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추석 풍경
어머니 당신이 외롭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어머니께
소슬바람이 부네요. 가을입니다. 다시 서서히 달이 차오르고 있어요. 일주일 뒤면 8월 한가운데 크고 가득 찬 보름달을 볼 수 있겠네요. 아버님 돌아가시고, 어머니 홀로 고향으로 내려가신 지도 어느덧 10년이네요. 고향에서 평안하신지요? 추석 한가위, 올해는 어떤 풍경을 보게 될까요? 저는 집에서 고요히 머무르면서 가을 휴가를 보내려고 합니다. 3년 전부터 명절은 저에게 쉼과 여유의 시간입니다. 조상들을 기리는 것은 성당 합동 위령미사에만 참례할 뿐입니다. 이제는 그 미사조차 홀로 가고 있네요. 그럼에도 저는 외롭지 않습니다. 어머니 당신은 어떠신가요? 고향에서 어떤 명절을 보내시나요? 홀로 외롭지는 않으신지요?
3년 전 달아 공원에서 어머니와 함께 보았던 저녁노을이 떠오릅니다.
그게 마지막이었네요. 어머니를 뵈러 통영으로 내려갔던 것이. 지는 해를 바라보며 어머니와 이모님이 함께 찍은 사진을 가만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사진 속 노인 두 분의 작은 체구, 주름진 얼굴, 무거운 눈꺼풀을 바라보며 마음이 무겁습니다. 20년 전, 처음 뵈었을 때의 젊고 고운 모습은 바람처럼 홀연히 사라져 버린 듯. 손녀들과 나란히 석양을 등지고 서서 사진을 찍으면서 두 분은 까르르르 소리 내어 웃으셨지요. 사진 속의 환한 미소는 소녀처럼 여전히 밝고 고우십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어머니 당신이 계신 그곳으로 가는 것은 늘 가슴 설레게 하는 여행이었습니다. 사량도 해변, 통영 바닷가에서 바라보는 일출과 일몰은 언제나 평화롭고 황홀합니다. 하루 해가 저물어 둥근 형체가 사라지고 붉은 노을만이 흔적을 남기듯이, 어머니 당신도 머지않아 저 너머로 가시고 우리에게 당신 흔적만을 남기겠지요. 살아 계신 동안 몇 번이나 더 볼 수 있을까 생각하며 자주 찾아뵙자 다짐했었는데. 마음일 뿐, 3년 동안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올 추석에도 얼굴은 뵙지 못하겠군요. 얼마 전 통영에 다녀온 리나아빠에게 들었습니다. 안검하수로 수술까지 하셨지만 근육은 점점 느슨해지고 눈꺼풀이 아래로 처지면서 눈을 잘 뜨지 못한다고요. 이제는 수술도 할 수 없고 더 이상 다른 처치 방법이 없다고, 자꾸만 내려앉아 꺼져가는 눈꺼풀을 안고 살아야 한다고, 그가 안타까워하더군요. 무거운 눈꺼풀이 당신께서 살아온 삶의 무게처럼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전화로는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밝고 가볍게 그 자리에 계셔 주셔서 감사합니다.
달라진 추석 풍경, 어머니 당신이 홀로 외롭지 않기를 빕니다.
명절 때면 당신께서 저희 집으로 오시던 역귀향의 풍경도 이제 다시는 볼 수 없겠네요. 생선과 해산물들을 손수 장만하여 일일이 손질하신 후에 냉동실에 얼려 두었다가 아이스 박스에 포장해서 택배로 보내시고는 당신께서는 홀몸으로 고속버스를 타고 자식 집을 찾아오셨습니다. 당일바리를 사느라고, 싱싱하고 좋은 것을 자식들에게 먹이려고 시장에 여러 번 발걸음을 하셨으리라는 것을 모르지 않습니다. 당신께서 보내신 택배 포장을 풀어 냉장고 정리를 할 때면 당신의 노고와 정성에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한숨을 쉴 때도 많았습니다. 그 많은 음식 재료들을 요리하고 처리하는 것은 나의 노동이 뒤따라야 하니까요. 저와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이어서 환호하며 반긴 것도 있었지만, 별로 달갑지 않은 것들도 많았습니다. 식성이 다른 저로서는 그것들을 처치해야 하는 것이 부담이기도 했지요.
이제 저희에게 명절 음식은 사라진 추석 풍경입니다. 생선을 찌고 전 부치고 나물하고 명절 연휴 동안 먹을 음식들을 늦은 밤까지 요리하는 것은 더 이상 하지 않습니다. 명절 연휴 내내 미리 장만해 둔 음식을 덥혀 먹는 것도 하지 않습니다. 먹고 싶은 명절 음식이 있다면 그것은 단 한 끼 식사면 충분한 것 같아요. 지난 명절에 리나아빠는 옛 추억, 어머니의 맛, 명절 음식 냄새가 그리웠던지 손수 동태전을 하더라고요. 처음 하는 것이었는데도, 식구들이 한 끼 맛있게 먹을 만큼 정갈한 솜씨였습니다. 엄마가 아니라 아빠가 명절 음식을 하는 것도 저희 집에서 달라진 추석 풍경입니다.
지난 명절에 전화드렸을 때, 혼자서 미사 가기 싫다 하셨던 어머니 말씀이 떠오릅니다. 노인 혼자서 명절 미사에 가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저분은 자식도 없는 노인네라고 생각할 거 아니냐고 하셨지요. 명절인데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 혼자서 미사에 와 있는 당신 모습이 다른 사람들 눈에는 쓸쓸하게 비칠까요? 제 눈에는 그렇지 않은데, 사람들마다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니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돌아보니 예전에 저도 어머니처럼 그랬었네요. 대학 시절, 설 명절에는 고향에 갔지만, 추석 명절에는 고향에 가지 못하고 서울에서 보내는 때가 많았어요. 주변 친구들은 다 고향으로 가고 나만 혼자 서울에 남았을 때, 혼자서 대학로 소극장으로 연극 공연을 보러 가곤 했어요. 다들 가족들과 함께 오손도손 모여 같이 왔는데, 저만 혼자서 대기줄에 서 있는 모습이 남들이 보기에는 어떻게 보일까 신경이 쓰였어요. 좀 처량하기도 하더라고요. 지금은 혼자 공연 보러 가는 것도 좋아하지만 그때는 혼자인 것이 좋지만은 않았던 것 같아요.
그가 사업장 운영을 하는 7년 동안에도 아빠 없이 아이들과 추석 명절을 보내며 쓸쓸할 때가 많았어요. 추석 연휴에도 사업장 문을 열어야 하는 그는 아침에 차례만 지내고 곧바로 사업장으로 나가야 했지요. 어느 해였던가. 추석 명절 오후, 혼자서 아이 둘을 데리고 공원 나들이 갔던 적이 있어요. 어린아이들이 색동 한복 입고 할머니 할아버지 손잡고 가족들이 옹기종기 몰려다니는 풍경 속에 3살, 7살 딸아이 둘만 데리고 공원 나들이 나온 엄마의 모습은 어떻게 비쳤을까요. 아빠 없는 아이들로 보이지는 않을까 생각하며 외롭고 쓸쓸했던 것 같아요.
이제는 타인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은 그 사람들의 생각이요, 마음일 뿐. 저는 그에 동요하지 않습니다. 홀로 미사 참례하면서 혼자인 그 시간이 평화롭습니다. 저에게는 가족들이 다 같이 모여 미사 참례하는 것은 여럿이 함께인 대로, 홀로 고요히 미사 참례하는 것은 또 그대로 아름답게 보입니다. 어머니께서 홀로 가는 미사 참례가 쓸쓸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김영하 작가는 <홈쇼핑과 택배의 명절, 추석>이라는 글 말미에서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이 하나 있다면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이다. 추석이라고 예외는 아닐 것이다'라고 했어요. 그래요. 추석도 예외는 아니지요. 코로나 이후의 추석 풍경은 더 빠르게, 더 많이 변화하고 있네요. 당신께서는 고향에서 이모님들과 명절을 보내시겠지요. 저희는 여기에서 저희들만의 새로운 명절 문화를 만들어갑니다. 가을 휴가로서 명절 연휴를 즐깁니다. 따로 또 함께, 각자가 자기 자리에서 다른 모습으로 추석을 맞이합니다. 달라진 추석 풍경, 어머니 당신께서 홀로 외롭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남아있는 나날은 어머니 당신 자신을 위한 시간이면 좋겠습니다.
어제는 친구들과 서해 바다에 다녀왔어요. 저녁노을 빛깔 아래 아이들이 모래사장으로 바닷물을 담아다가 물길을 만들며 모래놀이를 하다가 어느새 첨벙 바다 물속으로 뛰어들어갑니다. 먼발치에서 아이들을 지긋이 바라보는 한 여인이 있습니다. 아이들의 엄마 같아요. 혼자인 엄마의 모습이 안쓰럽지도 쓸쓸해 보이지도 않아요. 파도소리와 함께 재잘거리는 소년들의 웃음소리가 오렌지 빛 날개 달고 저녁노을에 번지며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오래도록 고요히 그 풍경 안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파킨슨 치매를 앓고 있는 친구의 친정엄마 이야기를 들으며 돌아가신 엄마 생각을 했어요. 이제는 다시 뵐 수 없는 머나먼 곳으로 가신 우리 엄마. 그리고는 어머니 당신을 그립니다. 아직 살아 계신 당신은 뵈러 갈 수 있는데, 한 번이라도 더 뵈러 가야 할 텐데. 친구는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에 엄마 보러 친정집에 간다고 하더라고요. 엄마는 했던 말을 잊어버리고 다시 하고 또 한다고, 그 말들을 듣기 싫지만 그저 묵묵히 들어주기만 한다고, 그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전부인 듯하다고. 기억을 잃어가는 엄마와 그것을 묵묵히 들어주는 딸의 동행이 서해바다 위 고기잡이 배 불빛처럼 반짝입니다. 사랑과 소멸의 표정들이 가까이 다가왔다가 다시 멀어져 갑니다.
남아있는 나날은 어머니 당신 자신을 위한 시간이면 좋겠습니다. 자식들을 위해서는 지금 늘 하고 계신 기도, 그거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당신 기도 밥 먹으면서 자식 며느리 손녀 모두 건강하게 잘 자랐습니다. 인생의 힘든 고비들 잘 견뎌내고 지금 여기에서 평화롭게 행복합니다. 자식들 걱정 내려놓으시고 남은 시간 온전히 당신 자신을 위한 삶을 사셨으면 하고 소망해봅니다.
오래전 내가 어리고 철없던 시절, 파킨슨 치매를 앓으셨던 우리 엄마 넋두리는 귀 기울여 듣지 못했지만, 살아계신 당신의 구술 생애사는 아직 들을 기회가 남아있으니 이 시간을 그냥 잃어버리고 싶지 않네요. 조만간에 어머니 당신을 뵈러 갈게요. 소설 <나의 요리사, 마은숙>에서 기억하는 여자 심명자와 기록하는 여자 마은숙의 목요일 오후 2시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