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동반자, 그가 홀로 걷고 있다.

by 이글라라


프란치스코에게

잘 있나요? 어디에 있나요? 오늘은 해파랑 길 어디쯤을 걷고 있을까요? 여기는 가을비가 내려요. 거기는 어떤가요? 비가 오더라도 당신은 어김없이 비 속을 걷고 있겠지요. 비 맞으며 길을 걷는 것이 좋다 했지요. 흠뻑 비에 젖어 그저 앞만 보고 걸어가는 당신 뒷모습이 한 장의 사진처럼 눈에 보이는 듯해요.

얼마 전, 카톡으로 보내온 사진 세 장과 당신의 문자를 받고서 역시 당신답다는 생각을 했어요. "오늘 해파랑길 걸었어요. 오륙도 출발. 지금은 송정. 며칠 걸어볼까 해요." 짧은 글, 긴 여운. 나는 장황하게 설명하며 장문의 카톡을 보내는 반면, 당신의 글은 늘 짧고 간결해요. 그저 '며칠 걸어볼까 해요'라는 말 한마디뿐. 언제까지일지, 어떻게 해서 부산 오륙도에 가게 되었는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부연 설명이 없지요. 비가 오는데 어쩌나 하는 나의 걱정 염려에 "출발할 때만 비 안 오고 종일 비. 마지막 해운대 송정은 폭우. 물속을 걷는 듯. 행복한 하루였어요."라고 당신 답변은 네 문장이면 충분하지요. 당신다워요. 물속을 걷는 느낌은 어땠을까요. 나는 홀로 창밖 빗소리를 들으며 당신을 생각합니다.

우린 서로 비 내리는 날을 참 좋아했지요. 바닷가에 차 세워놓고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차창밖 바다를 가만 바라보며 마냥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네요. 당신과 함께 손잡고 걸었던 오륙도, 헤아릴 수 없이 오갔던 해운대 달맞이 길, 이기대, 신선대에서 즐겨 보던 보름달... 부산에서 울산 포항 경주를 지나 강릉 속초까지 해파랑길을 우리 둘이서 정말 많이도 다녔었네요. 그 길을 이제 당신 혼자서 걷고 있군요.



김훈의 <자전거 여행>을 읽다가 맨 밑바닥의 비애와 평화를 생각해요.


김훈의 <자전거 여행>을 읽고 있어요. 알다시피 김훈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예요. 글만이 아니라 사상과 철학, 자기가 쓴 글과 일치하는 삶을 살아가려 하는 삶의 태도를 존경해요. '서쪽 강들은 서해에 닿는 하구에서 저마다의 사랑과 소멸의 표정을 따로따로 갖는다.'라는 문장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어요. 사랑과 소멸의 표정이라네요. 어떻게 이런 표현을 쓸 수 있는지, 참으로 놀랍지 않나요. 10년 전, 당신이 "나 이제 그만할래." 사업 포기 선언을 하던 날, 서해 아산만에서 당신과 함께 바라보던 저녁노을이 그러했을까요. 정태춘 박은옥의 노래에서처럼 '서해 먼바다 위를 노을이 비단결처럼 고운데, ' 당신과 나의 가슴으로 차오르던 슬픔이 썰물 되어 노을에 번져 나가던 그날, 우리의 사랑과 소멸의 표정은 어떠했을까요.

느린 호흡으로 다시 글을 읽어 내려가다가 '이 세상 먹이사슬 맨 밑바닥의 비애와 평화'에서 숨이 멎는 듯해요. 김훈 작가는 '뻘에는 수억만 개의 구멍이 있다. 갯지렁이는 구멍 위로 머리를 내놓고 산다. 이 구멍들이 뻘에 공기를 불어넣어 갯벌은 숨 쉰다. 그것들이 살아가는 꼴에는 이 세상 먹이사슬 맨 밑바닥의 비애와 평화가 있다. 그리고 구태여 고달픈 진화의 대열에 끼어들지 않은 시원의 순결이 있다.(p.209)'라고 썼어요. 먹이사슬 맨 밑바닥의 비애와 평화라니! 아하, 그렇구나. 맨 밑바닥에는 비애와 평화가 함께 공존하는구나. 이제 어렴풋이 알 것 같아요.

지난 10년 동안의 당신의 노동을 생각합니다. 당신이 하는 일이 어쩜 가장 고되고 힘든, 맨 밑바닥의 노동이라 했지요. 제주에서 1년 동안 제주환경자원순환센터 건축공사를 할 때였어요. 쓰레기 소각장 굴뚝을 짓는데, 당신의 노동은 매일 아침 지상에서 곤돌라를 타고 100미터 높이의 굴뚝 위에 올라가면서 시작된다 했어요. '매일 죽을 각오를 하고 지붕 위에 오른다'라고 했던 말이 생각나요. 당신은 그저 평상심으로 내뱉은 그 말이 나에게는 온몸을 얼어붙게 하는 공포, 두려움이었어요. 읽고 쓰고 가르치고 말하는 노동 이외에는 다른 노동을 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지요. 맨 밑바닥의 노동현장에서 당신이 겪은 비애와 평화는 어떤 것일까요? 당신은 알고 있겠지요. 이미 온몸으로 느끼고 경험하였으므로.



당신에게도 숨 쉴 구멍이 필요해요.


오래전에 페북에서 김훈 작가의 글 '죽음의 자리로 또 밥벌이 간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어요. 그는 오랫동안 종이신문 제작에 종사했지만 이처럼 무서운 지면을 본 적이 없다고 했어요. 2019년 11월 21일 자 경향신문 1면에 실린 2018년 1월 1일부터 2019년 9월 말까지 산업현장에서 사고로 사망한 노동자 1천2백 명의 명단. '김 00(53, 떨어짐)'처럼 활자 7~8개로 한 인생의 죽음을 기록하면서 1천2백 번을 이어나간 죽음의 나락으로 밀려 넣어지는 익명의 흐름. 그는 과장 없이 말하겠다면서 이것은 약육강식 하는 식인 사회의 킬링필드라고 했어요. 참혹한 현실, 거부하고 싶은 끔찍한 말이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요. 당신은 그 킬링필드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이겠네요. 김 00(53, 떨어짐)이 당신일 수도 있고, 당신과 함께 곤돌라에 타고 있던 동료일 수도 있으니까요.

뜨거운 여름이 다가오는 길목에서 당신이 "이번 일까지만 하고 그만둘래."라고 했을 때 한편으로 생활비 걱정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마음이 홀가분했어요. 아아, 이제는 좀 안심할 수 있을까. 더 이상 맘 졸이지 않고 죽음의 위험을 걱정하지 않을 수 있을까. 죽음의 자리로 또 밥벌이하러 가는 당신을 바라보는 안쓰러움을 감추느라 무덤덤하게 다녀오라고 보내면서도 내 마음은 늘 불안했어요. 눈앞에서 보지 않으니 모르는 척 외면할 수 있었지만, 결혼 20년 동안 내가 간접 경험한 당신 노동의 비애를 모르진 않아요. 당신도 이제 좀 쉬어야지요. 해파랑 길을 걸으며 당신에게 쉼과 여유를 주고, 평온함을 얻기를 기도합니다.

오마이뉴스에 실린 여성 환경연대활동가 '치자'의 글이 생각나요. "구멍이라도 있어야 숨을 쉬지. 이러다 제주 죽겠네." 돌하르방에만 구멍이 있는 게 아니라고 했죠. 제주 땅 곳곳에는 숨구멍, 숨골, 숨이 들고나는 골짜기가 있다고. 그 숨구멍을 막아버리는 제2 공항 건설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당신도 잘 알고 있지요. 제주에 숨구멍을 막지 말고 그대로 두어야 하듯이, 당신에게도 숨 쉴 구멍이 필요해요. 먹이사슬 맨 밑바닥의 비애를 통감하며 보낸 10년의 노동 일지를 마감하고 안식월 한 달이 길지 않은 시간이겠지만 이 시간이 당신에게 숨 쉴 구멍이 되어줄 수 있기를.



당신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함께 기도할게요.


나는 오늘 아름 도담길을 걸었어요. 우산을 쓰고 톡톡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빗소리가 참 정겹게 들려요. 그 길을 당신과 나란히 함께 걸어가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함께가 아니어도 좋아요. 홀로 걸을 수 있는 이 시간이 감사해요. 당신을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고, 부모가 되고, 삶의 시련들을 견디고 살아내면서 사랑한다면 같은 마음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과거가 있지요. 이제는 알아요. 같은 마음만이 한마음이 아니라 서로 다른 마음으로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을. 함께 나란히 길을 걸어가는 것만이 동반이 아니라 각자 자신의 길을 걸어가면서도 때론 만나 함께 할 수 있다면 그것도 동반자의 길이라는 것을. 서로 다른 마음으로도 함께 나란히 걸어갈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참사랑이지 않을까요. 맨 밑바닥의 당신 노동의 수고에 감사해요. 죽음의 자리로 또 밥벌이를 가면서 가족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다하고자 했던 당신의 노고에 그동안 수고했다고 다시 한번 말해주고 싶어요.

당신이 꿈꾸던, 꼭 해보고 싶은 것들. 백두대간 종주, 무동력 보트 타고 4대 강 종류, 도보로 전국순례, 마라톤 풀코스 완주, 부산까지 강 따라 자전거 길로 달리기 등등의 당신 소망이 언젠가 이루어지기를 함께 바라고 기도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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