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계절을 다시 걷는 시간
엄마 , 안녕
그 동안 잘 지냈어?
가을녘에 낙엽을 바스락바스락 밟으며 엄마를 생각했는데 그 새 추운 공기가 가득차더니 겨울이 다가 왔어.
엄마랑 보냈던 가을을 듬뿍 느끼며 선선한 공기를 마시며 실컷 보냈던 것 같아.
생각해보니 겨울엔 엄마와 보낸 기억도 꽤 많네.
오늘은 그걸 떠올려볼까 해.
어제 부터 기상청엔 오늘 서울엔 하루종일 눈이 내릴 예정이니 온갖 호들갑을 다 떨더니
지금 오후 2시가 넘었는대도 비만 추적추적 내리고 있어. 기상청 답지?
그래도 실망하고 있기엔 내 하루가 아까워서
맛있는 브런치를 만들어서 먹고,
방을 청소하고,
쓰레기를 버리고,
깨끗하게 씻고,
보송보송하게 세탁 된 니트를 꺼내입고,
따뜻한 어그를 신고,
폭닥한 패딩을 입고,
북적한 지하철을 타고 나와
나만의 아지트로 와서 시원한 커피를 마시고 있어.
그런데 늘 조용하던 이 곳이 오늘 따라 왜이렇게 바글바글 거리는지
조용히 앉아서 사색하려던 내 하루가 조금 예상밖을 벗어났네.
아직 눈에 내리지 않은 건 눈이 곧 내릴 거라는 이유도 되겠지?
어젯 밤에 잘 때는 오늘 눈 뜨면 눈이 소복하게 내릴 걸 예상하고 잤는데 문득 그런 기억이 떠올랐어.
대구엔 눈이 오는게 참 귀하자나.
그런데도 눈이 한 번 내리면 참 우리는 아이마냥 좋아했었어. 그치?
새벽에 출근하던 엄마는 그 길이 미끄럽고 위험했을만도 한데
자고있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
‘미야~ 밖에 눈왔다!’ 라고 하면
팔딱 일어나서 문을 빼꼼히 열어보던 내 모습이 떠오르네
미쳐 이불 안에서 느끼던 온기를 빼앗기기 싫어서 몸은 잔뜩 웅크린 채
코 끝시리게 추운 베란다 문을 빼꼼히 내밀고 차가운 공기를 들이키며
반쯤 뜬 눈으로 하얀세상을 맞이하던 그 날 아침은
내 기억 속에 ‘가장 행복한’ 폴더명 안에 있는 기억이야.
10살 무렵 , 엄마가 아주 크게 교통사고가 났지.
꼬리뼈가 뚝 하고 끊어질 만큼의 큰 사고에도 엄마는 이겨냈어.
그 때의 후유증으로 평생을 포진바이러스를 달고 살았지만 엄마는 참 강하게 버텼지.
그저 엄마는 고작 40살이였는데
지금 내 나이가 37살이니
내 또래의 엄마가 이겨낸 그 시절이 참 마음이 아파.
난 여전히 어린아이 처럼 마음이 여린데 엄마는 참 강했네.
6개월 남짓, 좋지도 않은 동네병원 입원실에서 고생하다가 겨우 퇴원했는데
그 날이 겨울이였고 눈이 무릎까지 차오를 정도로 많이 내렸었어 기억나지?
꼬리뼈가 겨우 나아갈 무렵에 몸을 사려도 모자랄 판에
몇 년만에 내린 대구의 눈을 즐기기 위해서
막 퇴원을 한 엄마는 나를 데리고 앞산공원엘 갔어.
나는 그저 엄마가 집에 돌아와서 좋았고
눈이 내린 날 엄마와 보낸다는게 강아지마냥 좋아서 방방 뛰었던 기억이 있어.
외삼촌이 사준 빨간 모자와 빨간 목도리를 하고
엄마 손을 잡고 뽀득뽀득 거리는 눈을 밟으면서
눈 위에 찍혀가는 엄마 발자국 내 발자국을 번갈아 보면서
아직은 엄마 발자국이 더 크다면서 시무룩 하던 기억도 나고
앙상하게 마른 엄마의 손을 잡고 차가운 공기를 폐 안에 가득채울 때의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벅찼던 기억이야.
누군가가 낑낑대며 만들어두었던 우리 키만한 눈사람을
마치 우리가 만든 것 처럼 옆에 세워두고 오래된 빨간 필름 카메라를 연신 눌러대며
사진을 찍은 것도 선명해.
자그마한 손으로 눈을 뭉쳐 애기 눈사람을 만들고서는
땀을 뻘뻘 흘리며 콧물 훌쩍이며 돌아왔던 그 날의 하루는
앞으로 내가 살아가면서 눈이 내릴 때마다 떠오를 것 같아.
나에게 이런 행복한 기억을 만들어주어서 고마워.
가난했지만 돈으로도 살 수 없었던 ‘기억의 행복’.
그게 엄마와 나의 겨울이였네.
요며칠 새벽녘
해도 뜨지않은 6시 무렵에 문을 열면
미쳐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달이 환하게 우리집 창문을 비추며
밤새 무섭지 말라며 지켜주는 엄마같아서 참 반가워.
떠나고서고 내 마음과 기억과 우주에 머물며
엄마의 존재를 느끼게 해주어서 고마워.
보고싶어.
오늘 만약 눈이 내린다면 엄마가 나에게 화답한다고 느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