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의 은퇴, 인간의 은퇴

by 경규승

2019년 11월 19일


프로바둑기사 이세돌이 은퇴했다.


마지막으로 알파고를 공식적으로 이긴 유일한 인간이 은퇴한다고 한다. 2016년 3월 알파고와의 3국을 두고 나서 이세돌은 "이세돌이 패배한 거지 인간이 패배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4국, 이세돌이 알파고에게 승리했고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이세돌이 승리한 것이지, 인간이 승리한 것이 아니야."라는 밈(Meme)이 떠돌았다. 그 당시에는 밈인 줄로만 생각했는데, 정말로 한 개인이 승리한 것으로 인간은 패배해 버렸다.



인공지능을 포함한 비유기체 알고리즘이 시스템에 스며들고 있다. 쿠팡에 들어가서 나는 비유기체 알고리즘의 추천을 받아 치즈를 주문했다. 운전을 하더라도 내비게이션 없이는 불안하다. 시대의 흐름에 몸을 맡기다 보니 이런 신세가 되어버렸다. 인간보다 더 뛰어난 지능이 생겨나는 지금, 넓은 의미의 종교적 관점에서 우리의 시대는 어떻게 변해왔고,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유발 하라리’라는 거장의 손길을 빌려 정리해보고자 한다.




우리는 두 가지 유형만 실재한다고 추정하는 성향이 있다. 객관적 실재와 주관적 실재이다. 객관적 실재는 이를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에게 같은 영향을 준다. 중력은 중력을 믿는 과거의 사람이건 지금 중력의 존재를 이해하는 사람이건 똑같이 작용된다. 주관적 실재는 내가 가지는 믿음과 느낌에 의존한다. 아무리 의사의 소견이 이상이 없더라고 하더라도 내가 아프다면 고통은 실재하는 것이다.


이렇듯 실재는 2가지로 나뉜다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어 사람들은 자신의 주관적 느낌이 아니라면 객관적 실재라고 결론 내리곤 한다. 하지만 상호주관적 실재도 존재한다. 상호주관적 실재는 모두가 믿는다면 나도 그것을 믿게 되는 것을 이야기한다. 국가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는 각자의 나라에 소속된 국민이며, 돈은 종이 쪼가리일 뿐이지만 우리는 일반 종이보다 돈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렇듯 상호주관적인 실재들을 창조하는 능력이 인간이 다른 종과 다를 수 있었던 이유다. 한 개채가 느끼지도 못하는 상호주관적인 실재에 너도 나도 믿기 시작하면 우리는 가치를 부여할 수 있었다.


이런 상호주관적 실재의 관점에서 종교는 무엇일까? 일단 초자연적 힘, 미신, 신에 대한 믿음은 아니다. 천둥 치는 것을 보고 신이 화내는 것이 아니라 전기라는 것을 안다. 종교를 믿는 사람이 자신이 믿는 가장 소중한 가치가 미신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역설이다. 불교는 싯다르타라는 왕자의 가르침을 행하는 것으로 신이 없어도 종교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넓은 의미의 종교는 인간의 사회 구조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하나의 관념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종교 역시도 사람이 협력하기 위한 한 가지 도구로 설명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종교를 기독교, 불교, 힌두교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이데올로기 역시 종교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근대에 들어서 과학의 발전으로 종교의 권위가 추락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좁은 의미에서의 종교의 관점에서 생각한 것이다. 과학과 종교는 추구하는 바가 달랐다. 과학은 힘을 추구하고 종교는 사회질서를 추구한다. 과학과 종교의 결합은 새로운 이데올로기, 즉 새로운 종교를 탄생시켰다. 바로 인본주의다.


인본주의란 인간 본연이 가치 있다는 사상이다. 그렇다면 인본주의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근대로 들어가며 기존에 믿고 있었던 인간의 삶에 의미를 주던 가치가 와해되기 시작했다. 역병이 들어 이웃이 죽어 가더라도 이것은 거대한 우주 시나리오에서 내가 이 시련을 이겨내면 가치가 있다고 의미를 해석했다. 힘은 없었지만 삶을 지탱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과학의 발전은 역병의 정체를 밝혔다. 우주의 섭리와 질병은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이었다. 개인이 가지고 있던 삶의 의미가 무너짐과 동시에 개인이 과학의 발전으로 힘을 얻어가며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늘어가며 자신감이 생겼다.


'그래! 인간 자체만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이 있구나! 정해진 우주의 시나리오 따윈 없어!'


그렇게 인본주의는 탄생했다.




20세기가 되어서 인본주의는 3가지 형태로 분화된다.


첫 번째, 전통적 인본주의: 자유주의. 개인은 유일무이한 존재로 개개인성을 표현할 자유의지가 중요하다.


두 번째, 사회주의적 인본주의: 사회주의. 권위가 개인에서 나올 경우 개인 간 권위의 충돌하는 태생적 모순을 안고 있기에 강력한 공동기구가 공동된 권위를 가져간다.


세 번째, 진화주의적 인본주의: 나치. 개인 간 권위가 충돌할 경우 최적자가 승리하며 착취할 권한을 가지는 것이 정당하다.


세계2차대전, 자유주의 국가는 사회주의 국가와 연합하여 진화주의적 인본주의에 승리한다. 세계2차대전 이후로 힘이 강해진 것은 사회주의 진영이었다. 중국 공산당은 중국 내전에서 승리했으며 소련의 영향력은 동유럽으로 퍼져나갔다. 하지만 핵무기가 자유주의 진영을 도왔다. 상호확실파괴(MAD: Mutual Assured Destruction) 전략을 채택함으로써 자유주의 진영이 성장할 시간을 벌어줬다. 1970년대에서 1980년대에 독재정권과 권위주의 정권들이 붕괴하고 민주주의 정부가 들어섰다. 자유주의 진영은 냉전에서 승리하였고 1991년 소련은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 자유주의는 소멸의 끝자락에서 기적같이 생존해 지금 우리의 종교가 되었다.




그렇다면 전통적 인본주의 이후에는 어떤 세계가 펼쳐질까?


한 가지 가능성은 기술 인본주의 시대다. 인본주의에서 추구하는 개인의 권위와 발전한 유전공학과 인공지능이 결합된 사회이다. 이 시대는 호모 데우스(훨씬 우수한 인간 모델)의 시대가 될 것이다. 호모 데우스는 인간의 본질적 특징은 유지하지만 유전공학과 비유기적 알고리즘으로 육체적, 정신적으로 향상된 능력을 갖춘 인간이다.


이 시대에 인간이 자리를 지키기 위해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인 마음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마음의 스펙트럼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자동화되어 빠르고 정확한 결정을 내리는 시스템에서 인간은 마음의 기능을 발달시킬 시간이 없다. 언제나 나보다 좋은 판단을 내려주는 알고리즘이 있어서 우리는 의심하고 모순 속에서 살아가는 마음의 능력을 키울 환경을 잃어간다. 인본주의의 근원인 개인의 의지와 경험이 중요하다는 가치와 발전하는 비의식적 지능은 충돌한다. 이렇게 인본주의는 힘을 잃을 것으로 보인다.




개인의 욕망과 경험이 의미가 권위를 잃어간다면 우리의 의미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바로 정보이다.


연결된 상태로 많은 정보를 생산하고 소비함으로써 데이터 흐름을 극대화하는 것을 첫 번째 교리로 삼는 종교를 데이터교라고 부른다. 어서 빨리 정보를 기록하고 업로드하고 공유하라고 한다. 데이터교는 인간의 지식과 지혜를 믿지 않고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을 더 신뢰한다는 믿음을 전파한다. 이제 인간은 막대한 데이터의 흐름을 감당할 수 없다. 과거의 노벨상은 개인 혼자만의 노력만으로도 탈 수 있었는데 최근 대부분의 노벨상은 팀 단위에서 나온 성과이다. 정보를 활용하는 직업인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들도 혼자 일을 하지 않는다. 그들 역시 팀 단위로 성과를 낸다. 혼자 데이터를 처리하는 것이 힘든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데이터 처리의 관점에서 자유주의는 데이터를 나누어서 처리하는 분산 시스템이며, 공산주의는 중앙 처리 시스템이다. 과거에는 데이터 처리를 중앙에서 하기에 원하는 정보의 양이 부족했다. 그렇기에 분산된 시장에 맡긴 자본주의가 성공했다. 증권거래소는 대표적인 효율적 데이터 처리 시스템이다. 시장 참여자는 A시장에서 구리 가격이 올라가면 B시장에서 구리를 사서 가격이 올라간 A시장에 판다. 가격이라는 데이터를 보정한다. 다시 말해 정보는 수백만명의 시장 참여자들에게 공유되고 자유롭게 흐르고 시장 참여자들은 데이터를 자발적으로 수정한다. 즉 개인은 시스템 안의 단일한 데이터 처리 프로세서로 행동한다.


유기적 알고리즘인 인간의 발전에는 한계가 있다. 데이터의 홍수를 감당할 수 없게 된 인간은, 인간보다 인간을 더 잘 이해하는 알고리즘에게 우리의 선택의 권한을 양도하게 된다. 너무 많은 데이터로 인해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모르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다양성을 추구하는 시대의 흐름에서 어떤 것을 무시하고 다양성을 포기하는 것이 힘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는 이미 알고리즘이라는 새로운 신의 권위를 느끼고 있다. 크리에이터들은 유튜브 신의 검열을 통과해 노란 딱지가 붙지 않기를 기도하고, 에어비엔비 호스트들은 자신의 집이 검색 상단에 노출되기를 기도한다. 우리가 제공한 데이터 덕분에 우리의 알고리즘 신은 더욱 발전할 수 있게 되었고 권위를 얻어 우리의 삶에 스며들었다.


인간이 더욱 많은 데이터를 제공하면 비유기적 알고리즘은 더 많은 데이터를 흡수하고 더 나은 알고리즘으로 발전한다. 자유롭게 연결된 많은 데이터는 개별 프로세서에 의해 세상을 기존보다 빠르게 성장할 것이다. 이미 우리는 데이터의 흐름에 일부가 되어있다. 매일 카카오톡으로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여행지에 가서 맛있게 먹은 음식 사진을 인스타그램으로 공유한다. 맛이 어땠는지 구글맵에 식당 평가도 남긴다. 어느 누구도 시키지 않았다. 자발적으로 데이터를 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생활을 편하게 해 준다는 명목 아래 우리는 점점 인간의 권위를 양도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Reference.

이세돌 “인공지능 더는 이길 수 없어 바둑 관둔다” 프로기사 은퇴 선언

"이세돌이 진 거지, 인간이 진 건 아냐" / YTN

호모 데우스 - 유발 하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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