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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규승 Jul 30. 2023

고통이 뭔지 모르며 살아왔다

The Obstacle Is the Way

감정을 잘 느끼는 편이라고 생각했었다. 분명 잘 웃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즐겁게 생활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삶에 무언가 빠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공허했다.


나는 힘들다는 것에 대해서 말을 하는 것이 어려웠다. 고통스럽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못했다. 안 한 게 아니다, 못했다.





나는 왜 고통스럽다는 이야기를 하지 못했을까?


어린 나이에 몇 번의 큰 고통을 겪었었다. 그리고 이 고통을 처리하는 것은 다른 어느 누구도 아니고 나 스스로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릴 적 기억을 살펴보면 즐거웠던 기억도 있었지만 충격적인 고통이 함께한 순간들이 기억난다. 아주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 기억이 생생하다. 그만큼 내 의식과 무의식 속에 깊이 박혀있었던 기억이 아닌가 싶다. 그런 식으로 나는 고통을 스스로 처리해야 하는 환경에 너무 익숙했던 것 같다.


또한 양육 분위기도 한몫했던 것 같다. 특히 어릴 적에 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할머니가 나에게 해주는 칭찬의 단어는 이것이었다. “규승이 의젓하다.” 그리고 그 칭찬의 상황은 내가 넘어져서 무릎이 까지고 계단에서 떨어져도 울지 않고, 울더라도 세 번 딱 울고 그치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할머니와 함께 지내는 시간 동안 셀 수 없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고통에 대해서 나 스스로 삭이는 것이 세상에게 칭찬받는 법이라고 교육을 받고 살아왔다.


타인의 욕을 할 때 자신의 가장 약한 부분, 약점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공격하게 된다고 한다. 누군가는 “인성에 문제 있어?”라고 상대를 욕하기도 한다. 그런 욕이 나에게도 있다.


“왜 애새끼처럼 굴어!?”


실은 나는 애새끼처럼 책임감 없는 행동을 하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스스로 너무 어릴 적부터 아이다운 행동을 하지 못하는 환경에 내적으로 외적으로 놓였던 것 같다. 거기다 칭찬 역시 어른스럽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으니 이 고통을 인지해야 한다는 생각은 더욱 멀어져 갔다.




그렇게 성장하다 보니 성인이 되어도 힘들다는 표현을 하기 힘들었다. 특히 타인에게 표현하는 것뿐만 아니라 스스로 힘들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나는 스스로 힘들다는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성인이 되어있었고, 이에 대한 결핍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것은 식습관으로 표면에 나타났다. 스스로 힘들다는 소리를 못하고, 스트레스 역치를 넘게 된 만큼 힘들다는 이야기를 표현하지 못하니 다른 곳으로 무의식적 행동이 옮겨가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군것질하기였다.


스트레스를 쌓일 때 군것질을 많이 한다. 그것도 밤에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생활을 지속하다 보면 살이 금방 찐다. 여기서 아이러니한 것이 스스로를 통제하려는 습관이 강하다 보니 살을 빼는 것도 잘했다. 그렇게 고무줄 몸무게가 되어 살이 찌고 빠지고를 몇 번을 반복했다. 그렇게 나의 몸에는 무리가 왔고 점점 더 강하게 식이요법을 해야 체중을 조절할 수 있었다.




이렇게만 살 수는 없었다.


본질적인 해결책이 필요했다.


그렇게 오랜 시도 끝에 찾은 것이 바로 감정이었다. 특히 나는 힘든 감정에 대해 말하지 못해 왔다는 것을 의식하게 되었다. 나의 고통을 무의식은 느끼고 있었지만 의식은 너무 오래도록 인지하지 않도록 시스템화되어 있었다. 고통을 견디는 것이 바람직한 삶의 태도라고 생활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살다가는 몸이 고장 날 것 같았다.




일단 다양한 감정을 느끼는 것을 시도했다. 그래도 기쁜 감정은 느끼고 표현할 수 있었기에 이를 말로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함께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오는 순간을 일기를 쓰며, 글을 쓰며 회고를 하기 시작했다. 나 스스로 감정의 복기를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훈련을 해갈수록 나는 내가 기분이 나빠지는 그 순간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결국 30여 년이 지나서야 이제야 외면해 왔던 고통이라는 감정에 닿을 수 있었다.


인내력이 좋다고 생각했었고 이는 나는 고통을 견디는 능력이 뛰어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견디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언젠간 억눌러왔던 것은 터지게 마련이다. 그렇기에 고통을 직접 마주하고 컨트롤할 수 있어야 했다.


고통이라는 감정에 닿고 나서 나의 삶이 자유로워졌다. 고통을 느낄수록 나는 내가 지금까지 해오지 않고 미뤄왔던 인생 경험들을 할 수 있었다. 고통이 나의 길을 알려주고 있었다. 지금까지 무시하고 의식적으로만 행동해 오고 나중에 생기던 부작용들을 이제는 훨씬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었다.




고통이 길이다.


고통은 내가 가장 나다워질 수 있는 길을 알려준다. 고통을 이제는 무시하지 않는다. 고통과 불편한 감각이 들려올 때 이를 신이 주신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내려오는 신탁이라고 믿는다. 고통을 겪는다면 나는 이 고통을 다루어야 한다.


고통이 있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 행복한 삶이 되었다.


고통이 있는 길을 가면 나는 내가 원하는 삶에 다다를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회피해 왔던 고통에 대해 이렇게 인생의 길을 알려주는 길라잡이가 될 줄은 몰랐다. 지금까지 피해왔던 나 자신의 고통에게 미안하다. 그동안 들어주지 않아서 얼마나 외로웠을까. 이제 나는 나의 고통을 어르고 다스리고 직면하고 사랑하고자 한다.


그것이 인생의 본질에 다가가는 것이라고 믿는다.




좋아하는 작가인 라이언 홀리데이의 책 제목으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The Obstacle is the way.




Reference.

고통의 비밀 - 몬티 라이먼

라이언 홀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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