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첫 시작은 항상 커피와 함께다. 카페인이 들어가 줘야 '일 모드 on' 불이 켜진다. 웬일로 연구실에서 여러 사람 소리가 난다. 요즘엔 되도록 한 곳에 모이지 않도록 주의 중인데 웬일이지? 하루의 시작을 커피나 차로 따뜻하게 몸을 예열해 줄 만한 것을 찾아들다 보니 서로가 만나진 것이다.
여느 아침보다 활기 띤 이날 대화의 주제는 '집'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집값'에 대한 것이었다. 부동산 정책에 대한 언론의 뜨거운 입방아와 우리 같은 일반 서민들에게까지 전해지는 차가운 체감 온도가 이곳까지 엄습해 온 것이었다.
어느 지역 집값이 난리가 아니라는 둥, 집값이 오를 때 얼른 갈아타야 한다는 둥, 진짜 그것(집값 시세 차)만 보는 사람들은 다른 것(집에 대한 개인적 기호 등)은 아예 안 본다는 둥.
그래도 살 집인데, 내 마음에 들어야지, 어떻게 그런 것(시세 차)만 보고 집을 택하느냐, 는 말에,
"그럼, 부자 못 된다니까!"
그녀가 한마디를 날린다. 내 마음에 드는 집 있으면 됐지, 뭘 부자씩이나 바라냐고 했더니,
"노후 생활하려면 챙겨야지!"
라고 하는 그녀는 '집'(1채 이상의, 여분의)에 대한 생각이 확고한 사람이다. 연금도 나오는데 뭘 더 바라냐, 하니 연금 갖고 살기 어렵다고 한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맞춰 살아야지, 뭘 더."
라는 나의 말에(이렇게 내가 부자 마인드라곤 1도 없다),
"그럼, 자식들 집은 어쩔 건데?"
한다. 아니, 자식들은 먹여주고 키워줬으면 지들이 알아서 살아가야지, 무슨 집까지 해 주냐(하고 싶어도 할 형편도 안된다), 고 했더니 평생 벌어도 집 장만하기 어려운데 안 해 주면 집 없이 어떻게 사냐고 한다.
다 해 주다 보면 의례히 또 해 줄줄 알고 나이 먹어도 부모한테 기대려고 한다는 나의 말이 먼저였는지, 뭘 자식들 집까지 해 주냐는 말에 "자식이 불쌍해!"라고 한 그녀의 말이 먼저였는지 모르겠다.
티타임의 가벼운 대화였고, 평소에는 교양을 겸비한 사람들답게 서로 간의 경계를 잘 지키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집값' 문제는 그 경계선을 밟고 들어갈 수 있는 예민한 문제였나 보다.
자리로 돌아와서 커피를 마시며 일 모드를 'on' 시켜야 하는데 이게 잘 켜지지 않았다. 마음에 파동이 일었다. 자식이 불쌍해, 라는 말에서 그 '자식'에 나의 딸과 아들의 얼굴이 겹치니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소란스러워졌다. '집을 마련해주지 않은 부모의 자식들은 불쌍하다'는 생각에 동의가 안되기도 했고, 일반화할 수 있는 생각은 더욱 아니라는 내 마음의 소리 때문이었다.
부자 마인드가 없는 나 같은 사람이 그 마인드로 철갑을 두른 사람들의 눈에는 싸잡아 '불쌍'해 보이는 걸까. 꼭 나에게 한 말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냥 넘어가기에는 내 마음의 소동이 가시지 않았다.
유*브에서 전에 마음에 간직했던 비디오 클립 하나를 다시 내려받았다. 유한양행의 창업자 고(故) 유일한 박사의 유언장을 담은 클립이었다. 1971년 4월 8일 자 편지로 또박또박 써 내려간 유일한 박사의 유언장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첫째, 손녀에게는 대학 졸업까지 학자금으로 1만 불을 준다.
둘째, 딸에게는 유한공고 안에 있는 묘소와 주변 땅 5천 평을 물려준다. 그 땅을 유한동산으로 꾸미고, 그 동산에는 결코 울타리를 치지 말고, 학생들이 마음대로 드나들게 하여 티 없이 맑은 정신에 깃든 젊은 의지를 지하에서나마 느끼게 해 달라.
셋째, 내 명의의 주식 14만 941주는 전부 한국사회 및 교육원조 신탁금에 기증한다.
넷째, 아내는 딸이 그 노후를 잘 돌보아주기 바란다.
다섯째, 아들은 대학까지 졸업시켰으니 앞으로는 자립해서 살아가거라.
여섯째, 누구누구에게 돈 받을 것이 있으니 얼마는 감해 주고, 나머지는 꼭 받아서 재단 기금에 보태라.
메신저에서 그녀의 이름을 찾아 내려받은 클립 보내기 버튼을 눌렀다. 아침 대화로 인해 나의 마음에 소동이 인다, 나를 다잡으려고 마음에 새기는 클립 하나를 보낸다, 나를 위한 것이니 안 보셔도 무방하다, 는 메시지와 함께.
사회생활로 만난 인간관계는 자칫 잘못하면 매우 껄끄러워진다. 그래서 우리는 'social distance(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며 사회적 매너를 지키면서 산다. 내가 그녀에게 이런 비디오 클립을 보내는 행위는 그녀 입장에서는 매우 기분 언짢을 상황일 것이다.
웃자고 한 얘기에 죽자고 달려드는 모양새일까 봐 적이 걱정이 앞서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보내기 버튼을 누르기 전에 망설이고, 또 망설였다. 보내고 생길 수 있는 어색함, 정서적인 거리감은 또 얼마나 될지, 예상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가 '적당'하고 '어정쩡한' 입장으로 서로를 대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도 내 마음을 살피며 살자고 스스로에게 약속했었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는데 너무 남 눈치 보며 살지 말자고. 그래도 어렵다.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나를 가려주던 안전한 가면 하나를 벗는 일은. 두툼한 겉껍질을 벗었을 때 생기는 불안감, 두려움, 어색함, 불편함. 그런 감정이 싫어서 그냥 적당히 넘어가다 보면 뭔지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낭패감에 당혹스러워지는 일이 생긴다. 그래서 진심을 전하기로 결심하지만, 진심이 상대방에게 달리 전달될까 봐 속이 탄다.
잠시 후에 그녀로부터 답 메시지가 왔다.
선생님 말이 맞다고 생각해요. 부모마다 자식을 키우는 방식이 다르니까요. 가정마다 처한 상황이 다를 거고요.
그녀는 역시 교양이 넘치는 사람이다. 내 자식 건사도 잘 못하는데 남 말할 처지가 못 된다고, 나도 메시지를 보내고는 그녀 교실로 향했다. 이런 일은 얼굴을 보고 마무리를 해야 하는 것이다(난 정말 아날로그적인 사람이다. 옛날 사람, 흑).
얼굴을 보니 서로의 진심이 더 또렷하게 다가온다. 그녀는 아들이 열심히 살지 않아서 속상하단다. 평소에 웬만해서는 가족에 대한 허물을 내비치지 않는 그녀였다(그에 비하면 난 매일 내 가족 허물 자랑(?)의 달인이다). 평소에도 아름다운 그녀였지만, 내 진심을 왜곡해서 받아들이지 않아서인지 더 빛나 보였다.
교실로 돌아와 보니 그녀로부터 또 메시지가 와 있다.
평소에 내가 인간적으로 좋아하는 쌤, 이라고 조심스레 고백해 봅니다.
우리 함께 파이팅, 해요.^^
진심을 전하고 진심이 통하고. 비로소 나의 일 모드가 'ON', 빨갛게 켜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