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아들 (프롤로그)

영화 ”꿈의 구장 & 루키“

by 따뜻한 만년필
아들의 아버지

이 순간,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는가?

있다면,

* 이미지 출처 : Pixabay

대략 이런 이미지?

실제로 이런 이미지를 떠올린 사람이면, 아마도 십중팔구 현재 어린 자녀를 둔 아버지가 아닐까 짐작해본다.


그러나 현실에서, 또는 한 개인의 인생에서는 아들로서든, 아버지로서든 저런 장면은 마치 한순간처럼 지나가버린다—시간이 조금만 흘러도, 아들은 저렇게 안길 만큼 작지 않게 되고, 아버지는 아들을 들어 올릴 힘이 없어진다—그리고 성인이 된 아이는, 저런 시간의 존재조차 대부분 기억하지 못한다.


아이는 성장하면서 자신만의 가치관이 뚜렷해지고, 아버지는 노쇠해지고 사고(思考)는 경직되어 간다. 그러니 청장년이 된—부모에게서 완전히 독립한—아들의 눈에 비치는 아버지란, 대부분 '기력이 쇠하고 말이 통하지 않는 고집불통 늙은이'이고, 두루뭉술 '세대차이'라는 이름으로 정리되는, 두 사람 사이의 간극은 점점 커져만 가는 것이다.


아무튼 세대에 따라, 또 현재 자신의 나이에 따라, 각자가 가진 ‘아버지'라는 이미지는 모두가 다를 법하다.


아들에 대해서도...

메이저급 발상

야구를 아주아주 좋아하는 팬의 한 사람으로서, 야구 실력만큼이나 수준 높은, 메이저리그의 뛰어난 기획력에 때때로 크게 감탄한다. 든든한 자본의 뒷받침 덕분에 마음껏 상상이 가능하고, 상상해낸 것이 무엇이든, 상상에 머물지 않고, 현실화되는 것이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미국 메이저리그는 1876년에 시작되었다. 그렇지만 1947년 4월 15일, 다저스(Dodgers)의 42번 유니폼을 입은 재키 로빈슨(Jackie Robinson)이 등장하기 전까지, 무려 71년 동안이나, 메이저리그에는 오직 백인 선수들만 있었다.


그런 백인들만의 공간에 처음 나타난 흑인이 겪었을 차별과 수모를 상상하기란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재키 로빈슨(Jackie Robinson) *이미지 출처 : MLB.com

재키 로빈슨(Jackie Robinson)의 그 험난했던 아름다운 도전을 기리는 그들의 방식,

‘재키 로빈슨 데이(Jackie Robinson Day)'—매년 4월 15일.

이 날엔 운동장의 모든 선수들이 재키 로빈슨의 배번 '42'의 유니폼을 입는다.

다저스 시절, 평소 배번이 99인 류현진 선수(오른쪽에서 세 번째)도 이날엔 42번을 입었다.(*이미지 출처:The Sporting News)

'어머니의 날(Mother's Day)'도 그렇다.

‘어머니의 날(매년 5월 둘째 일요일)'에는 심판, 선수들의 복장(모자, 신발, 언더셔츠, 양말, 아대 등)과 장비(배트, 글러브 등)의 곳곳이 분홍색으로 된다. 선수들의 어머니들이 야구장으로 초대되어 별도로 준비된 행사를 치르기도 한다.

* 이미지 출처(위 왼쪽: thescore.com, 위 오른쪽: ABC13, 아래 묶음 사진: mlb.com)
꿈의 구장(Field of Dreams) 이벤트

이런 행사의 일환으로, 2021년 8월 12일(미국 현지 날짜)에 메이저리그에서 아주 멋진 이벤트가 있었다.


케빈 코스트너(Kevin Costner)가 주연을 맡았던, 1989년 영화 '꿈의 구장(Field of Dreams)'을 32년 만에 현실에서 재현해 낸 것이다.


영화 개봉 당시에 34살이었던, 1955년생인 주연 배우는 30여 년의 세월이 흐른 뒤라, 주름이 많이 생겼고, 머리는 백발에 가까운, 나이 든 모습이 역력했다—그럼에도 여전히 멋있기는 했다.


울창한 옥수숫대 사이를 헤치고 나와, 두 손으로 살며시 야구공을 감싸 들고, 운동장 앞에 잠시 멈춰 선 케빈 코스트너,


그곳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바다 건너 2억만 리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 나조차 가슴이 뭉클했을진대, 운동장 한가운데로 홀로 천천히 걸어가던 장면에서, 백발의 노신사가 가졌을 감회가 어떠했을지는 감히 상상하기 어렵다.


새 야구장도 그 너머는 옥수수밭이고, 영화에 나오는 꼭 그 장면처럼, 외야 펜스를 대신하는 울창한 옥수숫대를 헤치며 등장하는 선수들. 그날 경기를 치를 시카고 화이트삭스(Chicago White Sox)뉴욕 양키스(New York Yankees) 선수들이었다.


(영화에서 중요한 인물인 ‘조 잭슨’의 팀)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선수들은 영화에 등장하는 선수들이 입었던 옛날 그 디자인의 유니폼을 입고 나왔다.

* 이미지 출처 : mlb.com

선수들 한 사람, 한 사람과 악수를 나누고, 마침내 마이크 앞에 선 케빈 코스트너,

30년 지났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감사의 연설을 하고,

관중을 향해 영화 속의 그 유명한 대사

“Is this heaven?"하고 묻는다.

관중들의 환호에 이어,

그가 스스로 답한다

“Yes, It is.”


이어서 경기가 시작되었다.

경기 중에 홈런이 된 공은, 영화에서처럼 외야 너머 옥수수밭 가운데로 사라지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꿈의 구장 이벤트’가 있을 것이란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는, 엄청난 돈을 들여 그걸 한번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오래전 감동을 주었던 영화를 현실에서 재현해 본 이벤트는,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그 자체로 너무나 감동이었다.


* ‘2021년 꿈의 구장 이벤트' 영상 참조 : https://youtu.be/Ug4bsd4LqqM



이벤트에 사용된 야구장은 실제 영화 촬영에 사용된 곳은 아니다. 영화 촬영에 사용된 야구장—크기가 작고 관중석이 없는—은 놀랍게도 지금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단 한 번의 이벤트(메이저리그 경기)를 위해 무려 8,000석 규모의 관중석을 갖춘 정식 야구장을 새로 만든 것이다—작년의 좋은 반응 덕분인지 2022년 올해 한 번의 경기(현지 날짜 2022.08.11. 시카고 컵스 vs 신시내티 레즈)가 더 열리긴 했다.

왼쪽의 관중석이 있는 큰 야구장이 이벤트를 위해 새로 만든 야구장이고, 오른쪽의 작은 야구장이 영화 촬영에 사용되었던 곳이다(*이미지 출처 : the sporting news)
이벤트 그 이상의 이야기

그런데 엄밀하게 말하면 그것은 영화를 재현한 것은 맞지만, 107분짜리 영화의 단 한 장면만을 재현한 것에 불과하다. TV로 이벤트를 지켜보는 내내, 그것의 기원이 된, 영화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는 어떤 내용이었던가?'를 말이다. 그런데 워낙 오래전에 본터라, 인상 깊었던 몇몇 장면은 기억났지만, 아무리 애써도 그 이상은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보았다—사실, 그 후로 보고, 또 보고, 또 보고 있다—그리고 확실히 알게 되었다.


이벤트가 재현해낸 그 장면 이상의 훨씬 더 크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또 다른 야구영화 '루키(The Rookie)'를 함께 떠올리게 만들었다.


내가 본 두 편의 야구영화 '꿈의 구장(Field of Dreams)''루키(The Rooke)'는 분명 야구를 소재로 하여 이야기가 시작되고, 그것에 상당 부분이 할애되지만, 주제는 그것이 아니다. 야구장이나 야구 자체에 대한 것도, 야구선수의 성공담이나, 실패와 좌절의 극복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다.



* 아버지와 아들(상)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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