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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규승 Nov 24. 2023

사랑하는 할머니께 무한한 지혜를 담아

할머니는 독실한 불교 신자셨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불경을 외우고 절을 하고 산책을 나가는 것이 일상이었다. 할머니 덕에 어릴 적부터 절에도 참 많이 갔다. 절에 가면 스님들은 항상 나를 귀여워해 주셨다. 특히 내 귀를 보고, 부처님 귀라고 말씀해 주셨던 것이 생각난다. 그래서 스스로도 부처님의 귀를 받았다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불교는 나에게 있어 굉장히 친숙한 종교였다.


할머니는 아흔이 넘어 별세하셨다. 할머니를 현충원에 모시고 난후 할머니가 자주 다니시던 절에서 49제를 지냈다. 그러면서 절에 가서 불경을 많이 읊었다. 무슨 내용인지 모르지만 할머니가 좋아하는 거라고 하니 손자 된 도리로 불경을 읽었다.


할머니는 무엇을 좋아했을까?


이제 와서 너무 늦은 질문을 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다행히 부모님께 여쭤봤다. 할머니가 좋아한 것은 무엇이었냐고. 할머니는 어떤 불경을 가장 좋아했냐고? 할머니는 반야심경과 천수경, 금강경을 좋아하셨다고 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언젠가는 이 경전을 읽고 이해해 보겠다고, 할머니가 보던 세상은 어떤 세상인지 조금이나마 들여다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다짐을 하고서 몇 년이 흘렀다. 책은 많이 읽었어도 나는 손이 잘 가는 책을 읽었다. 책을 편식하게 되었다. 그러던 와중 멘토링 프로젝트에서 미션이 주어졌다. 자신이 평소라면 절대 읽을 것 같지 않을 책을 읽는 것이었다. 그렇게 이번 기회에 반야심경을 이해해 보고자 책을 꺼내 들게 되었다.


반야심경의 깊이는 무한했다. 그렇기에 마하반야라고 말한다. 마하라는 말은 무한하다는 것을 의미하고 반야는 지혜를 이야기한다. 즉 마하반야는 한없이 큰 무한한 지혜를 의미한다.




그럼 과연 반야는 어떤 지혜인가?


무한한 지혜이기에 모든 것을 아우른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3가지로 나눈다.


실상반야


실상은 사물의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은 모두가 빨간 안경을 쓰고 있다. 자기가 진실이라고 느끼는 상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본다. 개인에게 실상은 허상이다. 우리는 모두 다른 색의 안경을 끼고 같은 것을 보고 다르다 아웅다웅한다.


관조반야


내가 그 실상을 알아차리는 것을 관조반야라고 이야기한다. 내가 끼고 있는 붉은색 안경을, 지금까지 믿어왔던 것들을 내던지고 실상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방편반야


다른 사람이 허상을 실상인 줄 잘못 알고 있을 때 이를 깨우쳐 주는 지혜를 이야기한다. 리더의 역할이다. 사랑의 이야기다. 허상을 보고 있어도 사랑으로 다시 도전할 수 있게 도와준다.




이런 지혜(반야)를 통해서 바라밀다 하는 것을 목표한다. 바라밀다는 언덕으로 넘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언덕은 괴로움이 소멸된 세계를 의미한다. 즉 깨달음이 있으면 괴로움이 없는 열반으로 가는 것을 의미한다. 속세의 괴로움을 깨닫고 정토세계로 가는 것이다.


이천 년도 더 전에 석가모니는 이 가르침을 전달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가르침은 시대를 관통하여 인간의 괴로움에 대해 위로한다. 인간이라면 지닐 수밖에 없는 실존적 괴로움을 이해하고 중생들을 따듯하게 위로해 주었다. 할머니도 이 따뜻함을 느꼈을 거라 생각하니 내 마음도 조금은 위로가 된다.




할머니


시공간을 초월해서 할머니를 느낄 수 있어서 너무도 행복했습니다.


할머니는 무한히 우리 가족을 사랑해 주셨습니다. 사랑을 받지 못한 적이 있었는지 감히 의심한 적이 있었지만, 할머니에게 무한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할머니 무덤 앞에서 스스로 다짐했던 것을 잊지 않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반야심경을 읽고 나서 알았습니다. 저 역시도 보살님들이 걸어간 길을 걷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


조금 더 일찍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눴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책을 읽을 때마다 들었습니다. 할머니와 함께하지 못했던 것을 어머니와 함께하도록 하겠습니다.


실체가 없음을,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음을 인식하고 살도록 하겠습니다.


할머니. 사랑하는 우리 할머니. 고마워요. 사랑해요.




Reference.

<법륜 스님의 반야심경 강의 - 법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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