는가?


매번 명절 때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과 시댁으로 향하는 먼 길을 나설 때마다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던 무거운 것들의 정체는 무엇이었나. 각자의 부모에게 자신도 잘 못하는 것들을 배우자가 해주길 바라는 게 K-부부의 마음이 아니던가. 자신도 못할 것을 타인에게 기대했을 때 결국 어떤 식으로든 실망으로 종결된다는 것을 우리는 왜 좀 더 일찍 깨닫지 못하는 걸까.


부모가 바라보는 건 결국 그 피붙이다. 그러니 피붙이여, 자기 부모에게 할 일을 다른 이(배우자)가 대신해 주길 기대지 말고 그대가 하라. 그대가 한 번 더 손 잡아 드리고 안아 드리라. 직접 사랑한다 말하라.


우리 부부 둘만 양가 어머님들을 뵙고 오는 길은 생각보다(?) 무탈하고 즐겁기까지 한 여행길이었다. 아마도 오랜 세월이 반복적으로 가르쳐 주어 아주 조금 지혜로워졌기 때문이리라.

각자의 어머니를 각자 더 챙기는 것. 배우자의 역할은 그저 약간 거드는 것. 좋은 동행자를 기대하기 전에 스스로 좋은 동행자가 되는 것. 부부만의 시간을 여행길로 만들어 주었던 건 단지 그것뿐이었다.




<걷는 독서>에서 박노해 님은 '홀로 일 때 충만하지 못하면 함께여도 충분하지 못하다'고 했다. 홀로 있어봐야 안다. 내가 알곡인지 쭉정인지.쭉정이 안엔 온갖 것들이 함부로 들어찬다. 곁을 내어줄 이와 그렇지 않은 이를 구분하지 못한다. 늘 사람들 속에서만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면 홀로 있는 시간이 감당이 안 된다.


그러니 오늘 홀로 외로운 사람아, 그대의 시간이 아무도 눈길 안 주는 풀피리의 그것이 아니라 한 떨기 꽃으로 피어나는 시간이라는 걸 상기하라. 꽃은 홀로 피어도 그 향기와 자태가 절로 퍼져 나간다는 것도.




봄을 노래한 시들을 옮겨 적다 보니, 유독 짧게 지나가는 이 계절이 더욱 아쉽다. 겨우내 얼어붙은 딱딱한 땅을 뚫고 솟아오르는 연한 싹들을 볼 때마다 늘 신비로웠다. 차가움과 단단함 속에 따뜻함과 보드라움을 품고 있다는 건 얼마나 근사하고 설레는 일인가. 따뜻한 심장을 원했던 오즈의 마법사 속 강철 인간처럼 겉모습만으로 섣불리 속단할 수 없는 매력이다.


그래서 나는 어쩌면 봄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찰나의 시간에 끌리는지도 모르겠다. 겨울의 끝자락에 붙어 오는 봄. 왠지 겨울과 봄 사이엔 겨울-울봄-봄이라는 시간이 있어 그 '울봄'의 시간에 마음을 뺏기는 건지도.


늘 떠나가는 것은 아쉬움을 동반한다. 잘 떠나보내야 잘 맞이한다. 그러니 아직 이 봄, 남은 게 있다면 님이든 벗이든, 봄비든, 짙어진 봄을 충분히 누리길 바란다.





* 캘리 by 정혜영

* 배경 사진 출처: 감성 공장,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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