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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안 룰렛에서 살아나다

by 경규승

올해가 마무리되고 있다.


올해의 목표 중 하나가 나심 탈레브 <인세르토(불확실성)> 시리즈를 모두 읽는 것이었다. 3-4월에 <블랙스완>을 읽기 시작했고 5월에 <행운에 속지 마라>를 읽었다. 그리고 10월에 <안티프래질>을 읽기 시작했고 12월이 되어서야 다 읽을 수 있었다.


<블랙 스완>에서는 블랙스완 현상이 발생할 수 있는 환경에 대해서 구분하는 방법에 대해 배웠다. 여기서 블랙 스완 현상이란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희귀 현상이 실제로 일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한 예로 2001년 911 테러가 있다.


<행운에 속지 마라>에서는 삶에서 일어난 결과들이 인과관계에 의해서 설명되기 힘들다는 것을 배웠다. 계산 가능한 확률이 아닌 운으로 설명되는 결과가 즐비하고, 결과를 의도했다고 착각해서는 안되었다.


<안티프래질>에서는 안티프래질한 행동을 지속하라는 것을 배웠다. 안티프래질이란 프래질의 반대말이다. 프래질은 충격을 가하면 부서진다는 의미이다. 안티프래질은 충격을 강하면 부서 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기존 상태보다 강화된다. 충격으로부터 혜택을 보는 것이다. 생존을 하기 위해서는 안티프래질한 상황에 노출되고 프래질한 상황에 노출을 줄이는 방향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프래질의 대명사는 유리가 있다. 유리는 특정 수준 이상의 충격을 받으면 깨어지고 비가역적인 반응이다. 즉 충격을 받고 나면 다시 원래 형태로 돌아갈 수 없다. 안티프래질의 대명사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히드라"다. 히드라는 아홉 개의 목을 가진 파충류형 괴물이다. 히드라의 목을 하나를 치면 새로운 목이 2개 더 생겨난다. 목을 치는 충격을 받을수록 히드라는 더욱 강해진다.




생활에서 프래질한 행동과 안티프래질한 행동은 무엇일까? 최근에 있었던 나의 구체적인 사례를 공유하고자 한다.




프래질


작년부터 공유 킥보드 서비스가 늘어나는 것이 눈에 띄었다. 처음에는 새로운 서비스를 이용해 보고 싶어서 등록하고 가볍게 이동을 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등록한 서비스는 생활 속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습관처럼 애매한 거리를 이동해야 할 경우 이 서비스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전기 킥보드의 위험성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조심히 운전하면 될 거야, 이번만 운전하고 다음부터는 이용 안 할 거야'라고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이용을 멈추지 않았다.


12월 13일, 올해 첫눈이 내렸다. 약속 시간까지 도착하려면 시간이 간당간당할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빨리 지하철 역까지 가기 위해, 아주 자연스럽게 집 앞에 킥보드 QR코드를 찍었다. 그리고 눈을 뚫고 지하철 역으로 달려가다가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촉박하다', '눈이 내린다', '전기 킥보드를 탄다'라는 3가지 조건이 동시에 만족하는 상태라는 것을 인지했다. 위기는 발생하기 위한 조건 사이의 상관관계가 평소보다 높아진다.


등골이 오싹했다.


프래질한 행동이었다. 나는 매번 러시안 룰렛을 돌리고 있었던 것이다. 러시안 룰렛은 리볼버의 6개의 약실 중 하나에만 총알을 넣고 참가자들이 각각 머리에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는 게임이다. 내 총은 약실이 매우 많았고 하나의 총알이 들어가 있었다. 나 스스로에게 방아쇠를 당기고 있었다. 총알이 발사되지 않으면 나는 아주 약간의 보상(시간 절약)을 얻고 있었다. 게임을 계속하면 결과는 뻔하다. 내 신체에 비가역적인 반응이 일어나는 것이다. 생활 속의 시간 최적화라는 명목으로 내 생명을 갉아먹고 있었다. 지금까지 운 좋게 생존했던 것일 뿐이었다.




안티프래질(+ 생목 오류)


대학생 때 재테크 동아리에서 활동했고, 직업도 금융업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투자에 대해 그리 적극적이지 않았다. 장기투자를 선호하고 내가 알지 못하는 투자 자산에는 손대지 않았다. 그래서 코인 광풍이 불었을 때도 가상화폐에 손대지 않았다. 그 이유는 내가 알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가 투자로 돈을 버는 것과 해당 투자상품에 대해 아는 것은 상관이 없을 수 있다. 생목(건조하기 전 갓 베어낸 목재) 트레이더는 목재의 구체적인 생김새를 알지 못하더라도 성공적으로 투자할 수 있다. 이처럼 해당 지식에 대해 아는 것이 자신의 행동 결과와 상관없음에도 꼭 필요한 지식이라고 잘못 이해하는 상황을 '생목 오류'라고 한다. 스포츠 베팅 트레이딩 부서에는 스포츠 팬은 소수다. 경주마 역시도 최선을 다해 달릴 줄은 알지 경마 배팅을 잘하지는 못할 것이다.


투자 상품의 미래에 대해서는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그걸 아는 것과 투자 수익률 간에 관계가 얼마나 있을까? 투자 전 합리화를 위한 수단일 수 있었다.


안티프래질하게 투자하기 위해서는 긴 시간에 대해서 생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손실에 대한 하방은 닫혀있고 수익에 대한 상방은 열려있어야 한다. 그럼 옵션 매수가 아니더라도 나 스스로 그런 형태의 상품을 만들면 되었다.


투자가 아닌 소비로 자산을 사면 된다. 소비이기 때문에 10만 원짜리 주식을 사게 되면 내 계정에서는 -10만 원이 된다. 언제나 100% 손실을 반영하고 시작하는 것이다. 이것이 개인적으로 소비로 가능한 이유 중에 하나는 스스로 특정 상품 사는 데 대한 효용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가끔씩 스트레스 해소 방법 중 하나로 돈을 쓰고 싶을 때가 있는데 그때 자산을 구입하면 된다.


그리고 최악의 상황에 대한 생존 전략으로 시스템 붕괴에 베팅을 하는 것이 안티프래질 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이번에 생목 오류에 빠져있었던 상태에서 벗어나게 되어, 스트레스를 받을 때 가상화폐를 '소비'할 수 있었다.




두 가지 사례와 같이 생활 속에서 나의 행동을 프래질과 안티프래질로 나누는 생각 습관을 기르고 있다. 프래질과 안티프래질을 구분하기 전에도, 스스로 나쁘다고 생각했던 행동들이 안티프래질 하다고 판단되었다. 안티프래질 개념을 설명하지는 못하더라도, 생존을 위해 체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 역시 생목 오류에 빠져선 안된다. 안티프래질이 무엇인지 안다고 해서 안티프래질 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안티프래질이 무엇인지 아는 것보다 중요한 건, 안티프래질이 무엇인지 모르더라도 안티프래질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


2020년 스스로와의 대화를 통해서 내 욕구의 근원에 대해 탐색했다. 나는 똑똑하다는 것에 대한 욕구가 굉장히 강하다. 하지만 안티프래질을 소화하는 과정에서 똑똑한 것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개인적인 욕구가 변경되고 있음을 느꼈다. 똑똑하지 않더라도 나는 생각보다 실행을 통해서 그 이상의 것을 얻을 수 있었다. 나의 2021년은 똑똑하고 프래질 하기보다는, 차라리 어리석더라도 안티프래질 하기를 원한다.


Stay hungry. Stay foolish. Stay antifragile.




Reference.

<안티프래질 -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블랙스완 -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행운에 속지 마라 -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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