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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규승 Dec 31. 2020

불확실한 2021년

2020년 습득한 생존 지혜

인류가 불확실성을 온전히 느낀 2020년이었다. 다양한 세대를 겪으며 전염병을 버텨내었던 인류였지만 이번만큼은 특별했다. 과거와 달리 세계화로 모두가 연결된 공간에 있어 질병을 단절할 수 없었다.


위기는 언제나 특별하게 다가온다.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과거에는 그런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과거에 비슷한 적은 있었지만 이번에는 무언가 조금 변형된 형태로 찾아와서 예측을 하고 대비할 수 없게 느껴진다. 그런 과거가 지나고 나면 해결책이 매우 쉬워 보인다. 이번 팬데믹도 빠르게 국경 봉쇄를 했으면 어떨까 생각하지만, 이미 지나가 버린 일이며 다른 선택의 결과와 대가는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다.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다 보면 상상하지 못한 위험이 어느 순간 삶에 스며들어 있다. 작은 위험일 수도 있고 생존이 오가는 위기일 수도 있다. 삶은 언제나 불확실하다. 특히 2020년 올해는 피부로 더욱 와 닿았던 한해인 것 같다.


나심 탈레브의 <인세르토(불확실성)> 시리즈를 모두 읽는 것이 2020년의 독서 목표였다. 올해의 마지막 책으로 시리즈 중 마지막 책인 <스킨 인 더 게임>을 읽고, 이 글을 올해의 마지막 날에 작성할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다. 다섯 권의 책과 함께하며 불확실한 2020년을 살아가며 느꼈던 주제를 간략하게 정리해 보고자 한다.




린디 효과


오래 살아남은 것이 더 오래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 책, 사상, 종교, 사회 시스템 같은 예시가 있다. 불멸의 삶을 사는 존재의 수명을 예상할 때는 얼마나 오래 살아남았는지를 확인해보라. 오래도록 살아남은 시스템은 그만큼 오래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합리적인 행동이란 생존한 행동이다. 할머니가 알려준 삶의 지혜가 전문가가 작성한 논문보다 더 뛰어난 생존 방법일 수 있다. 인류의 오래된 지혜에는 나름의 이유가 존재한다. 어떤 것이 원인이 되는지 알기 힘든 복잡계에서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단, 합리적인 행동 덕목이 적용되는 생존의 범위가 개인 단위인지, 집단의 단위인지는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개인 수준에서 비이성적이라 할 만한 행동이라고 하더라도 집단 수준에서는 이성적일 수 있다.




황금률 vs. 은율

황금률: 당신이 다른 이들에게 기대하는 그대로의 행동을 하라

은율: 당신이 싫어하는 다른 이들의 행동을 다른 이들에게 하지 마라.


진리를 추구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진리라는 환상에 대한 집착을 떨쳐낼 수 있었다. 황금률보다는 은율을, 증명보다는 반례를, 보편적 논리보다는 내 상황에 맞는 실천이 더욱 중요했다.




대체 역사

실적은 결과만으로 이야기해서는 안된다.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일어난 결과와 일어나지 않은 결과를 모두 고려할 수 있어야 했다. 행동을 할 때, 잘 되고 못 되는 확률만으로 배팅을 해서는 안되고, 각 결과에 대한 기댓값과, 행동을 하는데 소요되는 자본 투자가 지속 가능한지 판단해야 했다. 자산이 백만 불인 치과의사와 로또에 당첨된 차상위계층의 재현 가능성을 비교해보면 된다.




블랙 스완

내가 행동하려고 하는 공간과 환경이 어떤 특징을 가졌는지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평범의 왕국인지, 극단의 왕국인지, 그리고 결괏값이 단순한지 복잡한지 나눈다. 각 결과에 따르는 4 사분면 중 어디에 속하는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극단의 왕국에서 복잡한 결괏값이 나오는 4 사분면에 해당할 경우 블랙스완을 주의한다. 복잡계의 예측은 언제나 데이터 부족으로, 누적된 데이터로 모형을 만드는 순간 해당 모형은 평범의 왕국에서의 복잡한 결괏값을 나타내는 2 사분면에 위치함에 유의하자. 데이터를 다루는 직업인으로 직업윤리를 지키자.




대리인 문제

누군가에게 먼저 조언하는 것은 잘못된 행동을 넘어서서 책임감 없는 행동이다. 말은 행동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책임을 지지 못하는 말이라면 해서는 안된다.


역사 속 영웅들은 사회 변두리에서 말만 하던 이론가가 아니라 시스템의 위기를 스스로 책임지고 행동하는 사람들이었다. 주장하는 사람의 논리 퀄리티보다, 주장하는 사람이 얼마나 해당 행동에 책임을 지고 있는지가 더 설득력 있다.



프로 이스포츠 구단 전략 컨설팅을 했을 때, 왜 컨설팅에 따르지 않는 것인지 의아했다. 분명 확률적으로 더 좋은 방법이 존재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는 프로 구단이 내 전략을 채택했을 때 잃을 것이 없었지만, 프로 구단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잃을 것이 없는 상태로 혜택을 가져가려 하는 대리인이었다. 내 전략을 채택했을 경우, 나는 승리를 하면 (약간은) 내 덕, 패배하면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네'정도로 행동했을 것이다. 판에 손을 담그지 않은 제삼자(컨설팅 주체인 나)가 이래라저래라 하는 말을, 판에서 일어나는 고통을 온전히 겪는 당사자(프로 구단)가 들을 이유가 없다. 만약 내가 프로 구단의 승리에 배팅했다면 내 행동이 배팅하지 않았을 때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컨설팅 문제를 확장해보면 지금의 직장인인 나 역시도 대리인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개인은 회사가 마음에 들면 들수록 대리인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 회사가 마음에 들수록 나는 회사의 입맛에 맞도록 평판이나 인기에 연연하도록 행동할 가능성이 높다. 개인적인 효용을 위해 회사를 이용할 수 있다. 회사라는 시스템의 생존을 목적하는 것이 아닌 개인의 생존을 목적하게 된다.


회사는 회사의 생존에 유리하도록 개인의 희생을 스스로 선택하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회사는 구성원이 스스로 다음과 같은 고민을 하게 만들게 한다. 나는 회사를 위해 단순히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 희생을 하고 있는가? 회사와 나는 서로 무엇을 희생하며 시스템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는가? 이런 고민을 집단에 속한 개인이 자발적으로 하는 환경을 지향할 수 있다. 집단을 위해 희생한 개인을 영웅이라 부르기도 한다. 표창을 하기도 하고, 집단 내에서 행사할 수 있는 권위를 주기도 한다.


회사를 생각해 보았을 때와는 달리 개인의 직업인 관점에서 고민해 볼 부분이 상충한다. 언제나 잘릴 수 있다는 생각으로 행동하던 나와 지금의 개목걸이가 마음에 들어 보이는 내 모습은 분명 다르다. 개목걸이가 꽤나 마음에 들어 보여서 안전하다고 착각하는 것일 수 있다. 회사가 망해도 나는 망하지 않는다. 여기서 다시 대리인 문제가 발생한다.


시스템을 위해 희생하는 개인을 영웅이라 할 수 있지만, 여전히 개인의 생존을 우선하게 된다. 스스로 집단이 생존할 수 있도록 희생하는 영웅이 되고 싶기도 하지만, 나 개인이 생존 가능한 환경을 먼저 찾기 위해 행동한다. 생각과 행동 중에서는 무엇이 내 진심에 가까운지는 자명하다. 그리고 이런 불편한 괴리 속에서 만족할만한 지점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위에서 열거한 주제 외에도 불확실성을 포용할 수 있는 여러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블랙스완>이나 <안티프래질>이 두껍고 내용이 어렵다면 <행운에 속지 마라>를 먼저 읽고 다음 시리즈를 읽을지 판단하면 될 것 같다. 다섯 책 중에 비교적 읽기 수월한 수필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책을 시리즈로 읽은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작년에는 유발 하라리 인류 3부작을 읽었고 올해는 나심 탈레브 <인세르토(불확실성)> 시리즈를 읽었다. 같은 저자의 책을 읽다 보면 저자의 견해를 유사한 주제로 다양한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주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한 책을 읽고 열 가지 행동을 하겠지만, 나로서는 한 책을 읽고 하나의 행동을 하기도 버겁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같은 주제를 뇌에 입력하는 작업이 삶을 변화시키는 데 필요하다. 한편, 같은 이야기를 계속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들기도 하지만 최적화보다는 누적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기에 시리즈를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생존했다.


2020년 한 해도 원하는 바를 달성할 수 있었던 환경에 감사한다. 어느 것 하나 이유 없이 만들어지는 것이 없기에, 스스로 누리는 혜택에 감사한다.


2021년에는 감히 예측하려 하지 않고 불확실성을 수용할 수 있는 행동들을 누적하려 한다. 그리고 그 기록들을 내년에도 남기고자 한다.


내년에도 생존한다.




Reference.

<행운에 속지 마라 -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블랙스완 -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블랙스완과 함께 가라 -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안티프래질 -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스킨 인 더 게임 -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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