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연습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 샐리 티스데일

by 경규승

다음 달 나는 죽을 수 있다.

아니, 다음 주에 죽을 수도 있고, 내일 죽을 수도 있고, 지금 글을 쓰다가 죽을 수도 있다.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순간에 죽을 것이다, 대부분.




죽음이 두려운가? 왜 두려운가? 죽었다는 것을 인지할 스스로가 없는데 공허함이 두려운 것인가? 우주가 두려운 것과 유사한 것인가? 혹은 익숙하지 않은 순간이기 때문에 두려운 것인가? 그러면 항상 죽음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감히 미래를 예측하며 시뮬레이션해볼 수 있는 선물을 받았으니까 말이다. 죽음을 항상 곁에 두고 대미를 장식할 연습을 해보자. 우리의 마지막 순간을 절정 대미의 법칙이 적용될 수 있도록 설계해보자.


죽어가는 순간에 육체가 너무도 고통스럽기 때문에 무서운가? 죽어가는 순간을 느껴보지도 않은 당신이 어떻게 아는가? 당신이 3자로 죽어가는 자를 지켜봤을 때 고통스러워 보여서 그렇게 느끼는 것 아닌가? 죽어가는 자가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죽어가는 사람을 바라보는 당신이 고통스러운 것이다. 고통도 맥락에 따라 다르다. 대부분의 죽어가는 자는 생각보다 고통스럽지 않다고 한다. 숨 쉬는 것이 거칠어 보이고 가래 끓는 소리가 불편해 보이는가? 괜찮다, 아프지 않다. 자연스러운 것이다. 고통스러운 것은 죽어가는 사람이 아니다. 만약 정말로 고통스럽다고 하더라도 현대 의학이 당신을 도와줄 것이다. 아프지 않다, 익숙하지 않을 뿐이지. 모르핀 같은 마약이 이렇게 고맙게 느껴지긴 또 처음이다.


자신이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죽음이 두려운가? 스스로가 스스로를 통제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한 기만 아닌가? 모든 것을 어차피 통제하지 못한다. 욕심이다. 당신은 시간이라는 흐름 속에서 살아간다. 감히 시간을 빨리 감을 수는 있어도 되돌릴 수는 없다. 시간뿐만이 아니다. 당신이 당신의 생각을 온전히 컨트롤한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의 생각의 출발은 어디인가? 그것이 당신의 생각이라고 할 수 있는가? 남의 생각을 듣고서 자신의 생각이라고 받아들이지는 않았는가? 당신이 생각의 오리지널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거짓말하지 말자. 죽음의 순간에서는 어차피 모든 것이 없어진다. 우리가 가장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생각마저도 온전히 통제하지 못한다.


사람은 육체적인 통제보다 정신적인 통제를 두려워한다고 한다. 죽음이 다가오면 육체는 움직이기 불편하도록 통제된다. 불편하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생각이 자유롭지 못하고 평소 같지 않은 자신이 나올까 두려워한다.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우리가 의식을 잃더라도 가장 나다운 스스로의 정수는 남아있다.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우리의 본질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마지막 순간, 죽어가는 이가 평소 같지 않은 행동을 하더라도 우리는 너그러이 바라보고 유연하게 대처할 책임이 있다. 진실된 그를 바라볼 몇 안 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래, 나는 죽는다, 너도 죽는다, 우리 모두 죽는다.


당연한 사실인데 왜 이리 멀리 두고 살았을까. 사람의 인생은 불확실성 속에서 살아가는데 단 하나의 공통적인 확실성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까.



죽을 준비를 한번 해보자.


1달 뒤 나는 죽는다.
그럼 무엇을 하고 싶은가?

아빠와 히말라야 트레킹 하기

3년 전부터 더 이상 아빠가 늙기 전에 가야겠다고 항상 다짐했었다. 하지만 일한다고 미뤄왔었다. 그러니 떠난다.


엄마와 멋진 데이트

생각해보면 엄마와 둘이 외식한 적이 언제였나 싶다. 어릴 때는 그렇게 둘이서 시장도 많이 가고 놀러도 많이 갔었는데, 최근에 함께한 순간은 왜 없을까? 엄마에게 정말 행복한 순간을 선물해 주고 싶다.


누나와 일본 여행

20살 성인이 되어서 처음으로 누나와 둘이서 여행을 갔었다. 너무 힘들었다. 그런데 너무 좋았다. 행복한 순간을 가득 남겼다. 우리가 가장 젊었던 시절의 기억을 만들었다. 가장 젊은 시절의 소중한 순간을 다시 한번 추억하고 싶다.


매형의 꿈의 구체화

미래에 대해서 짧게 얘기하기는 했다. 현실의 벽에 부딪혀, 가장이라는 책임으로 형님의 미래를 설계하는 시간이 부족해 보였다. 내가 형님의 미래를 구체화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와주고 싶다.


조카 시훈이랑 하루 종일 힘껏 놀기

아침에 일어나서 잠이 들 때까지 신나게 놀아보자. 지금까지 왜 못했을까? 한두 시간 같이 노는 것만으로도 왜 그렇게 힘이 들었을까? 왜 잠은 항상 따로 잤을까? 정말로 신나게 놀다가 지쳐서 함께 잠들고 싶다.


친구 정한이와 내 사후 처리 방법 말하기

지금도 각자 여행을 가면 서로가 어디에 있다고 꼬박꼬박 이야기한다. 그리고 다음에 만나면 서로 유서를 써보자고 얘기해 준 친구기도 하다. 만약에 정한이가 죽으면, 내가 아들처럼 하지는 못하더라도 정한이 부모님을 챙겨야 한다는 생각이 언제부터 인지는 모르겠지만 머릿속에 있었다. 이 글을 볼지도 모르겠는데, 뭐 객지에서 죽는다고 걱정마라. 네 시체는 내가 꼭 찾아줄게.


친구 영환이에게 사과하기

정말로 허물없이 말하는 사이, 가장 격 없이 말하는 사이다. 그래서 상처를 주는 말을 너무 많이 했다. 쓰레기라고 놀리고, 프로필 사진 못생겼다고 놀리고, 병신 같다고 놀리고 했다. 심한 말을 너무 많이 했다. 상처 주는 것이 무뎌질 정도로 많이 했다. 사과를 받아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하고 싶다.


친구 창빈이에게 존경을 표하기

학창 시절부터 그랬다. 나는 떠벌리면서 이것저것 할 거라고 다니는 스타일이라면, 창빈이는 허허 웃으면서 말없이 자기 일을 가장 열심히 하는 친구다. 언제나 아웃풋을 보여주고 주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친구다. 그것이 부러웠었다. 실은 부럽다기보다 존경스럽다. 너에게 많이 배웠다고 말해주고 싶다.


친구 욱이에게는 꼰대짓 하기

욱이가 힘든 환경이라고 내가 너를 어떻게 되었으면 좋겠는지 최근에 솔직히 말하지 못했다. 그냥 가십거리만 말하고 직면한 현실에 대해 말하는 것을 회피했다. 가는 마당이니까 내가 너에게만큼은 꼰대짓을 하고 싶다. 내 어리광을 받아주면 좋겠다.


자서전 쓰기

나는 죽는다. 그래도 글은 남는다. 욕심이지만 세상에 나를 남기고 싶다. 거창하게 자서전이라고 적기는 했지만 일기와 에세이에 가까울 것이다. 나는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추억을 가지고 있었고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인지 남기고 싶다. 그러면 당신이 나를 추억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한다. 나는 죽어도 당신 안의 나는 살아있으니까. 나는 단수가 아니니까 말이다.




이렇게 적었어도 내가 한 달 안에 이 목록 중에 하나라도 할 수 있을까? 아마 하는 것도 있고 못하는 것도 있을 것이다. 아니, 솔직히 대부분 못할 것 같다. 그래도 저기 적어놓은 것을 할 확률은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아니다, 그냥 이 기회에 지르자. 정한아 너 여행 갔다 오면 서로 유서 한번 써보자. 너도 정말로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책에서도 말한 것처럼 남의 죽음은 당연시 하지만 내 죽음은 꽤나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렇게 적어보는 것만으로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더 알게 되었다. 스스로를 마주하면서 너무도 많은 눈물을 쏟으며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있다.


그리고 이 글에 당신이 없어서, 내가 그만큼 당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가정하며 슬퍼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개인적인 영역은 쓰고도 보여주지 않은 부분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 걸 오늘부터 당신과 만나면서 직접 이야기하고 싶다. 다음에 만날 땐, 우리의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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