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외과의사X Oct 28. 2020

진짜 이야기 읽기


우리 어머니는 15년 전 고관절 수술을 받으셨다. 오늘 잠시 어지러워 쓰러지시면서 엉덩방아를 찧었는데, 그 후로 통증이 너무 심하다고 하셨다. 근처 병원에 가서 사진을 찍어보니 이전에 수술한 부위에 골절이 생겼다. 수술을 받았던 서울 소재 대학병원에 연락해보니 그때 수술한 선생님은 없으시다고 강릉 아산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그래서 여기에 왔더니 사진 몇 장 찍고서는 우리는 수술 못하니까 그때 수술한 병원으로 가란다. 그리고 가도 바로 수술은 안 될 거고 짧으면 며칠, 길면 일이주 기다려야 한다면서. 솔직히 내가 돈만 많으면 수술을 언제 받든 상관없이 바로 출발했겠지만 솔직히 말해 그럴만한 여유가 없다.

그래서 여기에 수술 날짜 잡힐 때까지 있다가 가면 안되냐니까 그건 안된단다. 왜 안되는지 한마디 설명도 없이. 그럼 강릉의 다른 병원에 있다가 간다니까 그것도 안된다면서 그럴 거면 자의 퇴원 서약서인가 뭔가를 적으란다. 그 말을 듣는데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니들 부모면 그런 식으로 내쫓겠냐고, 뭐 이딴 병원이 있냐고 소리 질렀다.

사실 그건 능력 없는 나 자신에 대한 분노였는지도 모르겠다. 어머니는 아파서 저러고 계신데 병원비 신경 쓴다고 이곳저곳 알아봐야 하는 내가 너무 싫고 못나게 느껴졌다.

그렇게 화내는 내게 젊은 의사 놈이 다가왔다. 와서 잠깐 이야기를 들어주는 척하더니 자의 퇴원서에 사인을 하란다. 서울 쪽 병원에 가면 되지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시냐고, 우리가 받기 싫어서 안 받는 게 아니라고, 돈 아끼시려고 지금 이러시는 거면서 왜 그 책임을 우리한테 돌리시냐고. 따박따박 쏘아붙이는 그 의사 놈과 말을 더 섞기 싫어서 사인을 해버렸다.

사인을 받은 그 녀석은 "보호자분! 도대체 뭘 가지고 우리 병원에서 시위를 한다는 말씀이세요? 보호자분이 자기 맘대로 하시면서 그걸 우리 탓으로 돌리는 거예요? 덤터기 씌우고 그러시지 마세요"라고 사납게 한마디 하고는 사라졌다. 이해한다는 말, 이렇게 돌려보내서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도 없이, 앞으로 뭔가 잘못되면 모두 내 책임이라는 그 종이 한 장 가지고 사라졌다.
 
엠뷸런스에 타니 여전히 아파하는 어머니가 나만 물끄러미 쳐다보고 계시는데 그냥 눈물만 흘렀다. 그래 내 잘못이다. 아픈 어머니를 두고도 돈 생각해야 하는 가난한 내가 잘못이다. 그게 쪽팔려서 병원 탓하는 내가 못난 놈이다.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


나도 모르게 젊은 의사 놈이 되어버렸던 오늘. 그 당시에는 고함치며 화내고 있는 그 보호자를 보며 뭐 저런 인간이 다 있나 생각했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나도 날카로워져서 보호자를 쏘아붙였는데.. 돌아서서 생각하니 후회가 많이 된다. 내가 틀린 말 한 건 없지만 틀리지 않다고 다 맞는 건 아닌 것 같다. 다음에 이런 일이 생기면 그 분노를 들어줘야겠다. 그 분노 속에 있는 진짜 이야기를 읽으려고 노력해야겠다.


20200527

매거진의 이전글 응급실 에피소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