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에 관한 실록 2편 - [Dangerous] 살펴보기
트릴로지(Trilogy)?
90년대가 시작되기 전, 그 이전 10여 년 동안(1978~1988년),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은 20대였다. 그의 20대에 발표한 단 3장의 앨범—[Off the Wall], [Thriller], [Bad]—으로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은 전 세계를 뒤흔들어 놓았다.
이런 질문을 한번 해본다.
“마이클 잭슨의 트릴로지(Trilogy)는 뭘까?”
다른 가수들에게서는 이런 경우를 잘 볼 수 없는데, 마이클 잭슨을 두고는 유독 앨범 3장을 많이 거론한다.
그 이유는 아마도 명프로듀서 퀸시 존스(Quincy Jones)가 프로듀싱했던 앨범이 우연찮게 3장이고, 마이클 잭슨이 세계적인 슈퍼스타로 등극한 것이 그때와 시기적으로 비슷하게 겹치는 탓도 있는 듯하다. 그래서 다수의 음악평론가들이나 음악계 종사자들은 그렇게 3장의 앨범을 묶음으로 자주 거론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뜬금없는 질문은 아니다.
아무튼 굳이 마이클 잭슨의 트릴로지(Trilogy)—3장의 앨범—를 뽑으라 하면, 무조건 [Thriller]는 가장 먼저 뽑고, 다음으로 [Bad]를 포함시키는 것, 여기까지는 어느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주로 위에 언급된 이유로 인해) 대체로 [Off The Wall]을 포함시키는 선택을 하는 분들이 많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나는 [Off the Wall] 대신, [Dangerous]가 포함된 3장을 선택하겠다.
단언컨대 [Dangerous]는, 황제의 앨범 트릴로지(Top 3)로 뽑히는데, 전혀 손색이 없다.
우선 판매량이 상당하다.
[Dangerous]는 마이클 잭슨의 앨범 가운데 세 번째로 많이 팔린 앨범이다. 전 세계 판매량이 3천2백만 장이며, [Bad]의 판매량(3천5백만 장)에 거의 근접했다. (참고로, [Off the Wall]의 판매량은 2천만 장이다)
오래 공들인 장인(匠人)의 걸작
세계 최정상의 가수가 대략 10년 정도 그 지위를 유지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 기간 동안 대략 몇 장의 앨범과 몇 곡의 노래를 발표하게 될까.
현시점의 정상급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와 에드 시런(Ed Sheeran)을 한번 예로 들어본다.
대략 최근 10년(2011년 이후) 스튜디오(정규) 앨범 기준으로,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는 6장의 앨범에 93곡을,
에드 시런(Ed Sheeran)은 5장의 앨범에 65곡을 담아 발표했다.
최정상의 인기 가수들은 특히나 앨범을 더 자주 낸다.
시장에서 좀 통한다 싶으면, 더욱 가속페달을 밟아 내달리는 식이다. 특히 지금은 음악산업이 스트리밍 기반이고, 월정액의 비용으로 어떤 곡이든 다 들을 수 있는 환경이라, 동서고금 모든 노래들과의 무한 경쟁에 노출되어 있다. 그래서 고객들에게 자신의 음악을 한 번이라도 더 듣게 만들기 위해서인지, 앨범마다 수록곡도 점점 더 많아지는 느낌이다—그럼에도 사람들은 더욱더 빨리 싫증을 내는 것도 같지만—아무튼, 레이블의 독촉에 시달리는 것인지, 창작력이 뿜뿜 해서 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인기 가수들은 끊임없이 신곡을 쏟아낸다. 그러나 더 자주, 더 많은 노래를 발표하는 일이 지속되면 자연히 질이 하락하게 될 것임은 자명하다.
마이클 잭슨이 자신의 20대와, 30대의 첫 앨범을 내기 전까지의 시기인 13년간(1978~1990년), 같은 시기에 전성기를 구가했던, 정상급의 다른 가수들의 앨범 활동은 어떠했었는지 살펴본다.
프린스(Prince) : 11장의 앨범, 125곡
엘튼 존(Elton John) : 10장의 앨범, 109곡
빌리 조엘(Billy Joel) : 6장의 앨범, 57곡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 5장의 앨범, 49곡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 : 9장의 앨범 112곡
동기간에 음악으로 세계를 평정했던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은 단 3장의 앨범, 고작 29곡이 전부였다.
"물 들어올 때 배 띄운다"라고들 한다.
이 말은 마이클 잭슨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내용을 잘 모르면 얼핏 게을러서가 아닌가 하는 오해를 할 수 있다. 그때 당시 마이클 잭슨 정도의 인기라면, 음반 제작사의 요청에 얼마나 시달렸겠는가? 그런 압박을 견뎌낸 것도 어쩌면 황제라서 감당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세계를 제패하는데 저 정도—3장의 앨범, 29곡—만으로도 충분했다는 것은 그저 놀랍다.
지나칠 정도로 과작을 했던, 마이클 잭슨은 앨범 사이에 평균 3~5년의 간격을 두었다. 이것은 휴식기가 아니라 다음 앨범을 준비하는 시간이었다. 앨범 녹음에만 대략 2~3년의 기간을 소모하는 것도 예사였다. 그래서 수록곡 하나하나의 완성도와 질이 대단히 높다. 이런 것이 마이클 잭슨의 앨범들은 유독 수록곡의 숫자 대비 싱글 발매 곡이 많고, 그 곡들이 모두 차트의 최상위권에 도달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다른 아티스트들에 비해, 앨범 제작에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인, 마이클 잭슨의 앨범은 B면의 마지막 곡까지 모두 좋다—LP에는 앞, 뒷면이 있다. 통상 앞면을 A면, 뒷면을 B면이라고 했는데, 대개의 경우에는 양면의 1번에(A면의 1번에 가장 좋은 곡, B면의 1번에 앨범 전체로는 두 번째로 좋은 곡)이 앨범에서 가장 좋은 곡이 배치되는 방식이었다.
‘배철수의 음악캠프’의 DJ 배철수 씨는 오래전부터 여러 차례 이와 비슷한 언급을 하셨었는데, 최근 2022년 3월 23일(수)에도 당일 두 번째 곡, ‘In the Closet’이 나간 후, 이렇게 말씀하신다.
“햐~ 마이클 잭슨 음악들은 사운드가 좀 뛰어나죠? 공을 많이 들이고, 자본주의 사회니까, 돈을 많이들인 티가 역력합니다. 사운드가 좋아요! 마이클 잭슨 'In the Closet' 들었습니다.”
(‘In the Closet'은 [Dangerous] 앨범 세 번째 트랙이다.)
이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스마트폰에 저장된 여러 음악을 랜덤으로 듣다가, 마이클 잭슨의 음악이 나오면 차이가 확연히 느껴진다. 황제의 부와 권력으로, 세계 최고의 스튜디오에서, 최고의 장비로, 최고의 연주자, 최고의 엔지니어들과 정말 오랫동안 반복에 반복을 더해 빚어낸 앨범이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테다.
음질, 녹음장비 등의 기술적인 부분을 떠나, 수록곡의 면면을 봐도 마이클 잭슨의 앨범들은 탁월하게 좋다. 아무래도 좋은 곡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앨범 수록곡을 선정할 때 탈락한 곡들도 웬만한 다른 가수들의 앨범 타이틀곡보다 좋았을 수도 있다. 이처럼 한 앨범에 좋은 곡이 많이 수록된 이유도, 역시 가장 큰 비결은, 오랜 준비기간이었다고 생각한다.
팝가수로서의 마이클 잭슨을 King이라 명명할 만큼 우월적 지위를 유지했던 기간을, 최대한 길게 본다면, 대략 15년('79~'95) 정도 될 수 있지 싶다. 이 기간 동안 마이클 잭슨은 5장의 앨범, 58곡 만을 발표했다.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앨범
[Dangerous]도 이런 기조—오랜 준비기간—의 연장선에서 탄생한 앨범이다. 프로듀서 퀸시 존스(Quincy Jones)와 결별 후 발표하는 첫 앨범이라, 더더욱 공을 들였고, 절치부심 더 완벽을 기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 이전 어떤 앨범보다 많은 14곡을 수록했는데, 마이클 잭슨 본인이 12곡의 곡 쓰기에 참여했다. 물오른 창작력이 절정에 달한 시기에, 기술적 노하우가 집약된 앨범이다. 1천 번 이상의 녹음 작업을 했다고도 알려져 있다.
마이클 잭슨 자신을 포함한, 4명이 앨범 프로듀싱을 했는데, 이전 앨범 어딘가에서 함께했던 이들이 계속 함께했다. 다양한 악기를 다룰 수 있어, 여러 악기의 세션 연주자로 참여했었던 빌 보트렐(Bill Bottrell), 유명한 프로듀서이자 엔지니어인 브루스 스웨디언(Bruce Swedien)이 활동범위를 더 넓혀, 작곡에도, 프로듀싱에도 참여했다.
[Bad]를 끝으로 더 이상 함께 하지 않은 프로듀서 퀸시 존스(Quincy Jones)를 실질적으로 대체한 인물은, 테디 라일리(Teddy Riley)다.
테디 라일리의 합류로 인한 가장 첫 번째 변화는 장르의 확장이다. 마이클 잭슨의 이전 앨범들은 Pop, Rock, Funk의 장르로 분류되었는데, [Dangerous]에는 뉴 잭 스윙(New Jack Swing)이라는 낯선 이름이 추가되었다. 이것은 테디 라일리의 합류에서 기인한다.
테디 라일리는 New Jack Swing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표방하며, '가이(Guy)'라는 자신이 속해있던 밴드에서, 작곡과 프로듀서로 활동하던 뮤지션이었다. (※ 테디 라일리가 몸담았던 밴드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블랙스트리트(Blackstreet)'다)
※ New Jack Swing에 대한 Merriam-Webster사전의 정의는 이렇다.
‘Pop music usually performed by Back musicians that combines elements of jazz, funk, rap and rhythm and blues'
한마디로 하면 (이전에 흑인들이 하던) 재즈, 펑크, 랩, R&B 의 요소를 혼합한 흑인음악이란 뜻이다.
80년대 중후반부터 팝 음악에 랩(Rap)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서서히 지평을 넓혀가던 랩(Rap)을 자신의 음악에 접목하고자 했던 마이클 잭슨이, 테디 라일리와 함께 한 것이다.
전작 앨범 [Bad]에서는 작곡의 대부분을 혼자서 했던 마이클 잭슨은, [Dangerous]에서는 작곡에 많은 이들을 공동으로 참여시키고, 당시 최신 트렌드를 과감하게 반영한 것 같다. 이전의 앨범들은 락(Rock)적인 음악들이 많았었는데, 이번에는 더 비트는 강해지면서도, 조금 더 흑인 음악스러워졌다. 거기에 자신의 이전 어떤 앨범, 어떤 노래에서도 없었던 랩(Rap)이 처음으로 등장한다.
그렇게 해서 ‘Black or White’를 비롯한 몇 곡에 랩 부분이 추가되는데, 지금은 일반화된 피처링(featuring)을 시도한 것이다. 요즘에는 대세인 힙합과 랩 음악을 하는 가수들이, 자신의 노래에 멜로디 부분을 노래할 가수를 피처링으로 참여시키는 일이 흔하지만, 갑의 위치에 있던 황제, 마이클 잭슨은 이때 처음으로 자신의 노래에 랩을 피처링(featuring)시킨 셈이다.
‘Jam’에는 Heavy D,
‘Black or White’에는 L.T.B,
‘She Drives Me Wild’에는 Wrecks-n-Effect
가 랩 부분을 담당했다. 최신 장르가 가미된 새로운 장르의 앨범은, 모든 곡이 상당히 세련되게 느껴졌다. 실제로도 그러했을 것이다.
퀸시 존스의 그늘을 벗어난 황제의 홀로서기는 꽤나 성공적이었다.
나름 괜찮았던 차트 성적
[Dangerous]는 빌보드 앨범 차트(Billboard Album 200)에서 곧바로 1위로 데뷔했다.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1위를 했음은 물론이다. 수록곡 14곡 중 9곡이나 싱글로 발매되었고, Top 40에 7곡, 그중 Top 10에 4곡, 그중 1위 곡이 1곡이다.
* Black or White (1위)
* Remember the Time (3위)
* In the Closet (6위)
* Jam (26위)
* Who Is It (14위)
* Heal the World (27위)
* Give in to Me (—)
* Will You Be There (7위)
* Gone Too Soon (—)
1위 곡이 단 한곡뿐이라, 전작 앨범들의 거대한 성과에 비한다면, 또 황제의 성적이라 하기엔, 중량감이 다소 떨어져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는 꼭 짚고 가고 싶다.
[Bad]에서는 5곡이나 1위를 기록했지만, 그 1위 곡들 각각이, 1위 자리를 오래 지키지는 못했다.
I Just Can't Stop Loving You (1주)
Bad (2주)
The Way You Make Me Feel (1주)
Man in the Mirror (2주)
Dirty Diana (1주)
5곡이 1위에 머문 기간을 모두 합하면 7주다.
그런데 [Dangerous]에서는 ‘Black or White' 한곡이 이것을 해낸다. 1991년 12월 7일부터 1992년 1월 18일까지 7주 동안 1위에 오른다.
그리고 ‘Black or White'가 가진 역사적 의미가 몇 가지 더 있다.
마이클 잭슨의 노래 중에 가장 오랜 기간(7주) 1위에 오른, 2곡 중의 1곡이다(다른 한곡은 'Billie Jean')
이 곡이 1위가 되었을 때, 마이클 잭슨은 70년대, 80년대, 90년대에 걸쳐 빌보드 1위를 달성한 첫 번째 아티스트가 되었다.
빌보드 싱글 차트(Billboard Hot 100)에서는 35위로 처음 데뷔했다가, 3주 만에 1위를 기록했는데, 이것은 1969년 비틀스(The Beatles)의 'Get Back'에 이어 다시 한번 가장 단기간(3주)만에 1위에 오른 또 다른 곡(타이기록)으로 기록되었다.(※신기록제조기 마이클 잭슨은 1995년에 자신의 다른 노래 'You are Not Alone'으로 이 부문 기록을 경신한다. 이 곡은 '빌보드 핫 100에서 곧바로 1위로 데뷔하는 역사상 첫 번째 곡'이란 불멸의 기록을 세운다—다들 아시겠지만, 역사상 첫 번째란 기록은 깨지지 않고, 영원한 것이다.)
초상화 대신 화가의 그림
그 무렵에는 이런 것이 추세이기도 했었지만,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은, 자신의 솔로활동 첫 번째 앨범부터, 자신의 앨범 커버에 자신의 사진을 계속 사용했다. 마이클 잭슨이 아주 어릴 때부터 활동한 탓에, 앨범들을 시간순으로 나열해 두면, 자연스레 그의 성장앨범이 된다. 이러한 앨범 커버들 덕분에, 우리는 10대이던 마이클 잭슨의 성장 과정도, 성인이 된 이후에 오히려 더욱 급변(?)해가던 모습까지도 모두 엿볼 수 있다.
어릴 적엔 전형적인 흑인 소년의 모습이던 마이클 잭슨은, [Thriller] 때까지는 그래도 확실히 흑인인 것 같고, [Bad]부터 본격적인 탈흑인화의 시작인 것도 같고 그렇다—개인적으론 [Thriller] 때의 모습이 가장 좋다.
아무튼 여덟 번째 앨범 [Dangerous]에 와서는 커버에서 처음으로 초상화(?)를 버리는 새로운 시도를 했다.
자신의 초상화를 사용하는 대신, 상업 예술가 마크 라이덴(Mark Ryden)의 그림으로, 앨범 커버를 대체했다.
상단의 중앙에 크게 자리 잡은 예쁜 눈과 미간에 걸친 꼬불한 머리카락으로, 우리는 그것이 마이클 잭슨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이 앨범 커버에서는 마이클의 모습을 이 정도로 아주 조금만 보여준 셈이다. 마치 가면을 쓴 듯한 마이클 주변으로 여러 그림들이 가득 차 있다. 그림이 다소 복잡하기도 하지만, 얼핏 보아도 뭔가 철학적 의미를 담은 듯한데, 뭔가 대단히 공들인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림을 그린 마크 라이덴(Mark Ryden)은 [Dangerous] 앨범 커버에 대해 “영광과 그것을 실현시키는 데 관련된 기계를 지켜본, 신중한 서커스 예술가로 마이클 잭슨을 묘사한 것이다.”라고 (다소 난해하게) 설명을 했다.
참고로, 마크 라이덴(Mark Ryden)은,
에어로스미스(Aerosmith)의 1989년 싱글곡 'Love in an Elevator'(앨범 [Pump]('89)에 수록),
우리에게는 'What's Up'이란 노래로 잘 알려진 포 넌 블론즈(4 Non Blondes)의 1992년 앨범 [Bigger, Better, Faster, More!],
레드 한 칠리 페퍼스(Red Hot Chili Peppers)의 1995년 앨범 [One Hot Minute],
을 포함한 여러 아티스트의 많은 음반 커버 작업을 한, 이 업계의 유명한 아티스트다.
* Dangerous - Michael Jackson (하)에서 계속