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같은 겁쟁이들에게

by 경규승

어린 드래곤은 인간 마법사의 꾐에 넘어가 인간이 되었다. 흔들리는 환경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고 자신의 소명을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참 단순한 이야기다. 뻔한 성장소설이다. 하지만 책을 받아 든 그 날 바로 완독 했다. 행복하게 소비할 수 있는 책이었다. 어떻게 이 뻔한 스토리의 어린 드래곤에게 내 모습을 투영시켜 읽으며 공감할 수 있었을까? 성공적인 프레임으로 글을 써서? 아니면 내 인생이 그만큼 뻔해서? 무엇인지 모르겠다. 무엇이 되었건 책을 통해서 시공간을 초월한 공감을 경험했고 그때의 감화된 감정이 식기 전에 빨리 기록을 남기려 한다.




나의 두려움

나는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구체적으로 안다. 그리고 예전 그로 인해서 실패하고 도망쳤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나는 수학을 전공했음에도 수학을 잘 못한다.


수학은 장미다. 바라보길 좋아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상처 받는다.



분명히 나는 안다, 이걸 안 한다고 해서 죽는 것도 아니고 누가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니라는 걸. 다만 포식자를 만났을 때 아무것도 못하고 부들부들 떨었던 기억 DNA에 박혀 있듯 나를 옥죄고 있다. 얇은 밧줄에 묶여 자라 성인이 된 코끼리처럼, 10여 년이 지난 그 시절의 그 기억이 아직도 나를 억누르고 있다. 삶에서 무언가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오면, 수학에 상처 받은 그 시절로 돌아가는 내 모습을 바라보곤 한다. 분명 밧줄을 자르는 일은 이제 그리 힘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간혹 밧줄에 묶여 사는 인생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구역질이 난다.


몇 번 다시 도전했었다. 하지만 또 절반의 도전만 하고 현실적인 이유에 나는 또 흐지부지 마무리를 짓고 말았다. 결국 도망친 것이다. 몇 번의 반복적인 도망은 학습된 무기력을 낳았다. 새로운 영역에서도 몇 번의 고난을 경험했었고 그럴 때마다 나는 예전의 밧줄이 아직 내 발목에 묶여 있는 것을 본다. 멀리 벗어났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했다. 결국 나는 나였다. 그 시절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나의 둥지

내가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곳은 어디일까? 내가 상처 받을 때 숨어서 나를 핥고 싶은 곳은 어디일까? 어느 정도 안다. 나는 내 상처를 핥는 습관을 안다. 군것질을 하는 것, 자극적인 유튜브 영상을 보는 것, 게임을 하는 것. 현실도피 행위들이다.


달콤한 초콜릿과 아이스크림은 내게 난 상처를 잠시 잊게 만든다. 그래서 그렇게도 당에 중독되어 사는 걸지도 모르겠다. 게임으로 가상의 성취감을 얻는다. 물론 게임이 커리어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아니다. 나는 프로게이머나 게임 스트리머가 아니고 그것이 될 생각도 없다. 그리고 10시간씩 하고 싶지도 않다. 단순히 단기간의 성취라고 하는 것을 맛보기 위한 수단이다. 자극적인 유튜브는 진통제다. 잠시 아무 생각도 안 하고 그 영상을 보는 순간에 빠져들 수 있다. 뇌의 스위치를 꺼놓은 것처럼 아픔도 사라지고 나도 사라진다. 영상이 끝나면 다시 뇌의 스위치가 올라오면서 밀려오는 공허감, 그리고 지독한 패배감.


삶에 진통제는 필요하다. 고통을 무조건 받아들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작은 고통에도 매번 진통제를 찾는 습관은 더 강한 진통제만을 찾게 된다. 상처를 핥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결국 상처가 낫기 위해서는 회복이 필요하다. 매 순간 상처를 핥는다면 오히려 상처를 회복할 기회를 빼앗는다. 둥지 안에서는 내 상처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것보다는 밖에서 다른 활동을 하는 것이 회복할 시간을 버는 것이다. 나의 면역력을 믿는다. 흉터는 남더라도 상처가 거슬리지는 않는 상태로 돌아갈 것을 믿는다.




나의 증표

나답다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하는 생각이 나를 대변할 수 있을까?



생각을 바꾸면 행동이 바뀐다고 말한다. 하지만 생각을 바꾸는 것 만으로 행동한 적이 얼마나 있는가? '오늘부터 다이어트 해야지!'라고 마음을 먹었지만 저녁에 바로 치킨 시켜먹는 게 나이다.


생각은 언제나 바뀐다. 그리고 빠르게 바뀐 만큼 빠르게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래서 생각은 믿을 게 되지 못한다. 결국 나 자신은 내 마음을 유일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존재이지만, 정확하게 바라봐주지는 못한다.


나 자신을 볼 때도 내가 만들어놓은 결과물, 즉 현실에서 실천한 경험을 근거로 행동하는 것이 느린 것처럼 보이지만 빠른 방법이다. 그리고 그러한 행동들에서 나를 대변해주는 나의 증표를 찾을 수 있다. 자기 자신은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판단을 하면서 다른 사람은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판단을 하는 어리석은 이중잣대를 가지지는 않아야 될 것이다.


내가 두려움을 지속적으로 느꼈던 것은 결국 내가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 가장 큰 두려움이 아닐까. 그래서 그 두려움을 마주할 때 결국 가장 나다운 나의 에센스, 나의 증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미션

어릴 적 수학 자체를 즐기고 한 문제를 가지고 며칠을 고민하던 그때의 내 모습. 마법이 걸려 인간이 되기 전 드래곤이었던 나의 모습. 화염을 내뿜으며 대지에 위엄을 포효하는 그 시절을 이제는 거의 잊어버린 것 같다.


소설에서 주인공 어벤추린이 잘못을 저지르고 도망친 후, 스승 마리나를 마주한다. 닥쳐올 결과는 엉망일 것을 예상한다. 그래도 마주한다. 결국 결과를 마주하려면 당연하게도 결과물이 있어야 한다. 어설픈 핫 초콜릿도 만들어야 하고 타버린 타르트를 만들어낸 경험을 해야 한다. 실패는 고통스럽다. 도망치고 싶다. 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가장 나다운 순간을 마주할 수 있는 기회다. 그렇기에 두려움을 마주하고 한 고비를, 아니 여러 수많은 고비를 넘겨야 그제야 나의 미션, 나의 사명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나는 여전히 나이다.




Reference.

<초콜릿 하트 드래곤 - 스테파니 버지스>

꾸준함의 중요성 무한 반복과 행동을 하라 - 언더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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