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를 통해 지천명을 깨닫다

브런치와 함께 이룬 작가의 꿈을 잇다

by 정혜영


'누구에게나 스스로도 믿기지 않는 시절이 있는 법이다.'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의 남자 주인공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을 '그녀'를 향하는 종잡을 수 없는 열아홉 살의 자신과 이해할 수 없는 그 마음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인과관계나 논리적인 방식으로는 설명이 어려운 일들이 생기곤 한다. 절로 하늘의 뜻을 알게 된다는 나이가 되어도 도통 하늘이 내게 그런 뜻을 비추실 의사가 정녕 있기는 한 건지 헷갈리다가도, 내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지, 어떻게 그런 시절을 살아냈을까... 싶은 젊은 날의 이야기가 있기 마련이다. 젊은 시절의 갈팡질팡과 안절부절이 그 시절을 아름답게 각색하는 아이러니라니, 간혹 하늘의 뜻이란 긴 고통과 짧은 행복의 연속이 삶임을 알려주는 것이 아닐까, 싶어진다.


그래도 '젊음'이란 불확실성으로 말미암아 모든 가능성을 품은 시절이니 그러한 역설이 혼돈의 시절을 버틸 수 있는 힘이었지 않았을까. 마침내 그렇게 불안하고 두렵던 불확실성이 조금 옅어지는 시기가 찾아오면 그만큼 가능성의 문은 작아지니 참, 신이 빚어내시는 생의 균형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새로운 기회의 문이 남아 있을까 싶은 50세 전후의 중년기에 새 꿈을 꾸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런데 그런 내게 꿈을 꾸는 것은 젊은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가게 되어 있다고 용기를 북돋우는 이가 있었다. 바로 나만의 이야기가 글이 되고 책이 될 수도 있는 공간, '브런치'였다.


우연히 브런치라는 공간을 알게 된 뒤, 내 일상의 기록과 생각을 켜켜이 쌓은 글들이 독자들에게 닿아 읽히는 경험은 놀라웠다. 개인 온라인 공간에 글을 쓰기도 했었지만 그 글들은 독백이나 투정에 가까웠다.'독자'를 염두에 둔 글쓰기는 신기하게도 나만을 위한 글에서 독자를 향한 글쓰기라는 작가 정신을 불러일으켰다. 그러자 굉장한 일이 생겼다. 어쩌면 나도 언젠가 내 이름으로 책 한 권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새 꿈이 생긴 것이다!



과연 내 이야기가 책이 될 수 있는가,라는 가능성 여부를 떠나 새로운 꿈을 꾸게 되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일이었다. 꿈이 있다는 건 삶에 대한 희망을 본다는 것이며 그것은 이리저리 치이다 납작해진 일상을 일으켜 다시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삶의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편, 한 편 썼던 내 이야기가 제10회 브런치북출판프로젝트 대상작 중 하나로 선정되었을 때, 그 기쁨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내 책, <어린이의 문장>은 그 결과로 출간되었으며, <어쩌면 다정한 학교>는 브런치 앱을 통한 출판사의 제안에서, <지금 당신이 글을 써야 하는 이유>는 브런치를 통해 인연을 맺은 작가들과의 협업으로 탄생되었다. 그러니 브런치가 아니었다면 책들이 과연 세상의 빛을 볼 수나 있었을까.


브런치를 통해 세상에 나온 내 책들 by 정혜영


며칠 전, 재수를 하고 있던 딸과 저녁 식사 데이트를 했다. 딸이 고기 한 점을 오물오물 씹느라 부정확한 발음으로, "엄마가 내 롤 모델이야"라고 했을 때 내 귀를 의심했다. 딸은 자신의 직업 외에도 글을 쓰며 끊임없이 취미 생활을 계속해 나가는 엄마의 모습을 닮고 싶다고 했다.

고등학생 시절 내내 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르겠다고, 막연히 남들이 우르르 향해 가는 길을 가려해서 나를 안타깝게 했던 딸이었다. 이제야 자신이 하고 싶은 게 생겼다는 딸이 불안과 막막함으로 답답할 시기에도 길잡이를 엄마로 잡았다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브런치는 내게 '은퇴 없는 글쓰기'라는 생의 또 다른 업과 꿈을 알려주는데 그치지 않고 다음 젊은 세대에게도 이어서 꿈을 꾸게 한다. 딸이 글을 쓴다면 아마 브런치에서 시작하지 않을까.

세대를 잇는 글쓰기, 어쩌면 이것이 하늘이 내게 알려주고자 했던 지천명이 아닐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돌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