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미래 - 미치오 카쿠
어렵게 읽었다.
서문부터 고등학생 때 자기공명 장치를 만들었다는 것에서부터 무언가 이질감이 느껴지는 듯한 책으로 시작했다. 또한 책을 처음 펴고 목차를 보면서 '내가 책 주문을 잘못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저자가 이론물리학자인데 무슨 제목이 '텔레파시', '염력', '마음 조종하기', '외계인의 마음'이라니!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이론물리학자로서 물리학의 원리에 입각해 상상력의 실현 가능성을 판단해주는 저자의 섬세함에 감탄을 하면서 책을 덮을 수 있었다. 연륜 있는 현자의 모습과 호기심과 지식을 탐구함에 반짝이는 소년의 모습이 공존했다. '공상'과학을 과학으로 바라보았다는 것에서 책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은 뇌의 기능과 구조에 대한 실험을 설명하면서도 철학적인 질문을 무수히 던지고 있다.
'의식이란 목적을 이루기 위해 다양한 변수로 이루어진 다중 피드백 회로를 이용하여 이 세계의 모형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p77)'고 설명한다. 또한 의식의 수준을 4가지 수준으로 구분하였다. 0단계 의식에는 식물이 속하고 온도, 일조량을 변수로 이해한다. 1단계는 파충류가 있고 공간에 대한 이해를 하는 의식을 가진다. 2단계는 포유류가 있고 사회적 관계 대해 의식 가능하다. 3단계는 인간으로 시간(특히 미래)에 대해 인지한다.(p85)
의식이라는 관점에서 인공지능을 살펴보자. ANN(Artificial Neural Network) 모형을 사용하여 문제를 해결하곤 하는데 내가 지금까지 해결한 문제는 0단계 수준의 문제였다. 예를 들어 여러 변수들을 보고서 '너의 게임 플레이는 몇 점이야.'라고 알려주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0단계 수준의 문제을 측정하고 사용자 스스로 피드백을 할 수 있게 돕는 0단계 수준의 피드백 과정의 일부이다.
흥미로운 것은 3단계 의식 수준을 살펴보면 시간이라는 변수가 들어가 있다. 지금까지는 인간이 비교적 컨트롤할 수 있는 변수들의 영역이지만 여기부터는 통제 불가능하다. 공간을 왜곡하여 시간을 빠르게 갈 수는 있더라도 되돌릴 수는 없기에 불완전하게 통제할 수밖에 없다. 만약 4단계 의식 수준이 있다면 '범시간적으로 현상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하고 공상해 보기도 한다.
'이해하다'라는 단어는 정말로 이해할 수가 없다. '이해하다'라고 하는 것은 경험적으로 익숙해졌다는 의미에 가깝게 쓰이는 것 같다. 즉 패턴에 대한 경험의 누적(귀납적)을 통해서 다음에 어떤 현상이 이어질지 학습되었다는 느낌이다. 지금 당신은 이 글을 읽으면서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문장과 단어가 어떤 상황에서 쓰이는지 경험적으로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것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학생 시절 이런 유사한 형태의 사고의 끝에 나는 '나는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은 안다.'라고 스스로 깨닫고 매우 힘든 시기를 보냈던 적이 있다. 내가 과연 무엇을 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나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등의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나는 무언가를 안다고 말하는 데 굉장히 힘들어하는 편이다. 내가 안다고 말하는 것은 객관적일 수 없는 축소된 수준의 나의 경험적 패턴의 일부였다.
그래서 연역적 사고가 가능한 것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비교적 최근에 멘토와 함께 귀납적 사고와 연역적 사고에 대해서 말을 주고받은 적이 있었다. 요지는 다음과 같다.
수학은 연역적이고 과학은 귀납적이다. 그래서 실험을 통해 실마리를 찾아야 하기 때문에 관찰 능력이 중요하다. 그래서 양자역학을 이해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연역적으로 이해하기도 어렵고 귀납적으로도 이해할 수 있는 공간에 우리는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귀납과 연역을 적절히 할 수 있어야 하지만 평소의 나의 사고방식은 귀납에 매우 초점이 높다. 그래서 과정에 대한 이해보다 결론을 빨리 보고 싶어 한다. 그러다 보니 해석학을 배울 때 매우 힘들었고 지식과 지식 사이의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의 연결을 매우 어려워했다. 반면 경험이 있는 경우 다른 두 경험의 연결 고리를 비교적 잘 찾아내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위에서 말한 경험의 연결 고리를 만들다 보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파인만의 일반인을 위한 QED 강의』책을 읽을 때였다. 광자는 파동의 성질도 입자의 성질도 가지고 파동-입자 이중성이라고 말한다. 이중 슬릿 실험으로 빛의 파동의 성질을 관측하였고 광전효과를 통해서 빛의 입자성을 관측하였다. 즉 빛은 입자와 파동의 성질 모두를 가지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은 어떠한가? 입자로서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만 만약에 파동의 성질을 가진다면 어떠할까? 내가 지금 이 위치에 있는 것은 과거의 어느 한 시점에서 파동 방정식으로 표현될 수 있었을 것이다. 즉 나의 인생은 무수한 시나리오를 확률로 표현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순간순간 관측(인지)하면서 입자로서의 자신을 의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시뮬레이션을 한다고 생각했을 때 한 단계가 진행된 상태에서 피드백을 하는 것과 열 단계가 진행되었을 때 피드백을 할 때 수정 비용을 생각해보면 1단계에서 수정하는 것이 훨씬 수월하다. 그렇기에 스스로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자주 피드백을 하면서 방향을 맞추어 나간다면, 어느 순간 시간은 나를 내가 기대하던 곳에 비교적 가깝게 대려다 놓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생각은 인간이 파동의 성질을 지닌다고 하는 가정하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그럼 인간과 광자의 세계는 어떻게 달라서 파동이 아니라고 생각되는가? 아마도 광자의 세계는 양자 세계, 즉 초미시세계 속에서 관측이 일어날 때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면 만약 우리의 관측자가 초거시세계에 있으면 역으로 우리는 초미시세계 속에 존재한다고 관측되지 않을까? 그러면 초거시세계에서 관측한다면 파동함수는 붕괴되고 우리가 입자로서 존재할 것이다. 그렇다면 초거시세계에서의 관측이란 무엇일까? 만약에 초거시세계와 초미시세계가 이어져 있다면 내가 나를 스스로 관측한다는 것이 입자로서 존재하는 것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아! 그래서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했구나!
라는 말도 안 되는 가정과 사고의 연결을 만들어낸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뇌이다.
아는 것이 없어서 참으로 어렵게 읽었다. 그나마 10장에 인공지능이 나오면서 친숙하게 다가왔고 부록에서 양자적 의식에 대해 설명한 부분을 흥미롭게 읽어서 책을 다 읽은 순간에는 만족하는 부분이 생겼다. 나에게는 '절정-대미의 법칙'이 적용된 책이었다. 기존의 지식이 부족한 만큼 어렵게 읽고 공감도 힘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오히려 『파인만의 일반인을 위한 QED 강의』책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된 것 같다.
언젠가 다시 읽고 싶어 졌다.
지금 아는 것이 없어서 소화할 수는 없지만 언젠가 다른 책을 읽다 보면 뇌내 시냅스가 지금의 기억과 잘 연결시켜 줄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그때 다시 한번 책을 읽으면서 얼마나 성장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미래에, 이 책을 한 번 더 읽고 한 번 더 글을 쓰는 내가 확률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인지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대교, #씽큐베이션, #더불어배우다, #체인지그라운드, #마음의미래, #미치오카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