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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글라라 Dec 21. 2021

2021년 열흘을 남겨놓고

해운대 백병원 장례식장                           

689 여섯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20년 만이다.     


부산을 떠나기 전 우리 집 사랑방에서

오래도록 함께하자는 마음 모아 계모임 이름을 정하며  

여섯의 공통점을 아무리 찾아도 마땅한 게 없을 때

누가 말했더라, 기억조차 희미하지만

"그럼, 689 하면 되겠네."

이십 대를 보내고 삼십 대에 막 진입한 우리들은

다 같이 깔깔깔 웃었다.     


68년생이 넷, 69년생이 둘

여인네가 넷, 남정네가 둘

풍물을 치는 이가 넷, 그 언저리에 있던 이가 둘

솔로가 넷, 짝이 있는 이가 둘

그와 나의 신혼집 사랑방에 모여

윷놀이, 욥마이 훌라 카드놀이하며

알콩달콩 웃고 떠들던 시절

그땐 다들 젊고 쨍쨍했는데     


20년 세월이 흘러 이제 오십 대에 접어들고 보니

솔로가 둘, 짝이 있는 이가 넷

솔로이건 짝이 있는 이건 모두가

솔로로 자아 독립의 길로 가고 있다     


출가한지 14년, 스님이 어머니를 떠나보내며

미안하다 하니 내가 더 미안하다 하고

서로 미안하다는 말로 마지막 작별을 했단다

서로에게 못해준 걸 미안해하지만

어쩌면 그때 그 시절 이미 다한 것일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그때는 최선이었을 게다     


우리들도 서로에게 안부를 묻고 전하며

그동안 미안하다 내가 더 미안하다 했다.

간간이 소식을 주고받으며 오륙 년에 한 번씩

 또는 셋, 넷 씩 서로 만나기는 하였으나

여섯이 다 함께 한 자리에 모여 앉기는

20년 만에 처음이다

다들 무에 그리 바빴을까      


사느라 다들 애썼다.

엄마 노릇, 부모 역할, 가장으로 책임을 다하느라

아들로, 딸로, 이젠 어른으로, 수행자로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묵묵히 살아내느라

다들 애썼다.     


우린 서로를 알고 있다

다들 잘 살고 있다고,

서로를 잊지 않았노라고,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고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고

이미, 그리고 아직도 잘 알고 있다


내가 더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남기고

급성 백혈병으로 응급실에 실려 간 뒤 사흘 만에

저 하늘로 가신 스님의 어머니를 애도하며

누군가에게 미안하다, 내가 더 미안하다 하며

2021년 한 해를 떠나보낸다     


이제는 “미안하다” 말고, “고맙다” 하자

고마운 마음으로 환갑, 칠순, 팔순, 어쩜 100세까지

기쁨도 슬픔도 고통과 외로움도 함께 나누는 벗이 되자

사라지는 것들 속에서

남아있는 것들을 돌아본다

689는 영원히 689로 남으리


2021년을 열흘 남겨두고

황인숙의 시를 읽다가 눈길 머무는 구절

지금은, 내가 살아갈 가장 적은 나이

내 척추는 아직 곧고

생각 또한 그렇다(아마도)          


살아갈 날들에 가장 젊은 날

오늘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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