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건넨 한 마디

며느리가 시어머니께 못하는 한 마디

by 정혜영

퇴근길 현관문 앞에 익숙한 배 박스 하나가 놓여 있다. 배 박스는 시어머니께서 무엇인가를 보내실 때 자주 이용하시는 도구이다. 지금은 그만두신 지 오래지만, 과거에 배 농사를 지으셨던 양반이시라 배 박스가 손에 익숙하신 모양이다. 무거워서 들지는 못하고 낑낑대며 겨우 현관문 안쪽으로 밀어 넣고 꽁꽁 포장된 테이프를 차례차례 떼어 열어본다.

비닐봉지에 싼 사과와 밤, 잘 벗겨 손질된 토란과 더덕, 꽁꽁 얼린 식혜 2병과 매실, 콩고기로 만든 밀건 요리에 빈 공간까지 꽉 채운 대봉 몇 개까지. 15kg짜리 배 한 박스가 빈틈없이 푸짐하게 들어차 있다. 하나라도 더 넣어 보내고자 하신 어머니의 노고가 안 봐도 훤하다. 며칠 전 시아버지 제사를 치르느라 장만하셨던 것들을 보내신 모양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높아져서 지난 추석 명절 때도 결혼 후 처음으로 내려가지 못하고 집에서 명절을 보낸 터다. 혼자 계신 어머니가 마음에 걸렸을 남편은, 한 달 반 후에 다가올 아버님 제사 때는 꼭 내려가자고 했었다. 미리 KTX 열차도 예약해 두었었는데, 다시 코로나 확진자가 늘어나 거리두기 단계가 높아져 결국 내려가는 것을 포기했다. 내려가지도 못했는데 제사 음식을 택배로 문 앞에서 받자니 며느리는 송구한 마음이 든다. 제사 전날 못 내려가게 되어 죄송하다는 며느리의 전화에 어머니는,

"아이고, 걱정 마라. 너희들 안 내려온다니, 내 속이 다 편안하다."

고 하셨던 차다. 시어머니는 어떤 상황에서도 며느리 마음이 불편하지 않도록 항상 괜찮다고, 걱정 말라고 말씀하시는 분이시다.




결혼 전, 시어머니는 아들이 자기보다 한 살 많은 여자를 만나고 있다는 말에 꽤 걱정이 되셨던 것 같다. 어느 날 지금의 남편이자 당시 남자 친구였던 남편이, 나를 한 번 보고 싶어 한다는 어머니의 씀을 전해 왔다.


당시도 어린 나이가 아니었던 나는 이미 결혼한 친구들로부터 결혼 전에 먼저 남자 친구 집에 들락거려봐야 하등 좋을 것 없다는 조언을 잘 입력해 두었었다. 그래서 대답을 차일피일 미루었는데, 어느 날은 어머니 꿈에서 내가 나이 많은 쭈글쭈글 주름 가득한 여자로 나왔더라는 것이다. 한 살도 연상이라고 어머니 생각에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너무 노안(老顔)인 여자와 만나고 있을까 봐 몹시 걱정이 되셨던가보다.


그 정도로 걱정할 만한 인물(?)은 아니라고 증명하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남편의 집에 가기로 결심하고 도심을 벗어난 작은 시골집에 처음 방문한 날, 깔끔한 투피스를 차려입고 찾아간 시댁에서 어머니를 처음 만났다.

당시 남편의 아버지는 돌아가신 지 이미 10여 년 가까이 지난 것을 알고 있는 내게, 머릿속에 떠오르는 홀시어머니의 모습은 편견 가득한 것이었다. 1남 3녀 중 당시 출가한 자식이라고는 하나뿐이었으니 홀로 자식들 뒷바라지하는 삶이 얼마나 지난하셨을까. 세 자식을 홀로 키우시느라 평생 고생하시던 친정 엄마를 보며 자란 딸이기에 홀로 자식들을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고단한 삶인지, 나는 친정 엄마를 떠올리며 미루어 짐작하고 있었다.

그래서 걱정이 앞섰다. 홀로 키운 어머니들이 결혼한 아들까지도 자신의 소유물인양 처신하다 급기야 아들의 가정마저 파탄 내는 막장 드라마의 영향력은, 꽤 파급력이 큰 듯하다.


시어머니와 처음 만나던 날, 나와 시어머니는 서로가 서로에게 가졌던 편견을 깬 날이었다. 어머니는 당신이 걱정하셨던 것만큼 내가 노안(老顔)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어머니가 막장 드라마 속 못된 시어머니와는 다른, 선한 인격을 지닌 분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내가 시어머니 복은 있는지, 시어머니는 달리 잘해 드리는 것도 없는 며느리인 나를 예뻐하신다. 직장 생활로 바쁘다는 핑계로 연락도 잘 안 하고, 잘 챙겨드리지도 못하는데 어쩌다 건네는 말과 행동에도 고마워하신다.

가로수가 울긋불긋 아름답게 물든 어느 가을날, 어머니를 모시고 어딘가를 가던 길에 단풍잎 색깔이 하도 곱길래,

"어머니, 단풍놀이도 못 보내드리는데 제가 드라이브나 시켜 드릴게요."

라고 말씀드렸더니, 말이라도 저리 예쁘게 한다고 좋아하시는 거다. 그렇게 어머니는 나의 작은 말도 허투루 받지 않으시고 어여삐 봐주신다. 내 쪽에서 고마울 일인데 어머니는 오히려 내게 자주 고맙다고 하신다. 철딱서니 없는 어머니의 막내아들을 건사하고 사는 게 고맙다는 말로 이해한다. 그게 아니라면 고마울 이유가 달리 없기 때문이다.


그런 어머니께서 얼마 전에는 모처럼 전화를 건넨 며느리에게,

"우리 며느리, 사랑한다."

하시는 거다. 시어머니가 정말 좋은 분이시고 그분 앞에서는 누구라도 선한 마음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시어머니께 듣는 '사랑한다'는 말은 조금 당황스러웠다. 좀체 익숙하지가 않았다. 왠지 이런 말을 들었다면 저도 사랑해요, 하고 응답해야 할 것 같은데, 난 차마 그 말이 입에서 나오지 못하고,

"네, 감사해요."

하고 말았다. 사랑한다는 말에 감사하다니, 아무래도 적절한 대답은 아닌 것 같았지만 달리 다른 답을 찾지 못했다. 아이들에게는 매일 하는 말이, 심지어는 기분 좋은 날엔 이제 의리로 산다는 남편에게도 하는 말을, 왜 난 어머니께는 하지 못했을까. 그 뒤로 그 일이 떠오를 때마다 나의 적절치 못한 응답이 목에 걸린 못다 제거한 가시처럼 불편했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때 '사랑한다'라고 건넨 어머니 마음이 진심임을 느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고. 그동안 어머니 듣기 좋으라고 드렸던 말들은 어머니의 그 진심 앞에 한낱 수사(修辭)에 불과한 것이지 않았을까, 하고. 그래서 그 진심과 같은 마음으로 '사랑한다'라고 하기엔 스스로가 너무 부끄러웠던 게 아니었을까, 하고.




박스에 있던 물건들을 냉장고 안에 차곡차곡 쌓는다. 우리 집 냉장고는 또다시 시어머니의 정성으로 한가득 찬다. 하나하나 공들여 손질해서 보내신 저것들을 바쁘다는 핑계로 이 며느리는 또 몇 가지는 썩혀 내보낼 것이다.

이번에는 남김없이 먹어 보리라, 다짐한다. 말로는 못하는 진심을 달리 표현할 방법을 며느리는 찾기 어려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