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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글라라 Feb 14. 2022

늦은 새해 인사, 어떻게 지내요.

                       출처: 2022. 2. 10. 문화일보 포토에세이 / 사진. 글 김선규 선임기자


새해를 맞이한 지도 어느새 한 달하고도 열흘이 훌쩍 지났습니다. 늦은 새해 인사드려요. 잘 있나요. 어떻게 지내는지요.

시몬 베유는 이웃을 오롯이 사랑한다는 것은 그저 “어떻게 지내요?”하고 물을 수 있다는 뜻이라고 했어요. 벗들에게 안부를 묻고 싶은, 나 또한 그 질문을 받고 싶은 아침입니다.

노트북을 열었다가 우연히 포토에세이 사진 한 장에 한참을 머물러 있습니다. 제목이 <봄과 고양이는 닮은꼴... 조용히 부드럽게 온다>네요. 문화일보 김선규 선임기자의 사진과 글이 내 마음에 따사한 햇살 한 줌으로 스며들어 옵니다. 거실 창문으로 들어온 햇살 한 줌이 마루 바닥에 길게 자리를 뻗고 누운 듯, 고양이의 쫑긋 솟은 두 귀와 연초록 여린 잎 순들이 자신의 그림자를 내려다보고 있네요. 고양이처럼 봄은 부드럽고 날카롭게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답니다. 작가는 코로나 확진으로 집콕 생활 일주일째 하면서 무감각해진 시간 속에서 우연히 마주한 장면을 무심코 지나치지 않았네요. 햇살 한 줌과 고양이의 그림자를 정성껏 사진에 담았습니다. 정성껏 일기가 생각납니다. 저는 정성껏 일기 100 일 쓰기를 마쳤습니다. 지난 10월 말에 김탁환의 글쓰기 강좌를 듣고서 시작했던 100일 프로젝트였습니다.

지난주는 내내 위기철의 책 <이야기가 노는 법>에 빠져 지냈습니다. '좋은 글은 남의 감정과 생각을 잘 배려한 글이다!'라는 말에 충격을 받으면서요. 표현하려는 작가는 '하는 말'을, 소통하는 작가는 '듣는 말'을 선택한다네요. 나는 어떠한가를 생각해보게 더군요. 상대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소통하려 하기보다 일방적으로 내 말을 전달하는 데에만 주력해 오지 않았나, 표현하기에만 에너지를 쏟고 있던 나를 보았습니다. 작년부터 관계 갈등을 많이 겪었어요.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의도하지 않는 곳에서, 예기치 않은 반응들과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오해의 말들로 상처도 받았지요. 내가 무엇을 어떻게 했느냐가 아니라 상대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았느냐에 따라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사소한 오해로 쌓이고 갈등의 골은 깊어지더라고요. 소통을 위해서는 내가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의 문제만이 아니라, 상대가 지금 어떤 상태이고, 상대가 어떤 말을 듣고 싶어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듣는 말'을 선택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면 풍경은 무채색이라네요. 빛이 있어야 색깔도 있는데, 몸속에는 빛이 안 들어오니 사색과 감상은 대개 흐릿한 회색이기 십상이라고. 작가 위기철은 "내면 풍경과 너무 친하게 지내지 마세요. 색깔도 있는 바깥 풍경을 중심으로 다루는 게 이야기의 건강에 좋습니다. 물론 여러분 건강에도 좋고요."라고 했어요. 밑줄 그어놓고 다시 읽어보며 피식 웃음이 나오네요. 내면 풍경과 아주 친밀한 나, 정성껏 일기 100일 프로젝트 동안 흐릿한 회색으로 겨울을 보냈던 것 같아요. 이제 그만 내면 풍경과도 거리두기를 하려고 해요. 곰이 마늘만 먹으며 동굴에서 100일 보내고 인간으로 환생했듯이 저는 이제 내면 풍경과 친하게 지낸 100일과 작별하고 소통하는 글쓰기, 편지 쓰기로 나아가 볼까 해요. 작가는 일기 쓸 시간에 차라리 편지를 쓰라고 했어요. 주절주절 자기 감상이나 늘어놓지 말고 그 사람이 들어서 좋아할 만한 얘기를 하라고.

치유하는 글쓰기에서는 내 말을 평가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들어줄 누군가를 떠올리며 그에게 속삭이듯이 글을 쓰라고 해요. 나만의 키다리 아저씨는 누구일까 생각하다 당신이 떠올랐어요. 당신은 내게 키다리 아저씨였네요. 고마워요. 멀리 있지만 마음만은 가까이, 늘 우리들을 위해 기도해주신다는 걸 알고 있어요.  


입춘은 지났지만 창문 밖 공기는 차갑고 서늘합니다. 아침 산책길, 햇살은 따스하지만 얼굴에 스치는 바람은 귓불을 시리게 하더라고요. 가슴팍으로 파고드는 차가운 기운에 옷깃을 여미며 봄이 오는 소리를 듣습니다.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홀로 계신 그곳의 겨울은 어떠신지요. 남도에는 여기보다 더 일찍 봄이 오겠지요. 얼마 전 라디오에서 <입춘대길 엽서>라는 시를 들었어요. 시인은 남도에서 한달살이를 하면서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다 느낄 수 있었다네요. 한겨울의 붉은 동백, 가을 억새, 낮은 둔덕 위 유채꽃과 개나리...... 2월 초 입춘에 일 년 사계절을 한껏 보고 입춘대길을 준비해야 할 때라고, 입춘대길 엽서를 쓴다는 시를 들으며 그곳에 가고 싶었어요. 고단했던 지난 한 달을 돌아보며 새해부터 겪어내고 있는 이 액운들도 다 지나가리라, 봄이 오면 다 괜찮아지리라, 기대하면서 가슴에 크게 입춘대길을 써 붙이는 마음이었답니다. 새봄, 다시 시작을 다짐한지도 어느새 일주일이나 지났군요. 시간은 조용히 흘러갑니다. 조용히 봄은 오고 있습니다.


새해에는 많은 우여곡절들이 있었어요. 생애 처음으로 단식이란 걸 해봤어요. 어쩔수 없이 굶은 적은 많지만 자발적으로 음식을 먹지 않은 것은 처음이에요. 작년 가을부터  먹기만 하면 체하고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한방 치료를 받던 중에 한의사의 권유로 청혈해독 단식을 하게 되었는데, 몸속의 모든 것을 다 비워내는 완전 해독 5일 동안 명현반응으로 거의 죽다가 다시 살아났네요. 얼마나 부끄럽던지요. 마음 치료한다고 다니면서 몸 건강을 방치하고 있었던 대가를 톡톡히 치렀어요. 겸허히 반성하고 새해 다시 태어나는 마음으로 비우기와 채우기의 균형 잡힌 식습관, 건강 십계명을 실천하고 있답니다. 아침 운동으론 새벽 108배를 시작했어요. 연말 휴가 때 템플스테이 갔다가 108 염주를 만들고 왔거든요. 절은 세상에서 가장 자신을 낮추는 행위라고 하더라고요. 엎드려 절하다 보면 자신이 들가에 핀 들꽃처럼 특별할 것 없는 존재임을 알게 되어 편안해진다고. 몸 건강 마음 건강을 위한 108배 프로젝트 한 달째입니다. 마음치료 못지않게 몸 치료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실히 느끼고 깨닫고 있어요. 마음 수행하면서 몸의 활력을 되찾는데 제게는 108배가 참 좋네요.

안나는 무용레슨 중에 넘어져서 오른팔 골절상을 입고 통깁스를 했어요. 가벼운 부상이려니 했는데, 골절이라네요. 자칫 잘못되어 어긋나면 수술을 해야 한다고 조심하라고 해서 아무것도 못하고 있어요. 휴, 이제 고 3인데, 가장 중요한 시기에 레슨을 고 있으니 통곡할 노릇이죠. 그래도 안나는 마음이 많이 자랐어요. 어느 누구 탓하지도 않고, 자책하지도 않고, 이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네요. 도움 요청할 것은 요청하고, 스스로 해낼 것을 스스로가 해내면서, 오히려 엄마보다 더 의연하게 불편함을 감수하고 잘 견디고 있어요.

저는 안나의 갑작스러운 사고로 바쁜 일정들이 꼬이면서 완전 멘붕이었답니다. 수요일마다 병원 진료를 가야 하고, 센터 공간 이전에다가 이러저러해야 할 일들이 겹치면서 상담 시간을 조율하다가 사소한 말다툼으로 센터장과는 관계가 틀어져 버렸고요. 서로 어긋나지 않고 자연스레 지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은 매서운 칼바람으로 상처 주고받기를 하다가 냉전 중이에요. 조용히 작별을 준비하고 있어요.


의지할 사람 오직 하나였던 그는 늙은 노모를 모신다고 고향으로 내려가고 없고, 봄이 오는 길목에서 홀로 쓸쓸하고 외로운 시간이네요. 그래도 봄이 오면 따뜻한 햇살 아래 상처들도 아물고 몸과 마음이 함께 치유 회복의 길로 가겠지요. 따뜻한 봄을 기다리며 당신의 기도를 청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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