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을 읽는 시간

자유와 여유, 소통과 공감의 시간

by 정혜영


오늘 화상수업으로 읽어줄 그림책은 박종채 작가님의 <내 빤쓰>이다.

2학년 우리 반 아이들 몇몇이 키득거리는 것을 보니 '빤쓰'가 뭔 지 아는 눈치다. 빤쓰가 뭔지 아니? 하고 물으니 '팬티요~!' 하면서 와- 웃는다. 몇몇은 창피한 듯 입을 가리며 웃음을 참는다.

<내 빤쓰>라는 그림책은 70년대생인 작가의 어린 시절, 복고풍 감성이 물씬 풍겨 나는 그때의 기억을, 정감 어린 그림과 이야기로 풀어낸 그림책이다.


여러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난 주인공이 형과 누나들이 사용한 옷이나 가방 등을 물려받아 쓰던 시절, 엄마의 재봉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학교에서 신체검사를 하던 날, 누나의 '빤쓰'를 줄여 입은 것을 보고 놀림감이 된 주인공이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떼를 쓰자, 엄마가 새로 만들어주신 남자 팬티를 입고는 자신만만해하는 이야기이다.

아이들은 새 팬티를 입은 주인공의 기분에 대해 기쁠 것 같다, 좋겠다, 행복하겠다, 로 표현하기도 하고, 주인공이 다시 신체검사를 받고 싶어 할 것 같다고도 한다.

그림 속에서 팬티만 남기고 신체검사를 받는 장면에서 소리를 질러대던 아이들이 이내 주인공 남자아이에게 감정 이입을 해서는 그 창피한 검사를 또 받고 싶어 질 것이라고 얘기하는 것이다.




그림책이 주는 효능은 그런 것이다.

즐거움을 가져다주고, 배움을 얻으며, 성장과 변화로 이끄는 것. 때로는 아이들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치유의 효과까지. 아이들의 상상력을 구체화시키며, 이를 통해 더 큰 꿈을 꾸게 하는 것. 어린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어야 하는 명백한 이유이다.


교사 연수나 교환 교사 등의 프로그램으로 소위 '교육선진국'이라는 나라(내 경우, 캐나다와 싱가포르)의 초등학교를 방문해 그곳 교사들의 수업을 본 짧은 경험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교사가 아이들과 좀 더 가까이, 눈을 맞추고 수업하는, '기본'에 충실한 것이었다.


물론, 학급당 30명 전후인 대도시의 학급에서는 실현하기 참 어려운 현실이라는 점이 안타깝긴 하다. 그렇기에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는 시간은 더 소중한 것이어서 나는 걸핏하면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시간을 만든다.


코로나 이전의 시기에 30명 가까운 아이들이라도 한 군데 빙 둘러 모아 그림책을 읽어주면, 아이들은 어떻게든 선생님과 더 가까운 자리에 앉아보려고 자리 쟁탈을 벌이곤 했다. 저학년 아이들의 낮은 의자에 앉아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주고받는 이야기는, 선생님은 교단에 서서, 학생들은 각각의 책상에 앉아, 이루어지는 수업과는 천지차 만든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읽어줄 때의 목소리와 표정의 변화를 바로 눈 앞에서 확인하고, 교사는 아이들이 받아들이는 표정 하나하나에서 읽어주는 맛을 제대로 느끼게 된다. 그야말로 서로의 존재감을 오롯이 피부로 느끼는 시간인 것이다.


어머니나 할머니들이 들려주는 옛날, 옛날 한 옛날에, 로 시작하는 이야기 듣기의 경험이 없는 우리 아이들에게 이와 같은 경험은 세대를 아우르는 공감의 시간이며,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시간이다. 책 읽기를 싫어하는 남자아이들에게도 얼마간의 '딴짓'이 허용되는 자유와 여유의 시간. 우리 모두에게는 그런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준다. 아이들에게 읽어줄 그림책을 고르고, 눈 맞추며 읽어 준 뒤, <책 속 인물 그리기>, <주인공에게 편지 쓰기>, <뒷 이야기 상상해보기>, <그림책 속에서 배운 내용을 그리고 소개하기> 등, 각자의 작은 그림책을 완성해가는 활동은 아이들에게 '그림책 작가'가 되어보는 경험이 된다.


담임 선생님이 직접 그리고 쓴, 예시 작품은 아이들에게 더 많은 영감을 주기도 하지만, 따라쟁이로 만들기도 해서 늘 고민이 되는 지점이다. 그래도 아이들이 선생님의 그림을 좋아해 주니 더 신이나 그려준다.


비대면 시대에 아쉬운 대로 화상 수업을 통해 읽어주고는 있지만, 숨결까지 느껴지는 지근거리에서 그림책을 통해 아이들과 소통하고 교감하는 그 시간이 빨리 다시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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