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달콤한 착각
끝날 것 같은 프로젝트가 끝이 나지 않는다. 예상했던 기간보다 길어지게 된 업무로 사기가 떨어졌다. 좋아하지 않는 일이라도, 할 것은 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 말을 동료들에게 자주 했었다.
"생각과 행동은 분리할 수 있어요."
그러면 동료들은 웃는다. 왜냐면 내가 이 행동이 잘 안 되는 사람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안다. 그래서 이 말은 동료들에게 하는 말이라기보다는 내가 스스로 다짐하는 말이었다.
난 생각과 행동을 분리하기보다는 일치시키려 노력했다. 그래서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학생 때부터 부단히 노력했다. 그리고 직장인이 되고 나서도 업무를 조정하기도 하고, 이직을 하기도 하고, 업종을 바꾸기도 했다. 그 결과 취미가 일이 되는 덕업일치가 되는 기간도 있었다. 진심으로 행복했다. 그때의 난 그렇게 말했다, 구글에서 오라고 해도 안 간다고, 이 세상 어느 곳에 가도 지금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곳은 없다고. 하지만 생각보다 그 기간은 길지 않았다. 행복했던 환경은 금방 바뀌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며 나 자신의 기호도 바뀌었다. 예전 같았으면 너무도 행복하게 했을 것 같은 일도 딱히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되었는데, 만족스럽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게도 일을 즐기기 위해 노력했는데, 내가 좋아하는 것이 좋아하지 않게 되어버리다니! 꿈꾸던 순간은 부서져 버렸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전에는 주어진 환경을 바꾸려는데 노력을 했었다. 내가 풀고 싶은 문제를 최대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찾아갔다. 물론 이건 아직도 내게 중요하다. 하지만 내가 풀고 싶은 문제가 바뀌어 버리는 경험을 한 것이다. 환경을 바꾸어 봤자 내가 바뀌면 아무 소용이 없었다.
내 기호는 왜 바뀌는 것일까?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다. 내가 정말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의 말에 휘둘려서 다른 사람의 가치관이 내 머릿속에 들어가 그것을 좋다고 믿기로 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단순한 답은 이제는 지겨웠다. 그래서 저 질문 안에 무언가 내가 깨닫지 못한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질문에는 '내가 내 기호를 알 수 있다.'는 전제가 들어 있었다. 전제는 사실일까?
난 머릿속으로만 생각을 확장하는 방법에 능숙하지 못하다. 지금은 이를 알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글로서 생각을 정리하고 대화를 통해서 생각을 발전시키는 방법을 활용한다. 돌이켜 보자면 글과 말로 생각하는 방식을 선호해서 학생 때도 상담받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다. 상담 센터에의 마지막 상담 즈음에 난 너무도 큰 깨달음을 얻고 눈물을 쏟으며 집에 돌아왔던 기억이 난다.
'내가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알겠다.'
아는 것이 저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깨달음이었다. 그렇게 공부를 한다고 했건만, 나 자신을 알기 위해 노력했건만 아는 것이 하나 없었다. 노력이 물거품으로 느껴졌다.
그래, 실은 나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 아는 것보다는 믿는 것이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한다는 것도 믿음에 가까웠다. 그러니까 그 믿음이 흔들리면 기호도 흔들려 버리는 것이었다. 왜냐면 어느 것 하나 '안다'라고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재밌는 것은 이 모순을 가지고도 잘 살아갈 수 있었다. 그래서 ‘안다’라고 하는 수준을 조금 낮춰보기도 했다. 그래서 ‘안다’는 것은 ‘내가 남에게 설명 가능하다’라는 것과 동치로 두었다. 찜찜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고민하지 않고 살 수는 있었다.
여전히 무언가를 안다는 것을 판단하는 것은 나의 수준에서는 아직 힘들었다. 내가 왈가왈부할 영역이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믿는 것을 선택하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분명 내가 믿기로 선택한다면 믿음이 지속되는 동안은 아는 것처럼 살 수 있었다. 그러면 이제 지속되는 기간을 내가 선택할 수 있는가 하는 부분이 문제였다. 지속하는 기간은, 내가 어떤 일을 얼마나 오래 지속할 의지가 있는지 현재 순간에서 판단해 보는 것과 밀접하게 관계가 있었다.
그렇게 내린 결론은 내가 이 일을 얼마나 좋아하는가 판단하는 것은 내가 그 일을 오랫동안 지속할 것으로 보이는가로 대체하기로 했다. 결국 나의 "그 일의 좋아함"의 정도는 "그 일을 지속할 의지"의 정도였다. 참 단순한 결론이지만 수년간의 경험으로 얻어낸 결론으로 내 인생과 함께할 값진 결론이다.
그래서 어떤 일을 할 것인지 판단을 할 때,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는 의지가 있는 것인지 확인을 해보면 된다. 매우 간단하다.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로 일을 바라보게 되어 나는 자유로워졌다.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내가 지속 가능할 의지가 있는지만 스스로 확인해보면 되었다. 그러면 생각보다 일의 시작은 쉬웠다. 그 의지를 확인하고 나면 그냥 계속하면 되었다. 왜냐하면 생각과 행동은 분리할 수 있다고 믿기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는 행동을 시작하는 기술을 익힐 수 있었다.
Refer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