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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과의사X Dec 07. 2016

'흔들리며 피는 꽃'

그 향기가 더 진하다






정신과 실습 2주차가 시작되었다. 오늘은 파업의 여파로 전공의들은 병원에 없고, 실습생인 우리들은 회의실에서 대기중이다. 공부를 해보려 했지만 월요일 아침부터는 무리인 듯 하다. 멍하니 있다보니 지난 한 주간의 일들이 눈 앞을 스친다.

내가 참 좋아하는 <흔들리며 피는 꽃>이라는 시가 한 교수님의 진료실 앞에 써 있는 걸 보았다. 환자들을 향한 그런 작은 배려가 인상적이었다. 그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환자들은 곧 낯선 사람에게 자신의 속이야기를 털어 놔야한다. 마음 편할 이가 누가 있을까. 그 불편함을 이 시 한편이 도닥여 준다. 그런 마음 가진 의사가 진료실 안에 있다는 것이 위안을 준다. 문을 열기 전에도 그 의사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누구나 그렇다고, 나도 당신의 아픔을 이해한다고..

회진을 돌다보면 안 우는 척 하려고 애쓰는 여자 동기들을 종종 본다. 교수님과 환자의 대화를 듣고 있자면 그 분들의 아픔에, 외로움에, 절망에 내 마음도 함께 요동친다. 참다 못해 눈을 크게 뜨고 가슴으로 운다. 한 친구는 이제 퇴원하라는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아직 병동 친구들과 작별인사를 못했다며 퇴원을 미뤄달란다. 집에 가면 다시 홀로 된다는 것, 나가서 또 그런 행동을 하고 난 역시 안 된다는 절망감을 다시금 느끼게 될 수 있다는 것이 두려워 답답한 정신병동에서도 발걸음이 차마 안 떨어진단다.

어떤 아저씨는 어느 날 오후 마당을 치우다가 갑자기 양쪽 볼이 당겨왔고 얼마 후부터 입으로 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하셨다. 이웃 사람들은 자신을 이상하게 보기 시작했고 한두 시간이고 증상이 멈추지 않을 때면 가슴이 아프고 숨이 차서 너무 힘드시단다. 하나님을 원망하는 마음은 없고 단지 내가 무슨 죄를 그렇게 많이 지었길래 이런 벌을 주시나 생각하신다고 말씀하실 때 또 발작이 시작되었다. 가까이 다가가 조용히 안아드리며 벌 받으시는 거 아니라고, 괜찮아지실거라고 말씀드리고 싶었다.

하루는 여든이 넘은 노부부가 보호병동에 면회를 오셨다. 우리 할아버지를 너무 닮으셔서 친근함이 느껴지는 분이셨다. 옆에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집에서 함께 농사지으며 부모님을 모시던 착한 아들이 작년 가을 무렵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보였단다. 보호병동에서 멍하니 티비를 보며 알아 들을 수 없는 말을 웅얼거리는 아들을 쳐다보시며 눈시울이 붉어지신 할아버지 할머니.. 퇴원하고 돌아와도 자신들이 너무 늙어서 어떻게 돌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눈물을 훔치실 때는 그 어떤 위로의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가시는 길 조용히 배웅해 드리고 돌아서니 아들은 떠나는 부모님을 반쯤 감긴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한 주간 실습을 돌면서 정신과를 찾고 또 입원하는 분들이 나와 전혀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사람들임을 알게 됐다. 내가 알콜중독자인 아버지에게 매일 같이 두들겨 맞으며 컸다면, 원하지 않는 틱 장애가 생겨서 주변 사람들이 날 이상하게 보고 따돌린다면, 군대에서 내 편이 단 한 명도 없고 하는 일마다 욕 먹고 인간쓰레기 취급을 당한다면, 길을 가다 교통사고를 당해 머리를 크게 다친다면, 우연히 항정신성 약물을 접했는데 그 경험이 너무 강해서 끊을 수가 없다면.. 그 자리에 내가 있었다면 난 이겨낼 수 있었을까. 어느날 눈 떠보니 생겨 있는 정신이상을 쉽사리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나를 정신병자로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또 얼마나 두려웠을까.

남은 3주. 아직 내 안에 남아있는 마음의 벽을 더 낮추고 조금 더 그분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면 좋겠다. "흔들리며 피는 꽃의 향기가 더 진하다"는 것을 말씀드리며 진심으로 위로하고 응원해 드리고 싶다.


2014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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