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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엄마와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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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글라라 Nov 05. 2021

2021. 10. 31. 일요일

꾸메문고에서 희망도서대출 반납을 하였다. 6층 미술관에서 특별기획전 '그, 묵묵히 걸어온 길'을 보았다. 오랜 세월 예술이라는 한 우물만 파 오신 원로 작가들의 작품 전시였다. 초대의 글에서 '지나고 보니 삶이 참 짧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라는 문장에 한참을 머물러 있었다. 서양화가 조순형의 작품 '그리움'과 '침묵'이 맘에 들었다. 가을들녘 갈대에 흔들리는 바람이 불어오는 듯, 거센 파도가 밀려드는 듯, 묵직한 붓의 터치와 강렬한 색채가 나를 사로잡았다.  

서점에서 그림책 <인생은 지금>을 발견했다. 노인 두분이 자전거를 타고 바람을 달리는 그림이 인상적이다. 나도 달리고 싶다. 가을 들녘을 달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가 그립다. 그가 있다면 오늘 같은 일요일 오후 자전거를 달려 합강에라도 갔을텐데. 혼자서는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한다. 게다가 요즈음은 체력이 약해져서 더 자신이 없다. 혼자여서 좋기도 하지만 홀로인 이 시간이 외롭다. 그와의 결혼 22주년이 다가오는데 ... 이번에는 혼자 보내야 하나. 그는 어느 하늘 아래 있을까. 오늘은 어느 곳을 걷고 있을까.

'인생은 쌓인 설거지가 아니야'라는 문장이 가슴을 후벼파는 듯 아프다. '일일이 이유가 필요해? 그러다 시간이 다 가버린다고. 나랑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싶지 않아?' 그림책 속의 글자들이 내게 소리치는 듯. 나도 그랬다, 책속의 할머니처럼. 그와 함께 했던 그 많은 시간들이 흘러가 버렸다. 지금 이 순간을 살지 못하고 다음으로 미루다가, 내일로 미루다가 잃어버린 시간, 놓쳐버린 것들도 많다.  

최은영의 <밝은 밤>을 훑어보았다. 긴 호흡으로 다시한번 읽어봐야겠다.

서가를 둘러보다가 <네가 다시 제주였으면 좋겠어> 책 제목과 표지 그림에 깜짝 놀란다. 아아 고향 제주, 어릴적 나의 동네 내가 살았던 그 집처럼 그립게 다가온다. 이제는 빌딩이 들어선 그 자리에 사라지고 없는 기억 속의 그집. 초등 4학년 초가지붕 개량하면서 지은 집. 지붕 색깔은 빨강이 아니고 파랑이었지만 집 모양새가 닯았다. 다시 제주였으면 좋겠어. 그래, 다시 제주에 갈 수 있다면 좋겠어. 비행기를 타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다시는 못올지도 모르겠구나 한라산과 작별하던 2년 전 겨울이 생각난다. 공항에서 바라보는 제주바다의 풍경이 떠오른다.

보미랑 반계탕을 먹었다. 따뜻함이 목을 타고 내려가 위에서 머무르는 동안 속옷을 적시며 식은땀이 흐른다. 아아, 더운 열기가 얼굴을 달아오르게 한다. 기력이 쇠했나 보다. 완경하고 갱년기를 넘어섰다고 생각했는데, 아직인가. 환절기여서 그런가. 요즘 체온이 오르락 내리락하면서 추웠다가 더웠다가를 반복하고 있다.

보미는 아이스크림을 사가지고 집으로 먼저 들어갔고, 혼자서 아름도담길을 걸었다. 나의 정원에서 일몰을 보았다. 지는 해를 바라보며 가나다 씨쓰기를 해본다. 재미있다. 즉흥으로 '라라쌤이라고 불러주는 그들이 있어' 마치 열일쓰에게 바치는 헌정시같다. 카톡! 해야가 이번주는 쉬어간다는 문자를 남겼다. 나는 어떻게 할까? 두 달째 매주 1편 글쓰기를 해오고 있다. 이번주는 건너뛸까? 계속 할 수 있을까. 무리한 일정에 다 할 수 있을지 고민이다. 카톡을 썼다 지웠다 서너번 하다가 드디어 결심.

'저는 2주간 휴가 들어갑니다'

막상 보내고 나니 아쉬운 맘. 그래도 해볼걸 그랬나. 떠나보내는 것, 그만두는 것, 잠시 쉬는 것도 쉽지 않은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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