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찬조 연주로 받은 값진 수고비

by 정혜영


아둔한 건지, 우직한 건지, 정말 나와 맞지 않는 게 아니라면 난 한 번 시작한 일은 꽤 오래가는 편이다. 가끔 그런 내 지속력을 대단하다 추켜세워주는 이도 있지만, 내가 함께 하는 이들에 비하면 명함도 못 내민다. 작은 불씨에 찬찬히 검불을 얹어가며 오랜 시간 동안 이웃에게 온기를 나누는 이들. 우린 그런 이들을 '날개 없는 천사'라 부른다.


데워지고 식는데 시간이 걸리는 무쇠솥은 필연적으로 맛 좋고 찰진 밥뿐 아니라 오장육부를 뜨뜻하게 데워주는 숭늉까지 덤으로 내어 준다. 그래서일까. 한 분야에 오래 종사하며 어떤 식으로든 열정을 꺼트리지 않는 사람들은 그 분야에서 타인이 쉽게 넘볼 수 없는 경지에 이름은 물론이요, 더 의미 있는 것이 자연스럽게 따르니, 바로 '사람'이다.


12월 20일(토), 광명극장에서 '독도의 크리스마스'라는 제목의 이웃 사랑 송년음악회가 열렸다. 오카리나로 평화와 사랑을 전하는 한국식 오카리나협회가 주최하고 광명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식 오카리나 연주 활동가들의 모임인 한오스텔라에서 주관한 음악회였다. '한오스텔라'는 내가 속해 있는 한국식 오카리나 교원앙상블 정기연주회에 매년 찬조 연주로 함께 하는 광명 한국식 오카리나 동호회다.


광명극장에서 열린 이웃 사랑 독도리나 송년음악회 포스터


이 음악회가 특별한 이유는, 연주자와 관객과의 남다른 인연 때문이다. 한국식 오카리나협회 대표이자 오카리니스트인 김준모 선생님이 한국식 오카리나의 보급을 위해 쏟아부은 세월은 20년이 넘었다. 그에게 초기 교원 대상 직무연수를 받고 크게 감화되어 함께 한국식 오카리나 보급에 동행해 온 현직 교사 S 역시 20년째 오카리나를 지도해 오고 있다.


이 두 사람에게 오카리나를 매개로 거쳐간 이들은 학생들 뿐이 아니다. 그 대상은 학부모, 지역아동센터의 아이들, 어르신, 장애인, 탈북민, 암환우들...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지역과 세대를 넘어 사회 돌봄이 필요한 이들에까지 이른다. 덕분에 광명 음악회에는 지역아동센터 아이들로 구성된 '밝은 빛 지역아동센터'와 장애인과 비장애인 및 노인과 청장년으로 구성된 '한오어울림'과 같은 광명 시민 모임도 함께 했다.


광명 음악회엔 다양한 연주자들의 연주뿐 아니라 관객들의 이야기가 있어 더 풍성한 음악회였다.

음악회에 스토리를 더해 준 첫 번째 인연은, 탈북민 부부였다. 너무 배가 고파 탈북했다는 남자, 철만 님과 한 가족을 이룬 또 다른 탈북민, 향이 님. 의지가지없는 두 사람이 만나 사랑에 빠지고 가정을 이룬 게 11년 전이라고 했다. 지금은 두 자녀를 낳고 지방 시골에서 살아가고 있으나 언어도, 문화도 다른 환경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가는 삶이 쉽진 않다고 했다.


https://youtu.be/K0LU2eLNREc?si=Xa4S991W_2Jdaa4P

11년 전, 철만 님과 향이 님의 결혼식 영상(영상 출처: 셋넷학교)


매년 작은 연주회를 열어 모금한 기부금 전액을 이 부부의 아이들이 20살이 될 때까지 장학금으로 전달할 계획이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먹먹해졌다. 그런 선생님의 연주를 듣기 위해 객석을 빛내 준 철만 님 가족들에게 모두가 보내는 응원의 박수가 뜨거울 수밖에.

스토리를 더해 준 두 번째 인연은, 고1 남학생이었다. 유명 연예인이 아니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을 나이에 작은 음악회까지 발길을 해준 데는 스승과 제자의 인연이 있었다.

전주의 한 자율형 사립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라는 그 학생은 초등학생이었을 때 S 선생님으로부터 오카리나를 배웠단다. 그 선생님이 연주한다는 소식에 금쪽같은 주말 시간을 내어 연주회에 달려와 준 것이었다.

마이크를 잡고 옛 제자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S 선생님과 관객석에서 일어나 옛 은사께 인사를 건네는 학생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코끝이 시큰해졌다.


모두가 함께한 마지막 공연 (사진 출처: 한국식 오카리나협회, 사진 블러 처리함.)


자기 한 몸 보살피는데도 쉽지 않은 각박한 세상에 누군가는 자신의 넉넉지 않은 지갑을 나누고 누군가는 맺은 인연을 소중하게 대한다.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면서도 온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거둬들이는 귀한 자산인 '사람'. 마음을 더했는데 곱하기로 산출되는 말도 안 되는 셈법이 가득한 공간에서 마음이 온기로 빵빵해졌다.

찬조 연주로 작은 수고를 보태러 갔다가 훨씬 값진 것들얻어 왔으니 수고비를 너무 많이 받았구나!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브런치를 통해 지천명을 깨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