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격차>에서 사일로를 파괴하기 위해서 사일로에 소속되어 있는 인력, 특히 사일로의 책임자를 교차 배치하라고 한다. 사일로 효과(Silos Effect)는 조직 내 부서들이 사일로(곡식 및 사료를 저장해 두는 굴뚝 모양의 원통형 창고) 안에 있는 것처럼 다른 부서와 소통이 되지 않고 자기 부서의 내부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제품 개발의 왕을 사일로에서 차출해 제조 사일로의 왕의 자리에 앉혀 주는 것이다. 극단적이다.
책을 읽을 때는 '그렇구나. 사일로를 파괴해서 소통을 늘려야 하는구나.'라고 단순히 넘어갔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나서도 여전히 찜찜했다. 회사의 실무자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는 일이기도 했다. 분명 저자는 사일로를 여러 번 옮기고 적응하는 성향의 사람이라서, 그리고 사일로의 장을 교체시킨 것이 효과가 있는 경험을 가지고 있어서 그렇게 이야기했을 것이라 추측해본다.
하지만 이것이 삼성에서만 가능한 특수한 영역은 아닐까 하는 의문도 있었다. 인재의 왕국 삼성. 피라미드의 최상위에는 사람이 부족하다. 하지만 삼성은 다르다. 언제나 더 높은 자리로 가고 싶어 하는 걸출한 인재들이 풍부하다. 그리고 그런 정글로 합류하려는 인재들 역시 풍부하다. 위와 아래 양방향에서의 공급이 풍부한 환경에서만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즉 맥락이 다른 경우, 보편적으로 통하지 않는 방법이 아닐 것 같았다. 그리고 가장 불편했던 점은 '작업'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많은 경영학 서적들 역시 사일로 현상의 위험에 대해서 경고한다. 하지만 이를 단순히 사일로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베네치아. 물의 도시.
운하를 따라서 곤돌라가 유유자적하게 흐르고 산마크로 광장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는 도시의 분위기를 더욱 로맨틱하게 만든다. 이 아름다운 도시를 한 층 더 영롱하게 만들어 주는 데는 유리공예도 한몫을 한다. 본섬 F.te Nove "A"정류장에서 12번 수상버스를 타고 Murano Faro정류장에서 내리면 무리노 섬에 도착한다. 유리의 섬에 온 것을 환영한다. 그리고 대표적인 산업 사일로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
무라노 섬은 정책적으로 유리 제조업자들을 격리한 곳이다. 13세기 베네치아는 목조 건물이 대부분이었다. 유리 공예는 화덕이 필요했기 때문에 도시에 대형 화재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시 당국은 무라노 섬으로 유리 제조업자들을 이주시켰고 지리적 고립 때문에 외부와의 연락이 현격히 줄어들었다.
그렇게 그들은 쇠퇴했다.
가 아주 자연스럽지만 그렇지 않았다. 유리 가공 기술은 무라노 섬에서 더욱 번성했고 기술의 혁신과 창의성의 발산이 일어났다. 무라노 섬이라는 사일로에서 정보와 아이디어의 공유, 그리고 내부에서의 경쟁은 베네치아라는 공동체를 유리의 도시로, 유리 제조업자 개인은 1등 신랑감으로 명성을 얻었다. 이래도 사일로를 만들지 않을 건가?
사람을 모아서 공동체를 형성한다고 하는 것은 단순한 선형적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다. 아이디어의 퀄리티는 양에 비례한다. 그렇다면 양을 늘릴 방법을 찾아야 한다. 기존과는 조금 다른 형태의 그렇지만 익숙한 것을 지속적으로 생산해 내는 것이 양을 늘릴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이다. 이러한 콘텐츠의 성공 방정식을 생각해보면 기존과 조금 다른 특질을 지닐 수 있는 아이디어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 이것을 다른 사람에게서 얻는 것이다. 처음에 10명이 있던 공동체에서 1명이 추가될 때 새로운 연결은 10개에 지니지 않는다. 하지만 100명이 있는 공동체에서 1명이 추가될 때 새로운 연결은 100개가 생긴다. 같은 1명이 아니다.
그렇기에 대표적인 공동체인 도시의 순위를 비교하는 데 1인당 지표로 비교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도시의 규모(인구)가 2배 커질 때마다 GDP, 소득, 폭력 건수, 특허 건수가 15%가 증가한다. 이 관점에서 가장 혁신적인 도시는 어디일까? 즉 1 인당 특허 건수가 높은 지역이 아닌 인구 스케일의 기대되는 특허 건수 대비 초과 특허 건수가 높은 지역을 말하는 것이다. 뉴욕? 창의적인 측면에서 그러하지 않다. 오히려 샌프란시스코가 큰 도시 중에서 예외적으로 기대 수준 대비 초과 특허 건수가 높은 편이다. 대표적인 창의적인 도시는 코발리스와 산호세이다. 코발리스는 HP 연구소가 있는 지역이고 오리건 주립대학교가 있고, 산호세에는 실리콘 벨리가 있다. 그럼 산호세는 왜 그렇게 창의적으로 되었을까? 실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원래 창의적이었다가 답이다. 1960년대에도 산호세는 창의성에서 초과 성과를 달성하고 있었다. 즉 잘 나가는 도시들은 더 잘 나가게 된다. 도시의 팽창은 가속화되고 있다. 그럴수록 빈익빈 부익부는 부, 창의성, 범죄를 포함한 어떠한 형태로든 가속화될 것이다. 공동체가 붕괴되지 전까지 말이다.
그래서 사일로를 만들라는 거냐고?
그렇다. 사일로는 만들어야 한다. 사일로는 창의성과 생산성 제고에 중요한 기능을 한다. 하지만 사일로 현상이 심화되면 개인과 조직에 해가 되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렇기에 더 현명한 질문은 '사일로를 어떻게 이용해야 할까?'가 맞는 것 같다. 조직의 장을 교체하는 것은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 조직의 장은 네트워크에서 큰 노드의 역할을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연결의 관점에서 효율적으로 연결되어있는 것을 보장하지 않는다. 사일로 효과를 방지할 수 있는 경향성은 있겠으나 최선의 방법은 아니라는 것이다.
리더들은 사일로를 파괴하는 데 시간을 쏟을 것이 아니라 사일로 간의 연결의 구조적 빈틈을 메워주는 중개인을 찾는 데 집중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양성하라는 말이 아니다. 찾는 것이다. 이미 네트워크는 형성되어 있다. 억지로 조작하려 하지 말고 관찰하라. 그리고 연결을 가속화시켜줄 수 있는 생태계에 집중하라.
그럼 개인의 입장에서는 사일로(네트워크 내 클러스터)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사일로 하나에 들어가서 나오는 데까지 시간을 결정한다. 사일로를 이용하되, 사일로에 갇히기 전에 나오는 것이다. 사람은 한 가지 사일로에 끌리는 것은 당연하다. 동류 선호 성향(homophily)은 자연적이다. 네트워크에서 자신과 생각이 비슷한 사람에게 더욱 끌린다. 그렇기에 구조적 빈틈을 메워줄 수 있는 중개인이 될수록 노드(개인)의 가치는 네트워크에서 높아진다. 그리고 사일로 간의 중개자 역할을 한다고 해서 자신이 클러스터가 없는 상태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speciallist가 된 이후에 generalist가 되라는 맥락도 이해가 된다.
내가 금융업에서 게임업으로 업종을 변경하면서, 이제는 금융업에서 일할 일은 없고 게임업에서의 커리어를 쌓는 것만 남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세상은 나를 그렇게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나는 금융 데이터와 비금융 데이터를 함께 다뤄본 사람이었다. 양쪽 사일로에 모두 속해 있는 지식의 중개인이었다. 게임업으로 변경하면서 금융업의 전통적인 분석인 평가, 오더링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나를 뽑는 것은 가치가 있다고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그 역의 과정은 미쳐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Connecting the Dot.'이라는 지겹지만 그래도 명언이라고 생각하는 말을 다시 한번 곱씹게 된다. Connect에 집중하기보다 Dot을 크고 명확하게 찍는 데 집중하면 된다. 연결은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이기 때문이다.
사일로를 만들어라.
Reference.
인천항만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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