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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규승 May 22. 2023

5월, 제주도 바다에 뛰어들기 좋은 날

내 안의 아이에게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것에 서툴렀다. 그러다 보니 나 스스로가 기계 같은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을 때도 있었다. 나는 스스로 감정을 느낀다고 생각지만, 뭔가 막힌 부분이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감정을 어떻게 하면 풍부하게 느낄 수 있을지 오랜 시간 고민했었다.


내가 감정적인 단어를 사용할 때를 확인해 보았다. 그리고 감정이 가장 치솟는 순간이 언제일까를 고민해 보았고, 그것은 바로 욕할 때였다. 내가 가장 수치스럽게 느끼는 욕은 “애새끼처럼 굴지 마라”였다. 반면 어릴 때 자주 들었던 칭찬은 “점잖다. 참을성이 좋다. 의젓하다”였다. 나는 아이 같은 태도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왜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보이질 못하는 걸까? 내 안에 아이와 소년의 모습이 분명 있을 건데 나는 왜 이것을 회피하는 걸까? 이런 의문들이 들어서 내 안의 아이의 모습에 대해 검색해 보았고 아이 자아라는 키워드를 발견했다. 이는 교류분석에서 나온 단어임을 알게 되었다.




교류분석에서 자아의 종류를 5가지로 나눈다.


첫 번째. 통제적 부모 자아

통제적 부모 자아는 스스로가 생존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래서 자신이 올바른 길을 가도록 도움을 준다. 그러다 보니 ‘해야 한다(should)’를 많이 사용한다. 90점을 받았으면 90점이 아닌 10점에 집중한다. 자신의 가치관과 사고방식이 옳다고 생각하고 믿기 때문에 잘못된 점을 고쳐주려고 한다. 지적하고 싶어 하고 잔소리하게 된다. 스스로를 검열하기도 한다.


두 번째. 양육적 부모 자아

양육적 부모 자아는 나의 입장을 이해해 주고 자신을 격려한다. 나를 지지하고 이해해 주고 사랑한다. 잘했고 최고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과하게 되면 스스로 잘난 체하게 되고, 규칙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관대하게 된다. 또한 독립성을 키우게 되지 못하고 도전하지 못한다.


세 번째. 자유로운 아이 자아

자유로운 아이 자아는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감정표현이 풍부하고 본능적이다. 하지만 구속받는 것을 싫어하여 공동체에 기여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으며 자기중심적일 수 있다. 충동성도 높으며 계획보다는 즉흥성이 높다.


네 번째. 순응하는 아이 자아

순응하는 아이 자아는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며 살아간다. 자신의 감정을 내세우는 것보다는 타인의 감정을 우선시한다. 성실하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아 안정적으로 보인다. 반면 스스로의 선택에 대한 확신이 부족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남의 눈치를 살피게 되고 자신의 본능을 억압하는 경향이 있다.


다섯 번째. 어른 자아

어른 자아는 사실에 근거해서 상황을 판단한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객관적인 정보에 근거해서 자신의 행동을 결정한다. 감정에 지배되기보다는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다 보니 타인에게 차가워 보이기도 하며 로봇처럼 보기도 한다.




다섯 가지 자아는 모두 다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예전에는 무언가 하나가 뾰족한 특징이 있기를 바랬다. 그것이 자신의 장점을 가지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한 사람의 도구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협소한 관점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환원주의에 노출되어 있어 사람을 구분 지어 설명할 수 있다고 보지만, 실제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의 인간들은 그러하지 않다. 누구나 개인의 특질을 가지고 있고 유일성을 가지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희소한 사람은 장점도 단점도 없는 사람이다. 모두가 평균에 목매여 있지만, 실재로는 평균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평균인간을 만들면 아마 인간에서 한참 벗어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누구나 장점을 가지고 있다. 장점이 없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삶에 스트레스가 존재한다면 위 다섯 가지 자아 중에서 어느 부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생각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어느 자아가 약해서 스트레스를 받는 다면 해당 자아로 사고할 수 있도록 노력하면 된다. 어느 자아가 강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강한 자아를 억누르는 것 대신에 반대 자아를 강화할 수 있도록 노력하면 된다.




나의 경우에는 순응하는 아이 자아가 강해서 자유로운 아이 자아로 살아가기 위해 의식적으로 행동한다. 감정 표현을 직접적으로 하기 위해서 노력하려고 하며, 즉흥적으로 본능에 따라 선택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이번 제주도 여행은 무계획으로 떠났다.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근처에 황우지선녀탕이라는 명소가 있어서 무작정 가봤다.


인생 바다를 만났다.


5월이라 아직 물은 차가웠지만 도저히 들어가지 않고서는 버틸 수가 없었다. 안 들어가면 무조건 후회할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뛰어들었다. 


자유로웠다.


예전에는 특히 강한 자아를 억누르려고 노력했었다. 하지만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면 코끼리가 항상 머릿속에 떠오르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의 강점을 억누를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모두 다섯 자아를 고루 가지고 있다. 다만 조금 익숙한 자아들이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기존에 나의 성장과정에서 얻은 강화된 자아들을 억누르려고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보다는, 그 에너지를 소외된 자아들에게 전달하는 것으로 균형을 찾을 수 있다. 




두루두루 다양한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어 함께 살아가는 유기체가 되는 것이 인간의 생존 방정식이었다. 누군가 특출 난 장점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만한 단점도 있게 마련이다. 사람은 완벽할 수 없다. 빛이 밝으면 그림자도 짙은 법이다. 빛은 그림자를 부러워하고 그림자는 빛을 닮고 싶어 한다. 빛은 그림자가 되려고 노력하면 자신의 밝음을 잃어버리고, 그림자가 빛이 되고 싶어 하면 자신의 어둠을 잃어버리게 된다. 원하는 것을 직접적으로 그리다 보면 정작 자신을 잃어버릴 수 있다.


그래도 방법이 있다. 나를 둘러싼 환경이 되면 된다. 지구가 되면 빛과 어둠을 동시에 아우를 수 있다. 그렇기에 나의 한 가지의 이상적인 자아상을 넘어서서 다양한 자아가 내 안에 있음을 인식하면 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원하는 상황에서 다섯 자아를 자유롭게 개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지금까지 억눌러와서 미안했던 내 안의 자랑스러운 아이에게 이 글을 바친다.




Reference.

<에릭 번의 감정수업 - 김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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