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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과의사X Oct 26. 2020

마음이 무겁다2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주치의의 삶. 보람도 있고 힘들기도 하고. 많은 것을 느끼게 하는 시간이다.


환자들이 웃을 때만큼 기분 좋을 때가 없다. 심각해져 있는 환자와 보호자가 웃기 시작할 때 잠시나마 고통이 사라지고 고통 너머에 있는 것들을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기 시작하는 것 같다.

어제는 DNR을 처음 받아봤다. 할머니는 어제까지 동공이 pinpoint 였는데 오늘 아침에 보니 다 열려 있으셨고 어떠한 자극에도 반응이 없으셨다. CT를 찍었고 곧 올라온 할머니의 퉁퉁 부어있는 뇌를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기계 환기를 잘 모르면서 조절해서일까. 써야 하는 약이 있었는데 안 써서 그런 걸까. 뭘 어떻게 해도 어쩔 수 없을 만큼 안 좋았던 환자였지만, 살 수 있는 작은 가능성을 내 무지로 막아버린 건 아닐까. 그런 생각 때문에 마음이 괴로웠다.

어제까지는 그렇게 가면 안된다고 울부짖던 보호자가 오늘 아침에 와서 "엄마 좋은 곳으로 가. 거기서 만나."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눈물이 나는 걸 억지로 참았다. 하루 동안 얼마나 많이 우셨을까. 지난달에도 비슷한 증상으로 오셔서 며칠을 중환자실에 계시다가 깨어났던 엄마였는데. 이번에도 그렇게 다시 돌아올 줄 알았는데. 이렇게 작별 인사도 없이 떠나버리다니.

며칠 전에 응급실에 왔을 때 병원에서 입원시켜 줬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내가 깜빡 졸지만 않았어도 엄마가 숨을 못 쉬고 있었다는 걸 금방 발견했을 텐데. 누군가를 원망하다 결국 자신을 원망하고 그러다 지쳐 또 울고 울고 또 울고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면서 그 긴 밤을 대기실에 웅크리고 누워서 보내셨을까.

환자는 포기하지 않았는데 내가 먼저 포기했던 것은 아닐까. 그런 마음이 들어서 죄송하기만 하다. 그런 내게 "의사 선생님 우리 엄마를 살려주세요"라는 말을 하시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나 또한 기적만 바라고 있다.  


2016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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