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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규승 Jul 30. 2022

기계인간의 감정 여행

나의 인생 과업 중 하나는 스스로를 알아가는 것이다.


누군가는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나 자신이 마치 양파껍질 같은 사람이라고 느꼈던 적이 있다. 다른 사람을 대할 때, 내 모습이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이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면 나만의 색깔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어서 그들이 원하는 가면을 쓰고 자연스럽게 움직였던 것 같다. 사회적인 가면. 이것은 비단 회사나 학교에서 뿐만이 아니라 가까운 친구와 가족 사이에서도 일어나는 것 같았다.


예전에 친구 커플과 함께 데이트를 했던 적이 있었다. 친구는 나를 보고 불편해 보인다고 했다. 나는 그 당시 그런 행동이 불편하다고 생각이 들지 않았었다. 그냥 나는 상대에 맞춰서 내 행동을 맞춰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상황과 상대에 맞춰서 내 모습을 변화할 수 있는 것이 내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상황에 맞춰서 페르소나를 다르게 쓰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친구는 나에게 조언을 해줬다. 자신에게 대하는 것처럼 상대를 대할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친구에게 너에게도 나는 페르소나를 쓰고 있다고 말했었다. 그리고 그것이 당연한 삶의 방식이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친구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것이 과연 내가 원하는 삶인지 계속 친구의 말을 곱씹었다.


그 당시에는 불편하다는 감정 자체를 스스로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정확하게는 느끼지 못했다기보다 무시했었다. 워낙 오래도록 무시해오다 보니 불편하다는 감정에 무뎌진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불편함을 무시한 대가로 감정이 다른 곳에서 터져 나오는 듯했다. 스스로 욕구가 충족되지 못하면 단 것을 찾고, 불편한 감정을 리셋하려 잠에 빠져 사는 행동을 통해 단편적으로 해결했었다. 그런 삶을 지속하고 싶지는 않았다. 불편하더라도 다시 감정을 느끼고 싶어서 책을 찾아봤다. 그리고 <힘들어도 사람에게 너무 기대지 마세요 - 정우열> 책이 도움이 되었다. 책은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많은 질문거리를 던져주었다.




스스로를 살펴봤다, 내가 정말로 이런 삶을 원한 것인지.


나의 페르소나에 잡아먹히려고 한 적이 많았다. 강박적으로 기록을 하면서 기록을 못하면 불안한 경험도 했었고, 식습관을 개선하고 싶어서 몸에 안 좋은 과자를 입에 담고 있다가 삼키지 않고 뱉기도 했다. 의지력이 대단하다고 스스로를 칭찬했었지만 안타깝게도 큰 의지력을 작은 효용이 있는 곳에 낭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효율적이지 못했다.


내가 원하는 목소리가 무엇인지 찾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잘 들리지 않았다. 한편 이것이 내 목소리가 맞는지도 자신이 없었다. 무언가 사회에서 주입한 관념들과 내 안의 목소리가 섞여 들렸다. 내 안에서 나는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같은 많은 제약을 나에게 이야기하였다. 마치 내 머리 위에 유리천장이 있어서 더 높이 뛰지 못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상황이 잘 풀려가도 신기루를 쫒는 것 같았은 경험이 있었다. 무언가 목표를 이룬다고 해도 다시 이뤄야 할 목표가 앞에 있고, 그러다 보니 내가 잘했던 것보다는 부족한 것만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이 신기루 같은 목표의 정체를 어렴풋 알 것 같았다. 사회적으로 주입되어 생긴 나의 관념이었던 것 같다. 사회에서 원하는 형태로 나는 나도 모르게 디자인되었다. 무언가 참고 행동한다는 것에서 보상을 얻었던 시스템을 나 스스로 키웠던 것 같다.




나는 세상을 외적인 나, 내적인 나로 나누고 있었다. 이렇게 한번 인식하고 난 후로 내 행동과 그에 따른 사건을 두 가지 프레임으로 나누어 설명하며 한동안 지냈다. 내 인식체계에서 내가 어떻게 세상을 받아들이는지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감정이라는 세상의 나와 내면의 나의 연결고리를 찾았다. 그 덕에 나를 이해하는 깊이가 깊어지고 있다.


다양한 경험을 했던 것도 유효했다. 나의 욕구를 충족하는 과정에서 상대의 욕구를 함께 채워주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1을 줘도 상대는 100으로 느끼는 관계가 존재했다. 내가 상대에게 맞춰서 최선을 다해서 노력을 하지 않아도 괜찮은 것이었다. 그냥 나 편한 대로 하다 보니 내가 잘하는 것을 상대에게 더 자연스럽게 주게 되었던 것 같다.


자연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나도 편하고 상대도 편했다. 내가 편한 대로 해도 괜찮았다. 그래도 꽤 괜찮은 오퍼레이팅 시스템을 가지고 있어서, 뭘 하더라도 좋은 방향으로 살아갈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기로 다짐했다.




이 책에서는 사람에게 기대지 말라고 한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사람에게 기대려고 한다. 내가 가장 기뻐하는 순간은 나로 인해서 당신이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나로 인해 자신의 삶이 바뀌고 개선되었다고 이야기를 들을 때가 가장 기쁘다. 내가 원하는 인생은 내가 누군가의 버팀목이 될 수 있는 인생이었다. 내가 기대본 적이 있어야 나도 누군가에게 버팀목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독립적으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독립적이기 위해서는 독립적이지 않은 것을 겪어봐야 하는 것 같았다.


세상의 모순을 조금씩 겪어보며 내 세계를 디자인하고 있다.


요즘 사는 게 자연스럽다.




Reference.

<힘들어도 사람에게 너무 기대지 마세요 - 정우열>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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