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로 보내는 편지

스승님께

by 이글라라


그곳에서 평안하신지요? 선생님이 떠나가신 지 어느덧 7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짧은 만남, 긴 이별. 이제 저는 선생님의 따뜻한 가르침을 가슴에 품고 놀이치료사로 아이들을 만납니다. 곁에 없어도 늘 함께해주심을 믿고 의지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지구별을 떠나시던 날, 12월 4일 그 겨울밤을 기억합니다. 복지관에서 세션을 마치고 고속버스 막차에 몸을 내맡겼을 때, 창밖에는 소복 입은 눈꽃송이들이 까만 밤을 달리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속절없이 가실 줄을 진작에 알았더라면 더 많이, 더 자주 찾아 뵐 것을 후회하고 또 후회하고. 후회의 눈물도 같이 까만 밤을 달렸습니다.

선생님과의 짧은 만남은 긴 여운으로 남아 제 인생의 등불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하염없이 쏟아내는 저의 많은 말들을 고요한 눈으로 다 들으시고 치료사로서 잘했다 싶으실 때는 그저 "그건 참 잘한 거 같네" 고개 끄떡이며 환히 웃으시고. 세션에서 내담 아동에게 실수를 한 것은 아닌지, 치료사로서 잘못하지는 않았는지, 어떻게 개입해야 할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난감했던 상황들을 쏟아놓고는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렇게 한 것이 잘한 것일까요? (아이와 엄마에게) 괜찮을까요? " 혼란스러워할 땐, 그저 "그건 나도 잘 모르겠네"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보시던. 지적이나 충고로 가르치려 하기보다는 스스로가 깨우쳐 가도록 길을 열어 주시던 선생님의 그 모습은 저에게 삶의 지도와 나침반으로 남아있습니다.


선생님은 말로서가 아닌, 온몸으로 수용하고 공감하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엄마로서, 치료사로서, 어른으로서, 아이들 앞에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를 스스로 느끼고 생각하게 하셨습니다. 인생의 가장 힘든 고비를 힘겹게 넘어가고 있을 때 그윽하게 저를 내려다보시던 눈물 담긴 눈빛은 영원히 잊히지 않습니다. "참 힘들겠네."라는 공감과 위로의 말씀 한마디는 마른땅에 내리는 단비와도 같았습니다. 벌새의 물 한 방울이 생각납니다.


7년 전 그때 그 시절처럼 오늘도 선생님께 아이들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지난 20여 년 동안 만나고 헤어지고, 많은 아이들의 얼굴이 흑백사진으로 스쳐 지나갑니다. 이제는 모두 자라서 낯선 얼굴의 어른들이 되었겠네요.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승태예요. 제가 이 길을 포기하지 않고 가고 있는 것은 어쩜 출발점에 그 아이가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선생님, 정말 가요? 안되는데, 안되는데... (선생님이 가버리면 나는 이제 여기에 오지 못할 텐데...)" 울먹이지도 못하고 안절부절 자리에 못 앉은 채 이리저리 왔다 갔다 서성이기만 하면서 그 아이가 내게 남긴 마지막 말. 초등 5학년이었던, 엄마 없는 하늘 아래 할머니 손에서 자라면서 엄마 찾아가겠다고 인천 가는 교통편을 묻고 또 묻던. 잦은 폭력과 욕설, 도벽과 충동적인 행동으로 센터에서도 따돌림당하고 주변에서 뱅뱅 맴돌기만 하던. 저는 센터를 떠나온 후, 위탁보호상담을 하다가 그 아이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가슴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제가 상담하던 내담자들에게 승태는 거의 영웅 같은 존재더군요. 그 아이의 손에만 가면 모든 잠겨있는 것들이 스르르 열린다고. 닫힌 자동차를 따고 들어가 차 안의 현금을 훔치고, 오토바이를 타고 달아나고, 가게 문을 따고 들어가서 도둑질하고. 소년원에 들어갔다 나와서 다시 또 보호감찰 1년 중이었을 때, 내담 학생이 연결해준 영상통화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승태의 얼굴을 대면할 수 있었습니다. 초등 5학년 그때 내가 거기를 떠나오지 않았더라면 승태가 그렇게 비행청소년으로 가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까요.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치 내 잘못인양, 나에게까지 버림받았다고 느꼈을지 모른다고 자책하기도 했답니다. 그땐 그랬어요.


연구소 돌봄 프로젝트 겨울캠프에서 만났던 경식, 민하, 민규, 예진, 지우. 연구소에서는 캠프가 끝난 후 안전하게 귀가시켰고, 그 이후에 발생한 일들에 대해서는 연구소 책임이 아니라고 하였지만, 캠프를 총괄 책임졌던 저는, 그 아이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저로서는 모른 척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이혼가정에서 가출하면서 캠프에서 사귄 남자 친구 경식에게로 간 예진을 찾아서 시내 곳곳을 누비고 다녔고, 간신히 민규를 설득 애원하여 공원에서 담요 한 장으로 새벽이슬을 털어내고 있던 그 아이들을 만났지만 집에는 절대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예진을 끝내 설득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다음 날 프로그램 진행을 핑계로 발걸음을 돌려 혼자서만 집으로 돌아왔고요. 다음 날 민규와 다른 아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에 예진이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개처럼 질질 끌려갔다고 하더군요. 센터 생활복지 교사로부터 그 소식을 전해 들으며 어른으로서 한없이 부끄럽고 미안했습니다. 아이들은 그 상처를 안고서도 다친 몸과 마음을 보듬고 삶을 살아냈을까요.


선생님이 떠나시던 날, 눈발 날리는 추위에 홀겹의 얇은 블라우스, 스타킹도 안신은 맨다리로 꽁꽁 언 몸을 녹이며 수육국밥집에 앉아있던 혜나도 생각납니다. 혜나는 위탁보호상담의 첫 번째 여학생이었습니다. 이후 소년원에서 출소해서 만났을 때에야 들은 이야기로는, 나를 찾아왔던 그날은 친구의 남자 친구로부터 성폭행 위협을 피해 달아난 것이었답니다. 사정 이야기를 할 수 없어 나에게까지 거짓말을 했답니다. 혜나는 수육국밥 한 그릇을 얻어먹고 할머니 집으로 들어간다더니, 버스비가 없다길래 버스카드 충전해주고 버스정류장에 내려주고 왔는데, 할머니 집으로 가지 않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할머니 집까지 태워주었더라면 혜나를 안전하게 보호해줄 수 있었을까요. 후회하고 또 후회하고. 고속버스를 타고 선생님 계신 장례식장으로 조문을 가면서도 '버림받은 영혼을 돌보소서. 집을 나간 아이들이 어디서든 자기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주소서' 빌고 또 빌었습니다. 부처님, 예수님, 하느님, 선생님, 삼신할머니, 설운데 할망,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죄다 불러내어 간청하고 또 간청하고. 선생님에게까지 간청드렸었는데, 하늘로 가시는 길에서 제 기도 들으셨나요?


뇌병변 장애로 자기 뜻대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면서도 한 손으로 나비춤을 추던 보람이, 보육원에서 또래 오빠에게 성폭력 당하면서도 그것을 사랑이라 믿었던 어린 민정. 그때 그 아이들은 자라 무엇이 되었을까요. 저렇게 많은 사람들 중에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선생님은 하늘에서 그 아이들을 다 내려다보고 계신가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계시다면 저에게도 알려주세요. 만날 수 있다면 한번 보고 싶네요. 그때 그렇게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아이들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저의 마음을 전할 수 있다면. 그리고 미안하다고 미안했다고 말할 수 있다면. 떠난 후에도 잊지 않고 있다고. 너희들이 이 사회에서 건강한 어른으로 되어가기를,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를 늘 기도하고 있다고.


아이들에게 내 마음의 기도를 전해주세요.


* 글에 언급된 아이들의 이름은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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