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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과의사X Dec 07. 2016

깨어진 꿈은 또다른 축복일까

Broken dreams are blessing in disguise?


3년 전, 잠시 네덜란드에 갔다 돌아온 친구로부터 이 선물을 받았다. 예쁘고 화려한 나무신발들이 전시되어 있었던 기념품 가게. 그 한 쪽 귀퉁이에서 이 녀석들을 발견했단다. 원래는 신발을 만들려고 했으나 실패한 작품들을 그냥 버리지 않고 사진에서처럼 위트있게 만들어 파는 것이다.

선물로 받은 모형은 악어와 새. 악어 위에 새를 올리니 '악어새'가 되었다. 이 작품의 감상포인트는 '깨어진 꿈을 통해 새로운 꿈을 발견한 악어새의 희망찬 표정' 그리고 '입이 찢어질만큼 환하게 미소짓는 순한 눈을 가진 악어'라고 하면 되려나..

나무신발이 되고 싶었던 꿈이 깨어졌다. 그렇게 버려질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 깨어진 꿈은 위장된 축복이었다. 누군가의 손에 의해 다듬어진 신발은 진열대에 전시되어 있는 그 흔한 나무신발과는 구별되는 독특하고 아름다운 새와 악어가 되었다.

한 쪽 팔에 붕대를 감고 있는 한 아저씨가 찾아왔다. 어떤 공장의 관리인이었는데 고장난 기계를 점검하다 사고가 나서 한쪽 손을 잃었다. 날칼로운 칼날에 자신의 손이 몇 cm 간격으로 잘려져 나갔던 그 경험이 아직도 눈 앞에 생생하다. 종종 극심한 통증이 생길 때면 귀에서 기계음이 들리기 시작하고 미쳐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전에는 밝고 긍정적인 성격이었는데 그 후로 성격도 예민하게 변하고 죽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하지만 어린 자식들이 눈에 아른 거린다.

또 다른 아저씨는 어느 날부터 눈 앞에 무서운 청년들 세 명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신을 해칠거라는 두려움에 잠을 잘 수가 없었고, 그 후로 어떤 일도 손에 잡지 못한다. 평생을 함께 하기로 한 아내는 지금 이혼 소송 중이고 사랑하는 자식들과도 곧 떨어지게 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은 그 세명의 남자들보다 사랑하는 이들과의 이별이 더 아저씨를 힘들게 한다. 푹 숙인 고개를 좀 처럼 들지 않으신다.

나는 그분들의 상실감을 잘 알지 못한다. 더 이해하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내가 가진 것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이분들에 비하면 내가 경험한 상실은 예쁜 나무신발에 난 흠집 정도가 아닐까? 그 흠집에도 호들갑을 떨며 금새 덧칠해 버리기 바빴던 나였으니, 한 쪽 귀퉁이가 너무 망가져서 나무신발이 되기를 포기해야 하는 그분들의 아픔이 여전히 낯설다.

그래서 난 그 깨어진 꿈들이 축복으로 바뀔 수 있다고 감히 말씀드릴 수가 없다. 정말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저 마음으로 꼭 그렇게 되기를 기도하며 힘내시라는 말만 건낸다. 그분들이 치료를 잘 받고 이겨내서.. 한 쪽 손이 없지만 그 누구보다 아이들을 많이 안아주는 따뜻한 아버지로, 정신장애를 극복한 강인한 남편으로 일어서기를 응원하는 마음이다.

3년 뒤, 학생의사가 아닌 주치의로 그분들과 함께 하는 모습을 그려본다. 그때까지 마음을 다해 배우고 경험하는 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인 것 같다. 또 하나가 있다면 최근 내 삶에 있었던 마음 어려운 일들을 똑바로 마주하는 것이다. 마음껏 슬퍼하되 이 아픔들이 앞으로 축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인내 해야겠다. 그래야 나와 비교할 수 없을만큼 더 힘든 그분들에게 힘내시라는 말 한 마디 건낼 수 있지 않을까.

My grace is sufficient for you, for my power is made perfect in weakness. (2Cor 12:9)

 2014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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